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베트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 특집 5. 모든 불행은 부활한다
이선화가 옮긴 외젠 이오네스코(Eugène Ionesco)의 ≪막베트(Macbett)≫
채울 수 없는 탐욕의 물길
정의감, 진실함, 절제, 지조, 관용, 끈기, 자비, 겸손, 경건함, 인내, 용기, 불굴의 정신은 하나도 없다. 가엾은 백성은 탐욕의 해일이 무너뜨리는 방파제의 비명을 듣게 될 것이다.
마콜: 이제 폭군은 죽었고, 그가 자신을 낳아 준 그 어머니를 저주했으니, 난 이렇게 말하겠다. 나의 불행한 조국에 예전보다 더 악랄한 악행이 지배하게 되리라고. 조국은 나의 통치 방식으로 유례없이 고통받을 것이라고.
(마콜의 선언이 끝나자, 비난과 절망과 경악의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이 장광설의 마지막에 마콜 주변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이 몸에 악이란 악은 다 들어 있어, 그것들이 움트는 날이면 시꺼먼 막베트도 흰 눈처럼 순결해 보일 거요. 그리고 가엾은 백성들은 내 셀 수 없는 악덕과 비교해, 그를 한 마리 양과 같이 숭앙할 것이오. 그는 음탕하며 욕심 많고, 거짓되며 성급하고, 악의에 찬, 이름 붙은 죄는 다 가지고 있는 자였소. 하지만 나의 방탕함은 바닥을 모를 것이오. 당신들의 아내와 딸들, 기혼녀이거나 미혼녀로도 내 욕정의 저수지를 채울 수 없을 것이오. 또 내 욕망은 내 뜻을 방해하는 모든 둑을 무너뜨릴 것이오. 이런 내가 나라를 다스리느니, 차라리 막베트가 더 나을지도 모르지. 그런데다가 나의 가장 고약한 성미 가운데에는 채울 수 없는 탐욕이 자라고 있어, 내가 왕이 되면 영지를 탐내 귀족들을 죽일 것이며, 이 사람의 보석과 저 사람의 집을 빼앗을 것이오. 또 가지면 가질수록 더 탐욕스러워져서, 선량하고 충성스런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으려고 부당한 싸움을 걸어 그들을 파멸할 겁니다. 나에게는 군주에게 걸맞은 미덕이 하나도 없소. 왕에게 걸맞은 미덕인 정의감, 진실함, 절제, 지조, 관용, 끈기, 자비, 겸손, 경건함, 인내, 용기, 불굴의 정신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갖가지 수단으로 저지르고 있는 다양한 죄악들만 우글댈 뿐이오.
≪막베트≫,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이선화 옮김, 156∼158쪽
마콜은 누구인가?
막베트의 동료인 방코 장군의 아들이자 전왕 덩컨의 의붓아들이다. 막베트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그가 예고하는 새로운 왕국은 어떤 나라인가?
그는 막베트의 압제로부터 나라를 해방시켰다. 하지만 전보다 더 폭압적인 통치를 예고한다. 해방이 성취되는 순간부터 다시 타락과 탈법, 위선과 사기가 판치는 압제를 반복하겠다는 것이다.
이오네스코의 <맥베스> 패러디인가?
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다시 쓰기’ 했다. 패러디이고 동시에 오마주다.
왜 <맥베스>인가?
폴란드 연극 비평가 얀 코트는 이 작품에서 20세기 초반 동구권을 휩쓴 스탈린 독재의 자취를 읽어 냈다. 여기서 영감을 얻었다.
코트는 무엇을 보았나?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고 모든 권력은 범죄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았다.
이오네스코의 해석은 무엇인가?
인간에 내재한 욕망의 본질이 아니라 권력에 초점을 맞추었다. 풍자와 조롱으로 셰익스피어를 다시 읽었다.
비극을 풍자와 조롱으로 읽을 수 있는가?
가능하다. 원작은 비극이지만 이오네스코는 희극적 요소와 비극적 요소가 뒤섞인, 우스꽝스러움과 슬픔, 절망이 공존하는 연극, <막베트>로 다시 썼다.
어떻게 다시 썼나?
