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시모노세키조약을 통해 타이완에 대한 식민 지배를 시작한다. 1945년에 이르러 50년간의 일본의 식민 지배가 끝난 뒤 1949년에는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철수하면서 타이완은 또 한 번의 역사적인 격변기를 겪는다. 일본은 식민 지배 시기에 토지개혁, 화폐와 도량형 개혁, 철도와 도로 건설, 인구조사 등 근대적 제도를 시행함으로써 타이완을 ‘근대화’시키는 한편 그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타이완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했다. 일본 식민 당국이 황무지에 가까운 땅을 정비하고 교육과 의료 시설을 만들고 새로운 문화를 시행하면서, 타이완 사람들은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이전에 비해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게 된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속적인 착취와 동화정책으로 인해 고통을 겪어야 했다. 모든 학교에서 일본어 교육을 실시하고 국가기관에서는 중국어 사용을 금지시키는 등 일본에 의해 타이완은 철저히 일본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타이완의 신문학(현대문학)은 이러한 현실에 회의를 느끼는 지식인들이 늘어나면서 태동하고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5․4운동 이후 중국 대륙의 신문학의 상황과 흡사했다. 1921년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던 타이완 학생들이 타이완문화협회를 설립하고 ≪타이완(臺灣)≫이라는 간행물을 출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타이완 신문학이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이 잡지를 통해 타이완문화협회는 대륙에서 전개되는 백화운동을 소개하거나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나려면 자국어의 사용으로 정신적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계몽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5․4신문학운동의 영향을 받아 1920년대 초 타이완은 문언문(고문)을 반대하고 백화문(현대문)을 제창하면서 구문학을 반대하고 신문학을 제창하는 내용의 문학 개혁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타이완 신문학의 발전은 일제 식민 시기 타이완 사람들의 정치적 권리를 쟁취하는 운동과도 맥을 같이했고, 이에 따라 그 형식에서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타이완 신문학의 역사와 함께한 라이허는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 사상 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선도한 대표적인 타이완의 작가다. 라이허는 낮에는 의사로 밤에는 작가로, 뿐만 아니라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자이자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항일운동가로 활동했다. 1920년대 초반부터 창작 활동을 시작해 1925년 ≪타이완민보(臺灣民報)≫를 통해 그의 첫 작품인 <무제(無題)>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산문과 시가 결합되어 있는 새로운 형식으로 사랑하는 여자가 시집을 가 버리면서 실연한 남자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고 진실되게 묘사했다. 이듬해 그는 타이완 최초의 현대 단편소설인 <흥 겨루기(鬪鬧熱)>를 시작으로 1925년부터 1935년 사이에 소설, 시, 산문 등을 다량 창작했는데, 타이완 신문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그의 작품들에서는 기존의 중국 대륙 문학과 차별화되는 점들이 나타난다. 그것은 중국 표준어와 민난(閩南) 방언 및 문언과 일본어가 혼재하는 다언어를 사용하는 문체적인 특성과 일본 식민지 통치에 놓인 타이완의 현실과 타이완 사람들의 어려움을 다룬다는 내용적인 특성이다. 라이허는 당시 타이완에서 신문학운동에 가담했고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직접 눈으로 목격하면서 창작 활동을 펼쳤다. 이 책에 실린 총 8편의 단편소설은 일제 식민지 통치의 죄악과 그에 따른 타이완 민중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타이완 사람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0자평
‘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타이완 신문학의 아버지’, ‘타이완의 루쉰’이라고 불리는 라이허의 소설을 국내 최초로 출간했다. 이 책에 실린 8편의 소설은 라이허의 단편소설 중에서 그의 문학적 특징과 시대적인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들로, 일제 식민지 통치의 죄악과 그에 따른 타이완 민중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타이완 사람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은이
