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김조규는 1931년 등단해 평양 문단을 중심으로 시작 활동을 했다. 그에게 시는 식민지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새로운 형식을 통해 내포된 진실을 드러내는 것, 기존 시에 대한 반발은 곧 현실 체제에 대한 반성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민족의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새로운 정신을 구축하는 것이 식민지 지식인이자 모더니스트인 김조규의 대안이었다.
김조규 시의 모더니즘은 1938년 평양의 모더니즘 동인지 ≪단층≫에 가담했을 때 절정에 달한다. 그는 초현실주의적이고 표현주의적인 모더니즘 기법을 차용해 풍경과 사물을 이미지화하는 것을 통해 억압적인 현실을 해체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 시기 발표한 시들이 가장 실험적이며 감각적이다. 색채어와 외래어, 특히 한자어를 빈번하게 사용한다. 이와 함께 고도로 함축된 의미를 가진, 암울하고 악의적이며 저항적인 시어들을 사용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절망과 부정을 표출하고 이를 통해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과 새로운 전망을 고민하게 한다.
이후 김조규는 만주에 건너가 창작 활동을 지속하는데, 만주에 머물 무렵 발표한 시들과 ≪만선일보≫에 실린 <대두천역(大肚川驛)에서> 등에는 화자와 민족이 처한 낯선 공간에서의 고단한 현실이 보다 사실적으로 형상화된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유랑으로 인한 외로움을 표출함으로써 민족의 현실에 대해 분노하고 고민하는 화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모더니즘적 경향은 약화되었지만,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은 여전히 치열하게 표출된다.
김조규의 시는 경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모더니즘과는 구별되고자 했던 평양의 모더니즘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한다. 평양의 모더니즘은 민족이 처한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문학적 시도로서 기존의 질서와 가치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정신, 새로운 나라를 구성하고자 하는 지향성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중심에 김조규가 있었다. 해방 이후 북한 체제에서 발표된 시들은 당의 창작 지침에 따라야 하는 북한 사회의 특성상 문학적인 가치를 평가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아직 채 논의하지 못한 평양의 모더니즘을 규명하기 위해서 그의 해방 이전의 작품에 대해서는 보다 활발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200자평
1930년대, 경성에 이상, 김광균이 있었다면 평양에는 김조규가 있었다. 모더니즘을 통해 식민지 현실을 적극적으로 타개하려 했던 평양의 모더니스트 김조규. 재북 작가라는 이유로 그동안 외면당했던 그의 작품을 만난다.
지은이
김조규(金朝奎, 1914~1990)는 1914년 평안남도에서 출생, 1931년 등단 이후 평양을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해방 이후에도 북한에서 창작 활동을 지속했던 까닭에, 1930∼1940년대 시단에서 주목받았던 시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에서는 논의되지 않았다. 1988년 월북 문인 해금 조치 이후 동생인 김태규 시인과 김조규가 수학했던 숭실전문학교를 전신으로 하는 숭실대학교를 중심으로 그에 대한 재조명이 시도되었고 이를 계기로 김조규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었다.
김조규는 1914년 1월 20일 평안남도 덕천군 태극면 풍천리에서 김명덕 목사의 2남으로 출생했다. 1926년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했고 1929년에는 광주학생사건으로 체포되어 평양 감옥에서 미결수로 복역했다. 1931년 10월 ≪조선일보≫에 시 <연심(戀心)>, ≪동광≫에 시 <검은 구름이 모일 때>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32년 평양 숭실전문학교 문과에 입학, 1937년 졸업해 함북 성진 보신학교 교사가 되었다. 1938년 ≪단층(斷層)≫의 동인으로 활동했고 ≪맥(貘)≫에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1939년 만주 조양천 농업학교에서 영어 교사를 했다. 1941년 만선일보 편집국에 입사, 박팔양, 안수길 등과 기자 생활을 했다. 1942년 ≪재만 조선 시인집≫(예문당)을 편집, 출판했고 1945년 3월경 만주에서 돌아와 해방을 맞이했다.
해방 직후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 편찬 작업에 착수했고 10월 평양예술문화협회 창립에 동참했다. 1946년 1월 평양예술문화협회가 강제 해산되면서 2월에 문학동맹에 편입되었고, 조선신문 편집 기자로 일했다. 1947년 시집 ≪동방≫(조선신문사)을 출판했다. 1947년 조선신문이 폐간된 후 평양예술대학 교수가 되었다. 1950년 종군 작가단에 참여했고, 1951년에는 시집 ≪이 사람들 속에서≫를 출판했다. 작가동맹 기관지인 월간 ≪조선문학≫, 월간 ≪문학예술≫의 책임 주필이 되었다. 1952년 조선인민중국방문단 부장으로 중국을 방문, 12월에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열린 세계인민평화대회에 대표로 참가했다. 김일성대학 문과대학 교수가 되어 1956년 8월까지 근무했다. 시집 ≪김조규 시선집≫(조선작가동맹출판사), 동시집 ≪바다가에 아이들이 모여든다≫(아동도서출판사)를 출판하는 등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했다. 1990년 12월 3일 별세했다.