독백과 장광설은 비극적인 비장미를 살려 연출하면서도, 퍼포먼스적인 쇼, 비키니 차림의 스트립쇼, 뜬금없이 삽입되는 동시대 어휘로 웃음을 부른다. 이 극의 특징인 잔혹성 또한 희극성과 연결된다.
잔혹성이란 무엇을 말하나?
이오네스코는 대사가 아니라 인물들의 행동과 오브제로써 잔혹성을 강조한다.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덩컨이 역적을 가혹하게 학살하는 장면은 마치 게임처럼 쇼로 꾸며진다. 덩컨을 암살할 때는 방코와 막베트, 덩컨 부인이 번갈아 그에게 칼을 꽂으며 살인의 참혹성을 강화한다. 방코를 살해하는 장면에서는 막베트가 직접 방코의 가슴에 단도를 찔러 넣는다.
잔혹성이 희극성과 어떻게 연결되나?
배우들의 기계적이고 단속적인 움직임과 반복성, 가속성을 통해 우스꽝스런 장면으로 잔혹은 희극으로 전도된다. 베르그송은 “인간의 태도, 몸짓, 그리고 움직임은 단순한 기계를 연상시키는 정도에 정비례해서 웃음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비극과 희극의 장르 혼합은 무엇을 얻기 위한 전략인가?
이오네스코는 이런 식의 장르 혼합을 삶의 진정한 국면이라고 여겼다. 삶은 비극적인 것과 희극적인 것의 공존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절대적으로 비극적인 것도, 절대적으로 희극적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자체에 부조리극의 단서가 있는 것인가?
이오네스코는 셰익스피어를 부조리극의 선구자로 인식했다. <맥베스> 5막 5장에 나오는 대사에서 인간 존재와 권력의 허무함, 부조리의 기미를 포착했다. 이것을 현대인이 수용할 수 있는 리듬, 호흡으로 재구성한 작품이 <막베트>다.
어떤 대사를 말하는 것인가?
“인생이란 걸어가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잠시 무대에서 흥이나 덩실거리지만 얼마 안 가서 잊히는 처량한 배우일 뿐이다.”
이오네스코의 메시지는 뭔가?
권력 욕망의 추악한 이면이다. 폭력적이고 부조리한 세계를 때로는 과장과 전도를 통해, 때로는 비틀기와 왜곡을 통해 우스꽝스럽게, 그리고 잔혹하게 그려 낸다. 당시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에 인간의 본성과 관계를 담아내고, 사회를 반영하고 시대를 비추는 거울을 들이댄다.
프랑스 연극에서 이오네스코는 무엇인가?
베케트, 아다모프, 주네와 함께 프랑스의 대표적인 부조리극 작가다.
<대머리 여가수>가 첫작품인가?
그렇다. 1947년 영어 교재 회사인 아시밀에서 ≪고통 없는 영어≫를 출간했는데 거기에 있는 예시 문장에서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다. 1950년에 초연했다.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진 못했지만 비평가들의 시선을 끌어모으며 새로운 양식의 희곡으로 평가받았다.
그는 어떤 작품을 썼나?
<수업>, <자크 혹은 순종>, <의자들>, <스승>, <미래는 달걀 속에>, <의무의 희생자들>을 썼다. 전통 희곡과 거리를 둔 작품이다.
어떤 거리를 두었나?
줄거리 부재, 등장인물들 성격의 비일관성, 소통 수단으로서 언어의 기능 상실이 특징이다.
1957년에 발표한 <코뿔소>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작품에서 그는 어느 정도 전통적인 극작술로 복귀하면서 사회참여적인 주제를 우화적인 방식으로 그려 냈다. 여기서 시작된 장막극 시대가 1959년 <무보수 살인자>, 1962년 <공중 보행인>, <왕이 죽어 가다>, 1965년 <갈증과 허기>, 1970년 <살인 놀이>로 이어진다.
그의 일생은 어떤 것이었나?
1909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1913년에 파리로 이주했다. 부모가 이혼하자 어머니와 함께 살다 1925년에 부쿠레슈티에 있는 아버지 곁으로 가 청소년기를 보냈다. 부쿠레슈티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고, 보들레르에 관한 박사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프랑스로 돌아갔다. 1970년에 대작가의 반열에 올라 프랑스 학술원인 아카데미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94년 생을 마쳤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선화다. 영남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