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론주의 개요 천줄읽기
2598호 | 2015년 5월 21일 발행
오유석이 안내하는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피론주의
오유석이 뽑아 옮긴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피론주의 개요 천줄읽기≫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경험한다.
그것을 사실로 인정한다.
그러나 정말 사실일까? 알 수 없다.
인간의 의식은 의식 자체를 의식하는 또 하나의 의식을 갖기 때문이다.
하나의 촛불을 바라보는 두 개의 마주 보는 거울에는 몇 개의 촛불이 타고 있는가?
무한하다.
무한은 알 수 없다.
“회의주의자도 보이는 것들과 생각되는 것들의 불규칙성을 해소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했으나, 이런 목적을 이룰 수 없었으므로 판단을 유보했다. 그런데 판단을 유보했을 때, 마치 물체에 그림자가 따르듯이, 예기치 않게도 마음의 평안이 회의주의자에게 생겨났다.”
≪피론주의 개요 천줄읽기≫, 섹스투스 엠피리쿠스 지음, 오유석 옮김, 39쪽
회의주의가 무엇인가?
외부 대상에 대해 일체의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것의 참모습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타락시아, 곧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피론주의란 회의주의를 말하는가?
그렇다. 기원전 300년경 활동한 엘리스 출신의 철학자 피론의 이름에서 나온 용어다. 그가 실제로 회의주의자였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섹스투스 엠피리쿠스는 그를 피론주의라고 불리는 회의주의 학파의 창시자로 여겼다.
언제 발생되는가?
기원전 1세기 아이네시데모스가 아카데미아 학파의 회의주의에 불만을 느끼고 새로운 회의주의 철학을 만들었다. 바로 피론을 시조로 하는 피론주의다.
아이네시데모스가 만들었는데 왜 피론주의라 부르는가?
피론을 판단 유보의 창시자로 여겼기 때문인 듯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사가인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아이네시데모스는 ≪피론주의 논의≫에서 피론이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으며 현상들에 따른다고 말한다.”
판단 유보를 결정하는 것도 판단 아닌가?
피론주의자와 보통 사람의 차이는 믿음에 대한 태도다. 그들은 외부 대상의 본성을 정확히 안다는 독단을 갖지 않지만 자신의 감각 내용에 대해서는 비독단의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비독단의 믿음이 뭔가?
예를 들어 보자. 내 눈앞에 보이는 파란 책은 흰 책에 파란 표지를 씌운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내 감각이 참임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책이 나에게 파랗게 보였다는 사실만은 인정한다는 것이다.
피론주의자는 비독단의 믿음으로 무엇을 얻는가?
보통 사람은 자신의 믿음이 참인지 거짓인지 항상 걱정하지만 피론주의자는 걱정할 것이 없다. 인간의 모든 고통은 외부 세계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외부 대상에 대한 독단적 판단을 유보하면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된다고 섹스투스는 주장한다.
섹스투스 엠피리쿠스는 누구인가?
피론주의를 신봉한 철학자, 의사다. 저작을 통해 피론주의를 소개하고 그에 대적하는 독단주의를 논파한다. 그 덕분에 우리는 고대 그리스의 회의주의를 비롯한 여러 철학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아카데미아 학파의 회의주의는 어떻게 시작했는가?
기원전 280년경 아카데미아의 수장이 된 아르케실라오스는 아카데미아 학파의 철학을 회의주의로 바꾸었다.
이유가 뭔가?
플라톤이 죽은 뒤 아카데미아는 플라톤 철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에 휩싸였다. 지도자에 따라 학풍이 바뀌었고, 점차 독단주의에 다가갔다. 그래서 아르케실라오스는 독단주의를 타개하려 했다. 그는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가 스스로 무지하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고 공언하면서 대화 상대자의 무지를 논박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논박술을 사용해 독단주의자, 특히 스토아 철학자들을 논파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자신이 모든 것에 대한 일체의 판단을 유보했기 때문에 스스로 무지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결과는?
아르케실라오스의 논변은 정치하고 매력이 있었다. 처음에는 많은 이들이 플라톤 철학이 회의주의였다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그 뒤 100년쯤 지나고서야 아카데미아 회의주의는 카르네아데스에 의해 완성된다.
그 뒤 아카데미아 학파의 회의주의는 어떻게 되었나?
카르네아데스 이후 후계자들은 회의주의 논변이 단순히 독단주의자를 논박하기 위한 대인논증일 뿐인지, 아니면 회의주의자도 무언가를 믿고 주장할 수 있는지 논쟁을 벌였다. 급기야 아카데미아의 중심인물이었던 안티오코스가 스토아 학파로 전향하기에 이른다. 결국 아카데미아 학파와 스토아 학파 사이의 논쟁은 스토아 학파가 스토아 학파와 싸우는 꼴이 되었다. 아이네시데모스는 이제 아카데미아 안에서 회의주의를 계속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피론을 시조로 하는 강력한 회의주의를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피론주의가 탄생하게 되었다.
아카데미아 학파의 회의주의와 피론주의는 무엇이 다른가?
섹스투스는 자연을 탐구하는 데 세 가지 길이 있다고 보았다. 독단주의, 아카데미아 학파의 회의주의, 피론주의가 그것이다. 독단주의자는 진리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진리를 발견했다고 단언함으로써 탐구의 길을 중단했다. 아카데미아 학파의 회의주의자는 진리를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부정적 독단주의에 빠진다. 아무것도 알 수 없다면 탐구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피론주의만이 독단주의에 빠지지 않고, 진리 발견의 가능성을 계속 모색한다.
이 책은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뽑아 옮겼나?
아나스타시아 마리아 카라스타디(Αναστασία-Μαρία Καραστάθη)의 그리스어 편집본, 로버트 버리(Robert Bury)의 영어 번역본, 헤르만 무치만(Hermann Mutschmann)의 독일어 번역본을 원전으로 삼았다. 피론주의의 주요 개념, 다른 학파와 차이, 독단주의자의 견해 반박 등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3분의 1 정도를 뽑아 옮겼다.
당신은 누구인가?
오유석이다. 백석대 기독교학부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