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테
조나탕: 블루테입니다, 주인님. 맛을 한번 보시겠는지요….
(면접관은 수프가 자신의 입속을 타고 내려가는 것을 느낀다.)
맛이 참 기가 막히죠,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직접 장을 봤어요. 저는 채소 하나하나 손으로 무게를 재 보고, 냄새를 맡아 보고, 일일이 만져 보지요. 채소상이 깜짝 놀랍니다. 그 사람이 저한테 이러더라고요. “세상에, 이보게나, 자네는 대통령을 위해 음식을 하는 것 같군….” 채소상이 이렇게 말했어요. 깜짝 놀라서요.
(사이)
면접관: 너무 짜! 후추가 덜 들어갔어. 아무 맛도 안 나. 채소에서 채소 향이 안 나잖아. 자네 수프는 수돗물에 푼 똥 같아! 다시 해 와….
≪블루테≫, 빅토르 아임 지음, 김보경 옮김, 87쪽
블루테가 뭔가?
잘게 갈거나 으깬 채소를 끓여 만든 걸쭉한 수프다. 조리 마지막 단계에 우유나 생크림을 섞어 순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낸다. 이 작품에서는 전개상 중요한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다.
수프가 왜 중요한가?
면접관과 관계에서 늘 약자였던 조나탕의 태도가 갑자기 일변한다. 극적 반전이 일어난다. 이때 블루테가 촉매제 역할을 한다.
태도가 어떻게 바뀌나?
면접관의 종노릇을 하며 지속적인 모욕과 멸시를 줄곧 참아 냈다. 정성껏 끓인 블루테를 면접관이 똥 맛이라고 혹평하자 결국 분노를 폭발시킨다. 엉덩이로 짓이긴 채소를 잘근잘근 씹어 죽처럼 만든 뒤 거기에 오줌을 싸고 눈물을 쏟아 만든 블루테였다고 소리친다.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인가?
면접관과 구직자로 만났다. 조나탕이 운전기사 구인 공고를 보고 입사 시험에 응시했다.
면접은 어떻게 진행되나?
면접관은 조나탕을 마음에 들어 한다. ‘조’라고 부르고 사적인 질문도 하며 친근감을 드러낸다. 순종적인 부인 얘기도 들려준다. 하지만 최종 면접 과정에서 서서히 악마 같은 본색을 드러낸다.
악마 같은 본색이란 무엇인가?
정체를 숨기고 자신의 아내에게 접근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 뒤 결과를 보고하라는 과제를 낸다. 그것으로 조나탕의 침착성과 관찰력을 보겠다는 거다.
조나탕은 테스트를 어떻게 수행하나?
택시 기사라고 속이고 분실한 여권을 돌려주겠다는 핑계로 면접관의 아내 클로에를 만난다.
잘 감시하나?
그녀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진다. 남편의 폭력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연민을 느낀다. 결국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면접은 합격인가, 불합격인가?
조나탕은 클로에와 나눈 대화 중 민감한 내용 일부를 빼고 보고한다. 면접관은 불합격을 통보한다.
어째서 불합격인가?
면접관이 집 안 곳곳에 도청 장치를 설치해 그들의 대화를 모두 엿듣고 있었다. 잔혹한 본색을 드러내며 조나탕을 조롱하고 멸시한다.
둘의 관계도 여기서 끝인가?
절망에 빠진 조나탕은 면접관의 제안을 받아들여 종이 된다. 면접관을 ‘주인님’이라 부른다. 면접관은 마음만 먹으면 그를 네발로 기어 다니게 할 수도 있다고 큰소리친다.
그런 짓이 어떻게 가능한가?
한 사람은 고용인, 한 사람은 피고용인이기 때문이다. 조나탕은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면접관의 비위를 맞추려 애쓴다. 면접관은 그 위에 군림하며 조나탕을 괴롭힌다. 아내에게 그랬듯이.
≪블루테≫는 무엇에 관한 극인가?
직장과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적 학대 문제를 다룬다. 강자가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약자를 얼마나 교묘하고 악랄하게 괴롭히는지 보여 준다. 약자는 지속적인 정신적 학대를 받아 결국 이성을 잃는다. 20여 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빅토르 아임은 누구인가?
현대 프랑스 극작가다. 영화와 텔레비전 시나리오를 쓰기도 하고 배우, 연출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현실 참여 작가인 그는 현실 문제를 소재로 취하면서도 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연극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비춰 주는 거울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중 ≪무대 게임≫이 2013년 한국어로 출간, 공연되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보경이다. 프랑스 리옹2대학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강사다. 현대 프랑스어권 희곡을 번역하고 공연하는 극단 프랑코포니에서 활동하고 있다.
2821호 | 2015년 12월 14일 발행
면접관 또는 주인님
김보경이 옮긴 빅토르 아임(Victor Haïm)의 ≪블루테(Velout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