라이허는 20세기 초 타이완에서 시대적 변화에 따른 새로운 문화와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지식인 중 한 명이자 타이완에 대한 일본의 식민 지배 역사와 일생을 거의 함께했던 인물이다. 라이허는 청나라 광서(光緖) 20년 5월 28일 장화(彰化)에서 태어났으며, 1895년 청일전쟁에서 중국의 패배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일본제국의 식민지 신민이 되었고, 일제 당국에 의해 두 차례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후 타이완이 해방되기 직전인 1943년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옮긴이
김혜준은 고려대학교 중문과에서 중국 현대문학을 전공하고 ≪중국 현대문학의 ‘민족 형식 논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그동안 홍콩 중문대학, 중국 사회과학원,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 등에서 연구생 또는 방문 학자 신분으로 연구를 했다. 구체적 학문 분야로는 중국 현대문학사, 중국 신시기 산문, 중국 현대 페미니즘 문학, 홍콩 문학, 화인 화문 문학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단독 또는 공동으로 ≪중국 현대문학 발전사≫(1991), ≪중국 당대 문학사≫(1994), ≪중국 현대 산문사≫(1993), ≪중국 현대 산문론 1949∼1996≫(2000), ≪중국의 여성주의 문학비평≫(2005) 등 관련 이론서를 번역하기도 하고, ≪하늘가 바다 끝≫(2002), ≪쿤룬산에 달이 높거든≫(2002), ≪사람을 찾습니다≫(2006), ≪나의 도시≫(2011) 등 수필 작품과 소설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다. 저서로 ≪중국 현대문학의 ‘민족 형식 논쟁’≫(2000)이 있고, 논문으로 <화인 화문 문학(華人華文文學) 연구를 위한 시론>(2011) 외 수십 편이 있다. 개인 홈페이지 ‘김혜준의 중국 현대문학(http://home. pusan.ac.kr/∼dodami/)’을 운영하면서, <한글판 중국 현대문학 작품 목록>(2010), <한국의 중국 현대문학 학위 논문 및 이론서 목록>(2010) 등 중국 현대문학 관련 자료 발굴 및 소개에도 힘을 쏟아 왔다. 근래에는 부산대학교 현대중국문화연구실(http://cccs.pusan.ac.kr/)을 중심으로 청년 연구자들과 함께 공동 작업을 하는 데 노력하고 있으며, 이번 번역 역시 그 결과물 중의 하나다.
이고은은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일본 화인 화문 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부산대학교 현대중국문화연구실에서 이번 번역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공동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1980년대 이후 일본의 중국인 문학 연구>(석사학위 논문, 2008. 2), <일본 화문 문학의 여성적 글쓰기 연구(論日本華文文學的女性寫作)>(2008. 10), <경계에서 말하다: 양이(楊逸)의 <시간이 스며드는 아침>을 중심으로>(2010. 4) 등이 있고, 그 외 중국 영화 관련 리뷰인 <사랑…. 저 기억 너머>(2008. 8)가 있다.
차례
흥 겨루기(鬪鬧熱)
저울(一桿稱仔)
마음 같지 않은 신년(不如意的過年)
뱀 선생(蛇先生)
낭만외기(浪漫外紀)
가여운 그녀, 죽다(可憐她死了)
귀향(歸家)
말썽(惹事)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법! 아, 이는 참으로 귀하고도 중한 말일지니, 언제 누가 창조해 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참으로 유익하기 짝이 없는 발명이므로 지금까지도 전매특허라는 특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그것이 있음으로 해서 사람들은 감히 나쁜 짓을 못하는 것이요, 돈 있는 사람은 도적질의 위험을 면하게 되는 것이요, 가난한 사람 역시 분수에 따라 굶주림을 참으며 죽기만을 기다릴 수가 있는 것이다. 법이란 침범할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이 정한 조례와 그 권위가 미치는 것이라면 모든 인류가 준수하고 떠받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곧 범법이 되는 것이며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만 하니, 가벼우면 감금이요 무거우면 사형이다. 이는 법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인 것이다. 일단 법이 권위를 상실한다면 그것의 특권을 소유한 자―즉 그것으로 밥을 먹고사는 자―는 틀림없이 굶어 죽을 것이므로 여태껏 가벼이 대한 적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법은 그것의 특권을 소유한 자에게는 대단히 이익이 되는 것이며, 만일 일반 시민이 법률 바깥에서 자유를 가지거나 또는 법률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면, 그들은 이익 면에서 백 퍼센트 완벽하지는 않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인류의 모든 행위, 심지어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사상까지도 신성한 법률로 간섭하고 단속하며, 인류의 일상생활과 먹고 마시고 자고 일어나는 것 또한 법률의 용인 속에서만 무사함이 보장되는 것이다.
-<뱀 선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