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하산
한 알의 공양
연꽃 속에 들어앉아 연밥이 된
지리산 산내에 가서, 실상사 문턱을 넘어가서
석가모니불 옷 벗은 몸 처음 보았습니다
삼씨 한 알
대추씨 한 알이 한 끼 공양이라
죽지는 않고
‘있는 그대로’를 섬긴 석가모니
무슨 욕심 부려 살이 찌겠습니까만, 처연하데요
있는 그대로가 ‘나’이니 세상은 그만으로
더 경건하겠지만 바람 드나드는 갈빗뼈
어둠 속에 가라앉은 눈빛, 등뼈에 말라붙은 배
무엇을 더 덜어 낼까 물어볼 틈도 보이지 않데요
한 폭의 옷도 과분해 벗으려는 반라의 가부좌,
쥐어짜면 물 몇 방울 떨어지고
한 주먹 행주가 될 그것도 호사라고
걸레가 되려는 자비의 근원,
비로소 깊은 그늘에 앉아 중(衆)이 된 세상을
줄이고 줄인 몸
이제는 최소한의 단순한 석가모니불.
이운룡 육필시집 ≪새벽의 하산≫, 184~187쪽
시인은 시집 첫머리에 이렇게 썼다.
“시 한 편 쓸 때마다 나는 심자가 되어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세계와 만난다.”
그 세계가 석가세존임에랴.
삼가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