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관
8월의 신간 2. 자연과학자가 옮긴 베이컨의 대표작 등장
김홍표가 옮긴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신기관 (Novum Organum)≫
믿음은 아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인식은 자기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 곧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종과 개체의 특수성, 언어와 전통의 일반성 때문에 돌과 나무와 짐승과 하늘 그리고 땅까지, 우리는 우리 식으로 믿는다. 아는 것이 아니다. 미신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많은 실험을 생각하고 수행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도 지금까지 시도된 것과는 전혀 다른 순서와 과정을 밟아서 진행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모호하고 변덕스러운 경험이란 것은 어둠 속을 헤매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인간을 바르게 인도하기는커녕 오히려 혼란에 빠뜨린다. 경험이 확고부동한 법칙에 따라 일정한 순서를 지켜 확보된다면 과학이 한층 진보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신기관≫, 프랜시스 베이컨 지음, 김홍표 옮김, 85쪽
무엇이 과학을 진보시키는가?
자연과 세계에 대한 더 많은 경험이다.
경험의 양이 관건인가?
그렇지 않다. 변덕스런 경험은 인간을 혼란에 빠뜨릴 뿐이다.
변덕스런 경험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베이컨이 이 책을 쓰던 당대 사람들이 흔히 가졌던 도그마를 통해 얻고 해석되는 경험이다.
어떤 경험이 필요한 것인가?
도그마에서 벗어난,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 방법을 이용해 얻어진 경험이 필요하다.
도그마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등장하는 ‘제1질료’, ‘부동의 운동자’ 같은 관념이다. 그가 ≪오르가논(Organon)≫에서 주창한 논리와 추론 방법도 도그마다.
베이컨이 이 책 ≪신기관≫을 쓴 목적이 아리스토텔레스 비판인가?
그렇다. 책 제목 ‘노붐 오르가눔(Novum Organum)’은 라틴어로 새로운 기관, 즉 ‘신기관’이라는 뜻이다.
‘신기관’이 무슨 뜻인가?
‘기관’이란 장치, 방법론을 말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새로운 자연과학 방법론을 주창한 것이다.
새로운 것이 무엇인가?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편견을 버리는 것, 그리고 귀납법을 채택하는 것이다.
어떤 편견인가?
네 가지 우상, 곧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사람을 잘못된 오류로 이끄는 마음의 네 가지 경향이다.
우상이 인간을 오류로 이끄는 이유가 뭔가?
종족의 우상은 인간 고유의 감정과 의지 때문에, 동굴의 우상은 개인의 특수성과 주관 성향 때문에, 시장의 우상은 언어에 현혹되기 때문에, 극장의 우상은 그릇된 전통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발생한다. 미신과 신학을 보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도 우상인가?
물론이다. 사람들은 그의 철학 관념과 일치하는 실재가 실제로 있다고 믿었다. 그로부터 수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모두 근거 없는 주장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시장의 우상이다.
우상이 아니라면 인간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베이컨은 귀납법을 강조한다.
귀납법이 무엇인가?
관찰된 사실을 엮어 내는 적절한 원리다. 자연에 관한 진리를 잘 드러낼 수 있게 만드는 인식과 설명의 방식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가?
베이컨은 이 책에서 자신의 귀납 방법론을 토대로 열의 성질을 논의한다. 열을 충분히 관찰하고 실험해 그 형상과 본성에 대한 표를 세 가지 작성한다. ‘존재표’, ‘부재표’, ‘단계표’다. 베이컨은 이것을 통틀어 예시표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열은 ‘물체의 내부에서 억제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저항하는 소립자의 팽창 운동’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이 방식으로 모든 자연 현상에 대한 본질적인 성질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베이컨은 어떤 위치에 있는 인물인가?
근대 철학의 두 줄기인 경험론과 합리론 가운데 경험론을 확립했다고 평가받는다.
베이컨의 생각은 여전히 유효한가?
과학철학자들은 16~17세기 전까지 유기체적 세계관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했다고 본다. 베이컨을 필두로 등장한 기계론적 세계관은 인간과 자연을 떼어 놓고 보는 방법론이 중심을 이룬다.
우리의 현재 세계관 아닌가?
그렇다. 우리는 아직 베이컨이 마련한 세계관 속에 머물고 있다.
우리가 지금 베이컨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뭔가?
기계론적 세계관을 뛰어넘어 진보하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베이컨의 대표작인 이 책부터 정독해야 한다.
이 책은 이번에 처음 번역된 것인가?
아니다. 정치학 전공자에 의한 번역서가 있다. 그러나 자연과학 전공자가 베이컨을 번역해 출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은 철학책 아닌가?
이 책은 자연으로부터 우리 인간이 진리를 파악하는 방법론을 설명한다. 실험 관찰이 진행되고 관찰 결과가 기록되고 정리된 뒤 그곳으로부터 자연에 대한 진리를 추출한다. 당시의 철학은 자연에 대한 이해에 큰 비중을 두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홍표다. 아주대학교 약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