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판의 노래 정처 없는 삶의 이치란 알기 쉬운 것 만물의 하나라도 어긋나게 할 수 없다 물이 깊으면 물고기 즐거워하고 숲이 무성하면 새들이 돌아오는 것 노쇠한 나는 가난과 질병을 달게 받으리 부귀영화에는 시비가 따른다네 가을바람이 등받이와 지팡이에 불어와도 나는 이 북산의 고사리 싫은 줄 모르겠구나! 秋野 五首 其二 易識浮生理, 難敎一物違. …
가을비 탄식 빗속에 온갖 풀들이 문드러져 죽는데 섬돌 아래 결명은 빛깔이 곱구나 가지에 가득한 잎은 공작 깃털처럼 뒤덮이고 가지마다 활짝 핀 꽃 황금 동전 같아라 쓸쓸히 찬바람 네게 거세게 불어 대니 네가 장차 홀로 서 있지 못할까 걱정스럽다 마루 위의 서생은 부질없이 머리만 희어 바람결에 향기 맡고 눈물 흘린다 秋雨嘆 …
북레터 [주간 인텔리겐치아]입니다. 안녕하세요. 북레터 인텔리겐치아입니다. 당나라 시대 가진 것 없는 사람이 빨리 출세하는 방법은?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우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쉬울 리가 없지요. 출세를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예나 지금이나 혹독했습니다. 그리고 그 힘겨운 행군길에서 ‘변새시’라는 한시의 장르가 탄생합니다. 인간은 혹독한 환경에 처할수록 훌륭한 문학과 예술을 창조하나 봅니다. 제후에 …
북레터 [주간 인텔리겐치아]입니다. 안녕하세요. 북레터 인텔리겐치아입니다. 405년 11월, 도연명은 짧은 관직 생활을 끝냅니다. 집에 돌아가면서 ‘귀거래사’를 짓고 이렇게 말하죠. “굶주림과 추위가 비록 절실해도, 나에게 어긋나는 일들이 번갈아 괴롭게 했다. 시험 삼아 세간의 일을 따른 것은, 모두 입과 배가 나를 부린 것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과 어떻게 살 것인가의 갈등은 정말 …
겨울밤을 밝히는 이야기들 ≪전등신화≫의 ‘전등(剪燈)’은 등잔의 심지를 자른다는 말이다. 타버린 심지를 잘라내면서 밤을 새워 읽을 정도로 재미있다는 뜻이다. 봄이 멀지 않았지만 겨울밤은 아직 깊고 춥다. 겨울밤 동무로 삼을 것이 넷플릭스만은 아니다. 우리와 이웃 나라 선조들의 밤을 밝히게 했던 이야기들이다. 우지 습유 모노가타리(60편 정선) 일본 설화 문학의 전성기라 할 수 …
남과 다를 권리 중년 남자가 열 살 소녀를 만나 재워 준다. 남자는 남자를 사랑하고 소녀는 자신을 물고기라고 생각한다. 서로 과거를 찾아 오늘을 치유하며 남과 다를 권리를 이야기한다. 교육, 철학, 예술, 종교가 결국 나를 찾아가는 길일진대, 남과 다르지 않고 어떻게 내가 될 수 있을까. 벨기에 물고기 프랑스 신진 극작가이자 배우인 …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지던 날 <여름 꽃>의 작가 하라 다미키는 그곳에 있었다. 그 순간은 “마치 마술과도 같았다”. 다미키는 “현대 일본 문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문”으로 현대 일본의 가장 참혹했던 그날을 증언한다. 역사가 지배자와 승리자의 기록이라면 문학과 예술의 사명은 무엇이어야 할까. 하라 다미키 단편집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떨어질 때 하라 다미키도 그곳에 있었다. …
