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린 육필시집 간접 프리킥
중국집에 잡혀 먹은 손목시계처럼/ 최신판 영한사전처럼/ 맛이 진한 몽고간장처럼 미군 야전잠바처럼/ 돼지껍데기처럼// 요즘도 헌책방에서 제법 거래가 되는 ≪사상계(思想界)≫처럼// 조계사 대웅전/ 문지방 위/ 꼬리를 떨며 교미 중인 고추잠자리처럼// 1리터에 1,450원에서/ 1,390원으로 다시 1,530원으로/ 미친 듯이 널뛰는/ 휘발유처럼//단풍이여/ 오늘만큼은 잠시 세상 접어 두고// 분배냐 성장이냐 누가 뭐래도/ 북핵위기니 인구감소니 독도니 뭐니 다 잊고/ 단풍이여 그냥 좀 더 붉게 타야 쓰겠다/ 가을 단풍이여// 아파트 값이 폭등했지만/ 더 오를지 몰라/ 이사도 못 가고 있는 나처럼/ 자식 과외비 마련하러 노래방 도우미로 나갔다가/ 뽕짝에 푹 빠진 아줌마처럼// 뻔질나게 날아오는 스팸메일처럼// 가을 단풍이여/ 이제는 붉게 타다 가는 수밖에 없는/ 그거밖에 할 게 없는/ 그래야 단풍다운 가을 단풍이여
≪장경린 육필시집 간접 프리킥≫, 170~175쪽
세상이 널뛰어도
가을 단풍이여
오늘만큼은 다 잊고
그냥 좀 더 붉게 타야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