책소개
회화분석의 자세는 지금까지 사회학의 자세와는 다르다. 회화분석은 기존 과학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학문 분야로, 전통적인 언어학이나 주류 사회학에서 학문 바깥에 있는 것으로만 여겼던 회화를 최전선의 분석 단위로 삼고 거기에 철두철미하게 천착한다. 무진장의 리얼리티가 담겨 있는 복잡하고 다양한 일상의 회화 조각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회화분석은 기존의 과학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영역까지 과감하게 들어가서 과학적 논리의 극한을 확장시키고 과학적 지성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 준다. 이 책은 징그러울 정도로 복잡한 현실을 공들여 더듬고 살핌으로써 쾌감을 맛보는 회화분석이란 학문의 세계로 독자들을 데려다 준다.
지은이
박동섭
독립연구자 및 자율형통역자다. ‘일상’과 ‘보통’, ‘당연’ 그리고 ‘물론’을 비판적으로 응시하고 조준하고 해독하는 사람들의 사회학(에스노메소돌로지) 연구자의 입장에서 ‘트위스트 교육학’, ‘일상의 자명성·복잡성·일리성의 해부학’, ‘침대에서 읽는 비고츠키’, ‘어른학’ 강좌 시리즈를 이동하면서 수행하고 있다. ‘지적 괴물’인 우치다 타츠루의 임상철학과 ‘무사적 글쓰기의 대가’ 김영민의 『일리의 철학』에 깊은 영향을 받아 인간, 사회, 심리, 교육 그리고 배움에 대한 새로운 밑그림 그리기를 시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해럴드 가핑클』(2018), 『레프 비고츠키』(2016), 『비고츠키 불협화음의 미학』(2013)이 있고, 옮긴 책으로 『단단한 삶』(2018), 『수학하는 신체』(2016),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부터』(2015), 『보이스 오브 마인드』(2014), 『14세 아이를 가진 부모들에게』(2013), 『스승은 있다』(2012), 『기업적인 사회 테라피적인 사회』(2011),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2010) 등이 있다.
차례
01 회화분석의 원류
02 있는 그대로의 관찰과학
03 일상 언어를 과학하기
04 패턴으로서 회화
05 회화분석의 원풍경
06 회화분석의 연구 대상
07 연쇄 조직
08 성원카테고리화 장치
09 교실 회화분석
10 심리치료라는 이름의 사회질서
책속으로
인간 사회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만나 말을 나누고 여러 활동을 함께 하는 것으로 성립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와 목적을 가진 회화를 평소와 다른 속도로 관찰하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다른 속도로 보면 거기에서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던 어떤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할 수 있을까? 회화분석은 이 소박한 의문에 흥미로운 대답을 제공하는 하나의 학문 분야다. 회화분석은 초고속 카메라로 비유할 수 있는, 보통과 다른 세밀한 관찰 방법으로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회화를 엄밀히 분석하는 하나의 ‘과학’이다. 그리고 그 분야는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세밀한 기술을 목표로 한다.
“‘지금ᐨ여기’에 천착하는 현미경으로서의 사회학” 중에서
하비 색스(Harvey Sacks)가 1964년 가을학기에 대학에서 맡은 강의를 사실상 회화분석의 출발점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1963년에서 1964년에 걸쳐 해럴드 가핑클(Harold Garfinkel)과 색스는 로스앤젤레스 자살예방센터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색스는 자살예방센터에 걸려오는 전화를 녹음해 분석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Sacks, 1963). 색스의 최초 강의는 자살방지센터에 걸려오는 전화의 ‘시작 부분’이 어떤 질서나 패턴으로 이루어지는가에 관해 하나의 정치한 기술(description)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색스는 강의에서 전화 시작 부분의 예를 세 가지 든다.
“회화분석의 원풍경” 중에서
잔칫집이나 집들이 같은 곳에 가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려 낸 주인이 으레 하는 말이 있다. “차린 것이 없어서 죄송하네요.” 이 말을 들은 손님들은 그 순간 주인이 하는 말을 다시 주워서 입에 넣으려는 듯이 달려들어 말한다. “무슨! 상다리가 부러지려 하는구만….” “와, 점심 굶고 오길 잘했다.” 주인의 말은 진심이었을 수도 있겠으나(대부분 그렇지 않다). 만약 그랬다 하더라도 자신이 한 말에 아무런 대꾸 없이 젓가락만 든다면 크게 상심할 것이다. 그렇게 인사치레로 말했음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면 크게 상심한다는 것 자체가 특정한 사회적 행위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금 더 의도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들은 서로 회화라는 사회적 행위로 이 상차림에 대한 노고를 치하하는 사회적 상황을 달성하는 것이다.
“연쇄 조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