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인류 천줄읽기
코즈모폴리턴과 쇼비니스트의 기원
박지배가 뽑아 옮긴 니콜라이 트루베츠코이(Николай С. Трубецкой)의 ≪유럽과 인류(Европа и человечество) 천줄읽기≫
문화의 우열 시비
코즈모폴리턴과 쇼비니스트는 반대말이지만, 같은 뜻이었다.
20세기 초 유럽인에게 세계와 문화는 오직 자신이었다.
다른 것도 있었지만 모두 미개할 뿐이었다.
“본질적으로 유럽의 코즈모폴리턴은 쇼비니스트와 다르지 않다. 그가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문명과 문화는 혈연의 끈과 공통의 역사로 서로 묶인몇몇 민족이 공유하는 문화적 가치의 총체다. 다른 모든 문화는 그러한 문화 앞에서 조용히 사라져야 한다.”
≪유럽과 인류 천줄읽기≫, 니콜라이 트루베츠코이 지음, 박지배 옮김, 29쪽
쇼비니스트와 코즈모폴리턴의 공통점은?
자기중심주의다. 쇼비니스트는 자기 민족과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주장한다. 코즈모폴리턴은 로마-게르만 민족의 문화가 인류 보편 문명이며, 인류는 민족 간 차이를 제거하고 세계 진보라는 하나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세계관인가?
맨 꼭대기에 오늘날 유럽 문화가 자리잡은, 문화 진화의 사다리와 흡사하다.
유럽 아래는 무엇이 있는가?
바로 아래 유럽 문화와 유사한 고대 문화가 있다. 그 아래는 아시아 문화와 아메리카 고문명이 놓이고 밑바닥에 미개 문화가 있다.
그들이 미개 문화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유럽 문화와 가장 다른 문화다. 비문화 민족의 문화여서 미개 문화라고 부른다.
유럽을 꼭대기에 올린 근거가 뭔가?
유럽 학자들은 로마-게르만이 완전하다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뭐가 완전한가?
타민족과 유럽의 전쟁에서 언제나 백인이 승리했다는 것이다. 승리는 완전함을 뜻한다.
트루베츠코이도 동의했는가?
아니다. 거칠고 유치한 주장이라고 봤다.
그의 생각은 뭔가?
사다리 발상은 순전히 자의적일 뿐이다. 사다리의 각 단계는 각 문화가 현대의 유럽 문화와 얼마나 유사한가를 보여 줄 뿐이다. 각 문화의 발전 단계와는 관계 없는 것이다.
주장의 근거는?
이른바 미개 문화의 어떤 분야는 유럽 문화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발달 수준도 높다. 미개 문화가 유럽 문화보다 뒤진 것이 아니라 단지 환경과 목표에 따라 발전 방향이 달랐을 뿐이라는 점을 알 수 있는 증거다.
예를 들면 어떤 것인가?
미개인 사냥꾼은 동물의 습성에 대해 유럽 동물학자보다 더 상세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종족의 모든 신화와 문학과 도덕을 기억하는 것은 유럽인이 따르지 못하는 수준이다.
유럽이 과학기술에서 앞선 것은 사실 아닌가?
트루베츠코이도 유럽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비유럽이 유럽에 저항하려면 대포를 비롯한 그들의 각종 기술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장과 응용과학, 즉 유럽식 사회·정치 토대가 필요하다.
그가 그의 책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이었나?
유럽 문명의 독단과 횡포를 막을 대안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방법은 무엇인가?
비유럽 국가에서 유럽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비유럽인이 유럽 문화를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 자기 민족의 문화를 지키면서, 민족 정서에 반하지 않는 유럽 문화의 요소를 지혜롭게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비유럽 민족 지식인들이 각성해야 한다.
당시 지식인들은 그의 주장을 수용했는가?
20세기 초 유럽식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수용하기 힘든 주장이었다. 트루베츠코이는 자신과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눈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책 출간을 10년이나 망설이게 된다.
그는 어떻게 서구중심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나?
그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교육받은 곳이 러시아라는 점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러시아의 문화 정체성은 무엇인가?
지리, 문화, 역사 측면에서 유럽도 아니고 아시아도 아닌 중간, 동양 요소와 서양 요소 사이에서 정체성을 잃고 갈팡질팡했던 나라다.
당신은 이 책을 어떻게 발췌했는가?
원전의 70%를 발췌하면서 전체 내용을 균형 있게 소개했다. 독자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장마다 원전에는 없는 제목을 달았다.
당신은 누구인가?
박지배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