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 육필시집 사과야 미안하다
나무 기도
새해에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우린 너무 빠른 속도다, 세상은/ 달려갈수록 넓어지는 마당 가졌기에/ 발을 가진 사람의 역사는/ 하루도 편안히 기록되지 못했다/ 그냥 나무처럼 붙박여 살고 싶다/ 한 발자국 움직이지 않고/ 어린 자식 기르며 말씀 빚어 내고/ 빈 가지로 바람을 연주하는 나무로 살고 싶다/ 사람들의 세상은 또 너무 입이 많다/ 입이 말을 만들고 말이 상처를 만들고/ 상처는 분노를 만들고 분노는 적을 만들고/ 그리하여 입속에서 전쟁이 나온다/ 말하지 않고도 시를 쓰는 나무의 은유처럼/ 온몸에 많은 잎을 달고도/ 진실로 침묵하는 나무가 되고 싶다/ 침묵으로 웅변하는 나무가 되고 싶다/ 삶은 베풀 때 완성되느니/ 그늘 주고 꽃 주고 열매 주는 나무처럼/ 추운 아궁이의 뜨거운 불이 되어 주기도 하고/ 사람의 따뜻한 가구가 되는 나무처럼/ 가진 것 다 주는 나무로 살고 싶다/ 새해에는 그대를 위한 나무가 되고 싶다/ 그대는 나를 위해 나무가 되어 다오/ 우리 나무와 나무로 만나 숲을 만들자/ 그런 사랑이 만드는 새로운 숲이 되자
≪정일근 육필시집 사과야 미안하다≫, 178~181쪽
당신은 새해,
무엇처럼 살고 싶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