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
세기말의 풍요와 빈곤
최석희가 옮긴 아르투어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의 ≪아나톨(Anatol)≫
세기말의 정신 상황
사람 사이에 감정의 결속은 없다.
어제는 죽었고 내일은 기대할 수 없다.
순간만이 존재하는데 연속되지 않는다.
무엇이든 할 수 있으므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나톨: 추위에 떨면서! 그때 엄청난 고통이 나를 엄습했네. 나는 지금부터 더 이상 자유로운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 내가 나의 달콤하고 멋진 총각 생활에 영원히 아듀를 고해야만 한다는 사실! 당신 어디에 있었어요? 하는 질문을 받지 않고 집으로 올 수 있는 마지막 밤이라고 나는 나에게 말했다네. 자유의 마지막 밤, 모험의 마지막 밤… 어쩌면 사랑의 마지막 밤!”
<아나톨의 결혼식 날 아침>, ≪아나톨≫,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최석희 옮김, 165쪽
주인공 아나톨은 어떤 인간인가?
사랑의 모험을 바라는 청년이다. 젊고, 재치 있고, 부유하지만 늘 삶을 지겨워한다.
모험을 바라는 이유는?
늘 순간만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도, 자신을 둘러싼 현실도 응집력 있는 하나로 경험하지 못한다.
작품은 구성과도 관계가 있는가?
그렇다. 이 작품은 연속성 없이 7개의 에피소드로 산산조각 나 있다. 7막 연작극이다.
아나톨은 어느 때 사람인가?
세기말이다. 1900년대 오스트리아 빈의 데카당적인 시대 분위기다.
위에 인용한 단막극은 무슨 이야기인가?
아나톨은 총각 시절의 마지막 밤을 여배우 일로나와 함께 보내지만 계획된 작별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는 한 여자의 남편이 된 뒤에도 여자 친구를 만나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결혼 서약을 깨지 않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한 뒤 결혼식을 올리러 간다.
불륜인가, 이런 내용의 단막극이 또 있는가?
<단말마>에서 아나톨은 유부녀인 엘제의 연인이다. 그와 사랑의 모험을 즐긴 그녀가 부부생활을 포기하려 하지 않자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자존심의 상처는 어디까지 계속되는가?
<기념 보석>에서 아나톨의 연인 에밀리에는 이전 연인들의 추억으로 보석을 간직하는 사람이었다. 아나톨은 그녀와 결혼하려 하면서 보석들로부터 벗어나기를 요구하지만 결혼 전날 그녀가 보석 두 개를 몰래 간직한 것을 발견하고 실망한다.
아나톨 같은 인물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인가?
그는 세기 전환기에 흔히 볼 수 있는 문학적 인물이다. 현실 감각이 없으면서 거드름을 피우는 인간이자, 자기만족 후에 자신의 멍청함을 꿰뚫어 보고 다시 자신의 아이러니를 통해 파괴당하는 인간이다. 7개 단막극이 그의 이런 성격을 묘사한다.
7개의 단막극은 어떻게 연결되나?
각 단막극은 그 자체로 완결된다. 동시에 7개의 단막극은 등장인물의 특징을 나타내는 에피소드의 느슨한 연결을 통해 전체로서 서사극의 구조를 보여 준다.
느슨한 연결은 무엇으로 가능한가?
대사다. 작가 슈니츨러는 상투적으로 시작되는 사소한 대화를 탁월하게 묘사하며, 불투명하고 우발적인 데다 수수께끼 같은 공허한 대화를 통해 장면을 갈등으로 이끈다.
누구와 누구의 대화인가?
≪아나톨≫은 주인공 아나톨이 친구 막스와 나누는 연애 이야기 내지는 잡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 사이의 독백적 대화가 작품의 기저를 이루며, 이것은 ‘…’, ‘−’, ‘?!’ 등의 기호를 통해 표현된다. 이런 대화는 드라마의 서사화와 관련되며 세기말 희곡의 공통 현상이다.
아나톨과 막스는 무엇을 대화하는가?
두 사람은 만나는 동안 자기 말만 하고 자신의 삶과 직접 연관성이 없는 주제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삶에는 참여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정신 상태 주변만을 맴돈다.
어떤 정신 상황인가?
아나톨은 ‘감정의 결속’ 없이 사는 슈니츨러의 작품 속 등장인물의 전형적인 유형을 대변한다. 그에게서 어제는 죽었고 내일은 기대할 수 없다. 여러 가지를 동시에 생각하며 모든 결과는 똑같다고 믿기에 어느 것에서도 결론을 이끌어내지 않는다. 끊임없이 ‘나’와 ‘환상’ 사이에서 존재하며, 모든 면에서 자기 결정력이 부족하다. 허무함의 불안에서 벗어나려 하며 삶의 무의미함을 감추려 한다.
슈니츨러의 사상 배경은 무엇인가?
인간 의식을 하나의 일치가 아니라 다양한 감정의 집합체로 보는 물리학자 마흐의 이론과 니체 철학, 프로이트의 심리학이다. 따라서 ≪아나톨≫은 여러 문화 비판의 흐름이 용해되어 있는 도가니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어떤 작가인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부유한 유태인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의사가 되었지만 생의 대부분을 작가로 활동했고, 초기에는 희곡을 많이 집필했다. 모든 작품에서 빈의 세기말을 묘사했다. 평가절하되었다가 1960년경에야 재평가되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최석희다. 대구가톨릭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