옮긴이
추선진(秋善眞)은 1977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문학에 매료된 청소년기를 보내고, 1995년 경희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 1999년 졸업했다. 같은 해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 2012년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민족 문화권의 문학 1·2≫, ≪한국현대문학 100년 대표소설 100선≫, ≪문학비평용어사전≫ 집필에 참여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의 ≪천맥≫, ≪초판본 박팔양 시선≫, ≪자유 부인≫을 엮었다. 현재 경희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차례
戀心
歸省詠
검은 구름이 모일 때
廢墟에 빛인 가을 夕陽이여
이날도 저들의 가슴엔
어버이 잃은 당신 가슴이
懷鄕曲
달빛 흘으는 浦口의 밤
故鄕에 숨은 노래
소[牛]
가을의 嘆息
農家의 여름 아침
누이야 故鄕 가면은
좀먹는 時代의 廢物이여
歸鄕者
봉투 속의 꽃
三春 泣血
無名鳥
離別
제비
汽車는 지금 이슬에 젖은 아침 平原을 달린다
喇叭 소리
六月頃
湖水
片紙函의 꽃
農家의 黃昏
山中有懷
梧桐닙
新年頌
겨울
初春 村景
詩 二 篇
街路樹
戀慕
寂寥
風景畵
五月의 憂鬱
臧書 없는 書齋에서 季節의 나히를 헤여 보리라
가을 十月
灰色의 譜表
다시 北으로
素描
素描 續篇(上)
素描 續篇(中)
素描 續篇(下)
黃昏의 心像
한 식료품 상점 앞에서
어느 한 결혼식장에서
夕暮의 思想
NOSTALGIA
深夜 二 題
고독한 풍경
수평선에게(1)
수평선에게(2)
花甁
三角窓
北으로 띠우는 便紙
午後 두時의 山谷
窓
素服한 行列
밤. 埠頭
露臺의 午後
猫
猫
海岸村의 記憶
바다의 추억
에트란제
女人과 海岸과 슬픈 餞別
鄕愁
野獸 一節
夜獸(第二節)
少年의 一代記
편지
疲困한 風俗
海岸의 傳說
두만강
病든 構圖
3등 待合室
가야금에 붙이여
카페 “미쓰 조선”에서
한 詩人의 푸로필
北行 列車
담배를 물고
延吉驛 가는 길
밤과 女人과 나와
胡弓
室內
葬列
南風
大肚川驛에서
火爐를 안고
찌저진 포스타가 바람에 날리는 風景
새들은 날아가는데
한 交叉驛에서
그 자욱 더욱 뚜렷이
病記
밤의 倫理
仙人掌
전선주[電柱]
茶店 “알라라드” 2章
그 밤의 생명을
追憶의 바다가에서
南湖에서(1)
南湖에서(2)
貴族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歸省詠
당신이 업섯드면 무엇 보고 차젓스리
이곳은 골 깁흐고 길 험악한 곳이어늘
내 무엇 바라보고서 이 山길을 걸엇스리
당신을 맛낫슬 아득함을 늣겻나니
그동안 가슴속에 싸힌 설음 북받처 와
눈물이 압흘 가리워 벙어리가 됐것노라
당신은 靑春이오 나도 또한 젊엇거늘
이 나라 젊은이게 엇지 설음 업슬가만
모든 것 설업다 말고 서루 밋고 지냅시다
●故鄕ㅅ사람
故鄕ㅅ사람들이 그립음니다
마음이 어린 아기와 같이 순박하고
얼골이 南海의 土人보다도 검은
무쇠 같은 사나희, 故鄕ㅅ사람들이 그립음니다
사람들은 비웃읍니다
“무지하기가 深山의 곰보다 더하고
어리석기가 불나뷔 같은 싀골ㅅ사람
世紀에 뒤떠러진 뒤더쥐들이어”
不純한 音響과 濁流가 골목골목에 여울저 흘으는
都市 사람들은 코우숨 칩디다
그렇나 나는 그들을 어머니와 같이 그리워합니다
내음새 나는 똥과 흙을 그의 아들과 같이 사랑하고
野心과 거즛을 그의 원수같이 미워하는
소 같은 사나희 故鄕ㅅ사람들이 그립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