은빛 당나귀와 새로운 방송론 그곳에서 모든 아름다운 추억은 바래지 않는다. 삶의 고통과 어두움마저 잊지 않고 껴안는다. 스페인의 대 시인 후안 라몬 히메네스는 은빛 당나귀 플라테로와 함께 끝없이 배회한다. 더 많은 존재들과 아름다움이 그들의 자루에 담긴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과 일상의 희망을 대기에 발산하는 텔레비전의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간다. 모든 아름다운 …
원시(怨詩) 蓐食向東阡 새벽밥 먹고 동쪽 밭에 나갔다가 暮返荒村哭 저물어 황량한 마을에 돌아와 통곡하네 衣裂露兩肘 옷은 찢어져 양 팔뚝 드러나고 缾空無儲粟 단지는 텅 비어 남은 곡식이 없네 稚子牽衣啼 어린 자식은 옷 잡고 울어 대나 安得饘與粥 어디서 죽이나 미음을 얻을 건가 里胥來索錢 아전들은 와서 세금 독촉하고 老妻遭束縛 늙은 아내 돈 없어 묶여 …
2639호 | 2015년 6월 17일 발행 한국전쟁과 미디어 생활 3/10 잡지 총성과 포성의 대지에 잡지가 피었다 문제는 하루의 끼니, 거처, 그리고 가족 소식이었다. 포성은 멈추지 않았고 전사자의 수는 늘어 갔다. 그런데 어떻게 <<사상계>>, <<희망>>, <<학원>>, <<신태양>>이 태어날 수 있었을까? 전쟁은 잡지를 원했기 때문이다. 1950년대는 한국전쟁의 참화를 겪으면서 잡지 발행에 …
2454호 | 2015년 2월 17일 발행 송나라 사람, 진관의 사 송용준이 옮긴 진관(秦觀)의 ≪진관 사선(秦觀詞選)≫ 송나라 사람, 진관의 사 사는 시가 아니다. 곡에 붙이는 가사를 가리킨다. 진관의 노래는 우아함으로 저속함을 구제했다. 골력과 기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감상이 절제를 잃지 않았다. 踏莎行 유배지의 고독과 슬품 霧失樓臺, 안개 자욱하여 누대는 사라지고 月迷津渡, …
고독한 영웅의 노래, 송용준이 옮긴 진자앙(陳子昻)의 ≪진자앙 시선(陳子昻 詩選)≫ 멀리 보니 눈물이 흘러 다락에 올라 천지를 본다. 우주는 가없는데 인간은 너무 작다. 역사는 끝없는데 인생은 순간이다. 영웅의 뜻을 품었으나 외톨이 시인이 되었다. 登幽州臺歌 前不見古人 後不見來者 念天地之悠悠 獨愴然而涕下 유주의 누대에 올라 앞으로는 옛사람이 보이지 않고 뒤로는 올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천지의 …
여름 한시 5. 시 세계의 부처님은 누구인가? 박삼수가 옮긴 ≪왕유 시선(王維詩選)≫ 시선, 시성 그리고 시불 이백을 시의 신선이라 하고 두보를 시의 성인이라 할 때 시의 부처로 불리는 것이 왕유다. 몸은 관직에 있으나 마음은 자연에 두었다. 시로 그림을 그렸고 그림이 다시 시를 썼다. 자연의 이치가 인간의 길이 되었으니 부처가 아닐 수 …
여름 한시 4. 1813년, 조선의 페르소나 김갑기가 옮긴 신위(申緯)의 ≪신자하 시선(申紫霞 詩選)≫ 소식을 배워 두보에 들다 시로써 도를 구하였으니 엄정하나 흥이 없었다. 옹방강을 만난 뒤 신세계가 열린다. 시에서 페르소나의 영적 감흥이 피어올랐다. 두보의 신운을 터득하였다. 청수부용각에서 계유년(1813)에 청수부용각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홀로 주화모록지란 연못에서 시를 읊었다. 이곳 생각만 해도 더위를 …
여름 한시 2. 그곳엔 8월이면 눈이 날렸다 주기평이 옮긴 ≪잠삼 시선(岑參詩選)≫ 문인들의 전쟁길 전쟁이 이어졌다. 벼슬길은 멀었다. 문인들이 전장에 나갔다. 변경을 오가는 종군길, 황량한 풍광과 전쟁의 참혹, 병사의 고통 그 가운데 만남과 이별이 있었다. 변새시가 이렇게 시작된다. 하얀 눈의 노래로 서울로 돌아가는 무 판관을 전송하며 북풍이 땅을 휘말아 백초가 꺾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