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시
2390호 | 2015년 1월 7일 발행
러시아 삶의 백과사전
겨울밤에 3. 박미령이 옮긴 타티야나 톨스타야(Татьяна Толстая)의 ≪키시(Кысь)≫
당대 러시아 삶의 백과사전
≪키시≫는 1986년부터 15년 동안 쓴 톨스타야의 첫 장편이다.
키시가 뭔가?
상상의 존재다.
인간의 등을 으드득 물어뜯는 어둠 속의 짐승이다.
그를 만난 사람은 혼을 빼앗긴다.
“나이 든 사람들은 이런 숲에 키시가 산다고 말한다. 키시는 어두운 나뭇가지 위에 앉아서 ‘키-이스! 키-이스!’ 하며 애처로운 야성의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그 누구도 키시를 볼 수 없다. 사람이 지나가면, 키시는 ‘캭!’ 하며 이빨로 등을 ‘으드득!’ 문다. 발톱으로 더듬어 주요 혈관을 찾아 끊어 놓고 인간의 혼을 빼놓는다. 키시에게 당한 사람은 이미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닌 채 돌아오며, 눈도 예전의 눈이 아니다. 그는 길인지 아닌지도 분간하지 못한 채 걸어 다닌다. 이런 모습은 마치 몽유병 환자가 달빛 아래에서 수면 상태로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걸어가는 것과 같다. 그런 사람들은 잠이 든 상태에서 걷고 있는 것이다.”
≪키시≫, 타티야나 톨스타야, 박미령 옮김, 7∼8쪽
‘키시’의 정체가 뭔가?
톨스타야가 만든 상상의 존재다.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묘사되는 바로는 고양이와 흡혈귀의 변종과 같다.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주로 주인공 베네딕트의 생각 속에 등장한다. 민담에 등장하는 정령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지만 형상은 뚜렷하지 않다. 러시아에서 출간된 책 표지에 상상해서 그린 키시의 모습이 있다.
‘키시’라는 단어는 무슨 뜻인가?
작가가 만든 단어다. 러시아인들이 고양이를 부르는 소리인 ‘키스-키스[кыс-кыс(кис-кис)]’에서 착안한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고양이를 부를 때 ‘나비야, 나비야’라고 하는 것과 같다.
작가는 왜 고양이를 연상시키는가?
책 속의 등장인물이 모두 쥐를 먹고 산다. 바로 고양이가 떠오르지 않는가?
키시는 뭘 가리키는가?
인간 내면의 부정이다. 인간의 이성을 지워 버리는 욕망, 탐욕, 부정적 자아를 상징한다.
소설 속 상황은 언제 어디서 벌어지는가?
핵폭발이 일어나고 200년이 흐른 때다. 모든 것이 원시 상태로 돌아갔다. 신화와 민속의 세계관이 지배하던 시공간이 되살아났다.
그때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새로운 세계에서 자신들만의 영역과 문화, 서열을 만든다. 이전 인류가 지났던 길을 걷는다. 사람들은 쥐를 먹는다. 쥐가 곧 돈과 같다.
서열은 어떻게 생기나?
세 가지로 나뉜다. 핵폭발 후에 태어난 인간은 ‘골룹치크(Голубчик)’, 핵폭발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이전 시대 사람들(Прежние)’, 살아남았지만 돌연변이가 되어 버린 사람들은 ‘퇴화인(Перерожденец)’이다.
이들은 어떤 인간인가?
‘이전시대 사람들’은 이전의 발전된 문화를 소유한 사람들로 귀족, 상류층을 의미한다. 골룹치크는 서민, 평민들을 의미하며 ‘퇴화인’은 하층민을 가리킨다.
주인공 베네딕트는 어느 부류인가?
골룹치크다. ‘이전시대 사람’인 어머니와 ‘골룹치크’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골룹치크란 어떤 의미인가?
원래는 친근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 즉 ‘여보게, 자네’라는 의미다. 핵폭발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동류의식을 부여한 것이다.
키시가 베네딕트에게 나타나는 이유가 뭔가?
베네딕트는 핵폭발 이전 시대의 책을 읽고 싶다. 그 욕망 때문에 인간성이 파괴된다. 베네딕트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 주는 것이 바로 키시다. 작품의 마지막에 보면 베네딕트가 당시 사람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던 키시로 변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때는 책이 귀했는가?
책은 더럽고 불결한 것으로 인식된다. 권력자 표도르 쿠즈미치는 사람들이 책을 소유하면 자신을 믿지 않을 것이라 겁냈다. 책을 소유하지 못하게 했다.
이 작품에서 톨스타야가 사용하는 낯선 용어는 또 뭐가 있는가?
가상의 식물 ‘오그네츠’와 ‘르자비’, ‘오카얀 나무’, 새 ‘프티차 파울린’와 ‘프티차블랴두니차’를 만날 수 있다. 번역하면서 가능한 원어를 그대로 살렸다. 주석으로 충분히 설명했다. 한국 독자들에게 러시아 언어와 문화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전달하고 싶었다.
타티야나 톨스타야는 누구인가?
20세기 유명한 러시아 작가인 알렉세이 톨스토이와 시인 크란디옙스카야의 손녀다. 1983년 단편 <황금빛 현관 계단에 앉아서…>로 등단했다. 이후 몇 년 동안 국내외 평단으로부터 새로운 러시아 문학을 선도하는 작가로 인정받았다.
≪키시≫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톨스타야의 첫 장편소설로 1986년부터 15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2000년 발표 후 국내외 비평가들은 “러시아 삶의 백과사전”, “러시아 문학의 걸출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제14회 모스크바 국제서적박람회에서 소설 부문 ‘올해의 작품상’, ‘러시아 부커상’, ‘트리움프 문학상’을 받았다. ≪키시≫가 그녀의 존재를 다시 인식시키며 이전의 모든 작품이 재출간되는 현상을 빚기도 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박미령이다. 청주대학교 연구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