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무산 육필시집 그대 없이 저녁은 오고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사람들이 지나간다
비 갠 여름날 오후의 공단 천변
방금 얼굴 씻은 바람이 잎새를 훔친다
환하다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사람들이 지나간다
새들 날아와 가지에 들어와 앉고
잎들이 밖으로 난다
안의 것이 밖으로 난다 밖의 것이 안으로 난다
환하다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사람들이 지나간다
비바람과 추위를 나무처럼 견뎌 온 사람들
볕과 땀과 피곤으로 나뭇등걸처럼 거칠어진 몸으로
한 그루 열 그루 백 그루 사람들이 지나간다
멀리 푸른 숲을 이룬다 새들이 난다
환하다
비 갠 여름날 오후의 공단 천변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플라타너스가 걸어간다
≪백무산 육필시집 그대 없이 저녁은 오고≫, 116~119쪽
비 갠 여름날 오후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사람들이 지나간다
플라타너스가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