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생활자의 수기
사람은 왜 이럴까?
러시아 문학 5-1. 김정아가 뽑아 옮긴 도스토옙스키(Фёдор М. Достоевский)의 ≪지하생활자의 수기(Записки из подполья) 천줄읽기≫
거의 모든 인간의 길
뭐가 이익인지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옆으로 제쳐 놓는다.
그러고는 위험과 요행을 찾아 다른 길로 뛰어든다.
지금까지 수백만 개의 인생이 이런 길을 걸었다.
왜 이럴까?
“2×2=4라는 것은 이미 삶이 아니라, 여러분, 그것은 죽음의 시작이다. 적어도 인간은 항상 왠지는 모르지만 2×2=4를 두려워해 왔고, 나도 지금은 그것이 두렵다. 실로 인간은 2×2=4를 발견하기 위해 대양을 건너기도 하고 삶을 희생하기도 하지만, 정말로 그것을 찾아내는 것, 발견해 내는 것은 어쩐지 두려워한다. 일단 그걸 발견하게 되면, 이미 그땐 아무것도 찾을 거리가 없다는 것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지하생활자의 수기 천줄읽기≫,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정아 옮김, 87쪽
2×2=4가 가리키는 것이 뭔가?
인류의 조화를 가져올 수 있는 보편 공식, 인간 행위를 규정하는 보편적 원리, 세계 조화의 위대한 원리다. 1863년 발표된 체르니솁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나온다.
체르니솁스키는 누구인가?
1860년대 러시아 젊은 지성인들이 열렬히 숭배한 허무주의적 유물론자다. 그는 인간 심리, 도덕, 사회적 행동의 제반 문제에 수학적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 2×2=4, 2×3=6, 2×4=8인 것처럼, 인간의 제반 행동에 대한 해답도 이성적 이기주의가 제시하는 이익 공식에 따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어떤 내용의 책인가?
베라 파블로브나라는 젊고 똑똑한 중산층 여자가 지식인 로푸호프와 키르사노프를 만나 지적, 사회적, 혁명적으로 성숙해 가는 성장 소설이다. 대중에게 유토피아의 청사진을 보여 주고 실현하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또 그 ‘무엇’이란 단기 목표를 어떻게 하면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를 등장인물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런 주장이 대중의 동의를 얻었나?
대중은 열광했다. 젊은이들, 혁명가들은 작품 속 주인공들의 행동을 그대로 모방했다. 레닌은 “체르니솁스키의 소설은 나를 완전히 압도했다…. 이 책은 당신의 전 생애를 내걸어도 좋을 만한 훌륭한 소설이다”라고 극찬했다.
이 책에 대한 도스토옙스키의 생각은 무엇이었나?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 책이 제시한 사회주의적 이상 국가는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고 인간성 박탈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인간성 박탈이란?
인간은 산수가 아니다. 모든 인간을 2×2=4처럼 하나의 공식으로 정의하고 그 공식에 따라 행동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지상 낙원이 아니라 가축화, 노예화 상태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순진한 이데올로기의 위험을 알려야 할 의무를 느꼈다.
의무를 수행했나?
그렇다.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썼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나온 주요 단어, 텍스트, 내용, 표현, 사건을 차용해 작품 속에서 왜곡하고 패러디했다.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어떤 작품인가?
화자인 지하생활자가 수다스럽게 자신의 견해를 늘어놓는 1부, 그리고 그 견해를 뒷받침하는 한 창녀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2부로 구성된다.
자신의 견해란?
인간은 누구나 마음속 깊은 곳에 추한 것들로 가득 찬 지하실을 가지고 있고, 논리나 이성, 자연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바로 이 설명할 수 없는 자유로움이 인간의 본성이며 특징이라는 생각이다.
지하생활자가 말하는 인간의 특징은?
“인간이란 언제 어디서나 그가 누구든 간에 예외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기를 좋아했지, 결코 이성이나 이익이 명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심지어 때로는 원하는 것이라면 인간은 자기 자신의 이익에 역행하는 일도 할 수 있고, 이따금씩은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행동 동기는 뭔가?
“자기 자신의 자유분방한 의지, 심한 변덕, 이따금씩 미쳐 버릴 만큼 짜증스러운 것일지라도 자기 자신의 환상, 이 모든 것”, “즉 어떤 분류에도 속하지 않고 전 체계와 전 이론을 끊임없이 파괴하는 이익 중의 이익”을 추구한다.
주장의 증거가 있나?
“사람들은 뻔히 알면서도, 즉 자신의 진정한 이익이 뭔지 아주 잘 이해하면서도 그것을 옆으로 제쳐 놓고 위험과 요행을 찾아 다른 길로 뛰어 들어갔음을 증명해 주는 수백만 개의 사실들”이다.
위험과 요행을 찾는 이유는?
“그들은 누구한테서도, 또 무엇으로부터도 강요를 당해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그야말로 지정된 길을 가는 것이 싫다는 이유만으로 어둠 속에서 손으로 더듬듯 찾아가며, 힘들고 불합리한 다른 길을 고집스럽게 제멋대로 개척해 왔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들에게는 이 고집과 제멋대로가 어떠한 이익보다도 더 유쾌했다는 소리가 아닐까?”
체르니솁스키와 도스토옙스키는 어디서부터 갈라진 것인가?
인간관이다. 체르니솁스키는 인간 본성이 원래 선하며,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사회 체계와 환경 탓이라고 여겼다. 도스토옙스키는 수감과 유형 생활을 겪으며 인간 본성의 어둡고 적나라한 야만적인 면을 보았다. 이런 ‘본성적인 선’을 믿을 수 없었다.
이 책 ≪지하생활자의 수기≫에는 무엇이 있는가?
지하생활자가 구체화하고 있는 고독, 자유, 선택, 고통, 노예화, 정체성, 구원으로서의 사랑의 문제, 이 모든 테마는 한 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 늘 현대적이고, 늘 보편적으로 남아 있는 인간의 주제다.
다음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