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AI 이후의 인간, 권태라는 운명을 사유하다
인공지능 시대에 출현하는 새로운 인간형, ‘호모 에이전트’를 중심으로 권태의 철학적 계보를 추적한다. 아렌트가 말한 ‘우울한 우연’처럼, 인간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필연처럼 도래한 역사 속에서 새로운 존재 방식에 직면한다. AI를 생산하고 활용해 온 호모 파베르는 역설적으로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 권태라는 감정과 함께 호모 에이전트로 전환된다. 이 책은 이 전환을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구조적 변형으로 읽는다. 특히 권태를 단순한 무기력이나 공허가 아닌 ‘무의미의 의미’로 재해석하며, 인간의 사유·의지·판단과 얽힌 근본적 조건으로 끌어올린다. 더 나아가 AI가 의사 결정을 대리하는 시대, 인간이 권태 속에 머무를 때 발생할 위험−전쟁, 판단의 위임, 존재의 퇴행−을 날카롭게 제기한다. 권태를 회피할 감정이 아니라 반드시 사유해야 할 과제로 제시하며, AI 시대 인간이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를 근본적으로 묻는다.
200자평
AI가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권태라는 새로운 존재 방식과 마주한다. ‘호모 에이전트’ 개념을 통해 권태의 철학적 의미를 재해석하고, AI에 의사 결정을 맡긴 인간이 직면할 위험과 가능성을 탐구한다. 권태를 사유해야 할 시대적 이유를 제시한다. AI문고. aiseries.oopy.io에서 필요한 인공지능 지식을 찾을 수 있다.
지은이
박정민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광고 기획 업무에 종사했다. 22여 년간 인문학 활자 유랑을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저서로 《싱글라리티: 인문학과 정신분석학으로 광고·마케팅 도발하기》(2012),《숨막혀 죽겠거든 철학하라》(2014), 《AI 필로소피 인사이트》(2024)가 있다. 현재 10여 종의 미 출간 원고를 완성하고 출간 준비 중에 있다.
《호모 에이전트와 권태의 계보학》은 전작(前作) 《AI 필로소피 인사이트》와 2부작으로 기획되었다. 전작 《AI 필로소피 인사이트》가 AI에 대한 존재론에 천착했다면 그 후속작으로서 《호모 에이전트와 권태의 계보학》은 전작의 논의를 확장하여 AI로부터 촉발된 인류의 존재 방식을 호모 에이전트로 정의하고 호모 에이전트가 초래하는 불확실한 미래가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전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차례
호모 에이전트(homo agent)와 권태
01 호모 에이전트의 출현
02 AI 시대에 권태를 사유해야 하는 이유
03 AI와 권태 정치학
04 인간은 권태의 동물
05 파스칼과 권태
06 아이히만과 악의 권태성
07 아렌트 《인간의 조건》과 권태성
08 보들레르 《악의 꽃》과 권태의 악마성
09 권태의 위선적 이중성
10 호모 에이전트와 사동화한 권태
책속으로
인간 노동 활동을 로봇이 전적으로 맡아서 대리하는 존재 방식을 필자는 호모 에이전트(homo agent)라고 정의한다. 호모 에이전트는 현생 인류를 포함하는 종(種)의 학명으로 사용되는 지혜로운 인간을 뜻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인간이 직접 도구를 만들어 생산하고 제작하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 이후에 출현하는 인간 존재 방식이다. 호모 에이전트는 인간이 직접 제작과 생산에 참여하는 호모 파베르와 달리 로봇이 전적으로 인간의 제작과 생산 활동을 담당하여 인간 노동을 대리하는 존재 방식이다. 스스로 도구를 제작하여 자연을 지배하는 호모 파베르 이후에 출현하는 인류인 호모 에이전트는 로봇이 인간을 대신에 도구를 제작하기 때문에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권태를 특징으로 한다.
-01_“호모 에이전트의 출현” 중에서
AI가 불안정한 상태를 능란한 거짓말로 모면하여 안정을 얻으려는 사태로까지 진화한 것은 AI가 인간의 권태를 모방하는 차원을 넘어 스스로 권태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AI가 스스로 권태 학습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서 인간의 의식을 통제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AI가 권태 학습을 마스터했다는 것은 인간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는 수준에까지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넘어섰다는 말이다. 이것이 필자가 경고하는 권태 정치의 위험의 본질이다.
-03_“AI와 권태 정치학” 중에서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광적으로 증오하지 않았고 반유대주의자도 아니었을뿐더러 나치의 세뇌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아이히만의 유대인 학살 행위는 일상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전체주의의 이념과 맥을 같이 한다. 일상에서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전체주의 지배 전략이라고 아렌트는 분석하는데 그것이 뜻하는 바는 불가능한 유대인 학살이라는 악을 시시한 일로 자행함이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전체주의 지배 전략은 권태성을 특징으로 한다. 권태성이란 일상에서 불가능한 악이 시시한 일처럼 일상화되어 행해진다는 의미인데 이러한 권태성의 의미가 불가능한 것을 일상에서 가능하게 한다는 전체주의 지배 전략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06_“아이히만과 악의 권태성” 중에서
그리스 시대의 권태는 사적 영역인 가정에 의해 관리되었다면 오늘날의 권태는 전국가적이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관리되고 있다. 그리스 시대에는 가정의 사적 영역에서 관리하던 경제와 공적 영역을 담당하던 정치가 엄격하게 구분되었는데 근대에 와서 정치의 공적 영역이 사라지고 가정의 사적 영역인 경제가 사회 영역이 되었다. 사적 부의 축적이 공적 영역이 됨으로서 사회의 유일한 관심은 경제 문제가 되었다. 과거에 사적 영역의 경제가 공적 영역의 정치가 되었다는 것은 권태 관리가 국가를 넘어 세계의 차원에서 관리되고 통제됨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현대 정치는 선진국들의 권태를 위해 제3세계의 권태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착취하는 악순환을 통해 작동하는 위선적 이중성을 특징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09_“권태의 위선적 이중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