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시드
박무호가 옮긴 피에르 코르네유(Pierre Corneille)의 ≪르 시드(Le Cid)≫
프랑스 고전 비극의 탄생
작품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으나 평론가는 싸늘했다. 삼일치법칙을 지키지 않은 작가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작가는 싸웠고 자신을 입증했다. 이겼으므로 비극의 왕이 되었다.
내가 느끼는 번뇌는 얼마나 처절한가!
내 명예에 내 사랑이 대항하고
아버지 원수를 갚는다면, 사랑을 잃을 것이니
하나는 내 가슴을 뜨겁게 하고, 또 하나는 내 팔을 잡는구나.
사랑을 기만할 것인가, 아니면 불명예 속에 살 것인가!
슬픈 선택에 갇혀
두 갈림길에서 고통은 끝이 없구나.
오, 이런! 비할 데 없는 고통이여!
처벌하지 않고 모욕을 감수해야 하나?
시멘의 아버지를 처벌해야 하나?
≪르 시드≫, 피에르 코르네유 지음, 박무호 옮김, 38∼39쪽
고민에 빠진 주인공 로드리그의 선택은 무엇인가?
사랑과 명예 사이에서 명예를 선택한다. 결투를 신청하고 시멘의 아버지, 백작이 죽는다.
시멘의 선택은 무엇인가?
아버지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연인과 맞선다. 왕에게 재판을 요구한다.
왕은 시멘을 설득한다. 왜 그러는가?
왕은 두 사람의 사랑을 안다. 또 무어족과 전투에서 공을 세워 ‘르 시드’란 칭호를 얻은 영웅 로드리그를 쉽게 처벌할 수 없다.
왕의 결정은?
결투를 제안한다. 시멘은 결투 상대자로 동 상슈를 선택한다. 로드리그가 이기자 두 사람에게 1년간 조정 기간을 갖도록 명한다.
두 남녀는 왜 사랑이 아니라 의무를 선택했나?
코르네유는 의지로 영광을 얻는 주인공을 그렸다. 로드리그와 시멘은 의무를 선택함으로써 명예를 지킨다.
상식에 반하는 모습 아닌가?
그의 비극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 전형이다.
코르네유는 전통과 이성의 신봉자인가?
자유가 주어진 가운데 이성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힘, 그는 여기서 인간의 위엄을 보았다. 그가 창조한 주인공들은 대부분 최악의 어려움 속에서도 의무를 다하는 데 필요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으며 용맹하고 명예심이 가득하다.
<르 시드>는 어떤 작품인가?
스페인 국민 영웅 엘시드 이야기를 소재로 코르네유가 쓴 운문 비극이다. 프랑스 고전극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당시 반응이 그렇게 대단했나?
마레 극장에서 공연할 때는 무대에 의자를 놓아야 할 만큼 관객이 몰려들었다. 관객들은 긴 독백을 외울 정도로 극에 심취했고, 그 인기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 유럽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었다. 한때 ‘<르 시드>처럼 아름답다’는 말이 유행했다.
코르네유 자신의 평가는?
“내 모든 규칙적인 작품들 가운데 가장 파격적이지만, 최근에 쓴 엄격한 규칙에 따르지 않은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가장 아름답다”고 썼다.
‘<르 시드> 논쟁’이란 무엇인가?
비평가들은 당시 고전주의 비극에 요구되던 ‘삼일치법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이른바 ‘<르 시드> 논쟁’이다.
‘삼일치법칙’이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밝힌 원칙이다. 연극은 한 장소를 배경으로 하루 동안 벌어진 한 사건을 다루어야 한다는 연극 이론이다.
논쟁은 작가에게 유리했나?
큰 상처를 받고 한동안 연극계를 떠났다. 하지만 곧 <오라스>, <시나>, <폴리윅트> 같은 규칙에 충실한 고전주의 작품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고전주의의 아버지가 된다.
그는 어떻게 프랑스 고전 비극의 완성자가 되었는가?
논쟁을 유발하고 비판에 응수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 결과 프랑스 고전 비극을 완성했다. 그와 그의 작품은 고전주의 이론이 형성되는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변호사가 어쩌다 극작가로 변신했나?
1606년 소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나 1624년 법학사를 취득해 루앙 고등법원 변호사로 개업했다. 하지만 공판 기록은 단 하나뿐이고, 변론보다는 연극이나 시에 더 관심을 가졌다. 1629년에 발표한 첫 작품 <멜리트>는 희극이었다. 1635년에 첫 비극 <메데>를 발표하기 전까지 비희극을 포함한 희극 여러 편을 발표했다. 1636년에 <르 시드>를 발표한 뒤부터 비극에 몰두했다.
1636년 이후의 삶은 어떤가?
1652년에 발표한 <페르타리트>가 실패하자 연극계와 결별을 선언한다. 하지만 푸케의 권유로 1659년에 신작 <오이디푸스>와 함께 연극계에 재등장한다. 1661년에 <황금 양털>이 성공한 뒤로 여러 작품을 내놓았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1674년 <쉬레나>를 끝으로 극작 활동을 접는다.
라신과의 경쟁에서는 승리했는가?
166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대중의 취미에 부합하는 작품들을 연이어 발표한 경쟁자 라신에게 자신의 명성을 완전히 넘겨주었다. 유복하지 않은 노년을 보내다 1684년 10월 1일 생을 마감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박무호다. 울산대학교 프랑스어·프랑스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