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을 사랑하고 농촌을 노래했던 농민 시인이 있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도 십억 중국 인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향토 시인이 있다.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 짱커자의 대표 시집 <낙인(烙印)>을 통해 진정한 ‘생활’의 시를 만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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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짱커자(臧克家) 시인이 99세의 나이로 2004년 2월 5일 저녁, 하늘로 돌아갔다. 그는 중국 현대 시사에서 농민 시인, 향토 시인, 대지 시인, 고음(苦吟) 시인 등으로 불리며 반(半)식민지 반(半)봉건사회 속에서 신음하는 중국 민중의 삶을 노래했다. 특히 1930년대 아이칭(艾靑), 톈젠(田間) 등의 시인과 함께 현실주의 시파를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서정과 서사를 결합한 새로운 풍격의 시문학을 선보이며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양 측면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신월파의 대표 시인이었던 원이둬로부터 시를 배웠으면서도 신월파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으며, 1930년대 중국시가회의 프롤레타리아 시문학 경향과도 다른 독창적인 리얼리즘 경향의 시를 창작했다. 그리고 한평생 온몸으로 중국 혁명의 길을 시와 함께 걸어가며 중국의 대지와 민중들의 생명을 노래하는 대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그가 1949년 루쉰을 기념하며 “어떤 사람은 살아 있지만, 이미 죽었다. 어떤 사람은 죽었지만 아직 살아 있다(有的人活著 他已經死了; 有的人死了 他還活著)”라고 썼던 <어떤 사람(有的人)>이라는 시는 1989년 천안문 광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낭송되었다. 시인은 떠나갔지만 그 시인의 아름다운 명시들은 지금도 남아 다시 그 시인을 떠올리게 한다.
200자평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 짱커자(臧克家)가 99세의 나이로 2004년 2월 5일 저녁, 하늘로 돌아갔다. 그는 중국 현대 시사에서 농민 시인, 향토 시인, 대지 시인, 고음(苦吟) 시인 등으로 불리며 반식민지 반봉건사회 속에서 신음하는 중국 민중의 삶을 노래했다. <낙인>은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 짱커자의 대표 시집이다.
지은이
짱커자는 1905년 10월 8일 산둥성(山東省) 주청현(諸城縣) 짱자좡(臧家莊)의 몰락한 봉건 관료 지주 가정에서 태어났다. 호는 샤오취안(孝荃)이며 짱청즈(臧承志), 허자(何嘉) 등의 필명을 사용했다. 짱커자는 봉건 관료 집안에서 구사회의 낡은 제도들을 증오하며 광명과 자유를 지향했다. 열여덟 살 때까지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 없이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자라며 농민들의 가난과 고통을 직접 체험하고 구사회의 불평등을 인식했다. 그리하여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시에 대한 열정과 농촌 민중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동정이 그의 영혼 속에서 자라나며 그의 시문학의 뿌리를 이루게 되었다.
1930년 가을 국립칭다오(靑島)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당대의 저명한 시인인 원이둬가 있는 국문과로 전과해 그로부터 정식으로 시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당대 최고의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 라오서(老舍), 왕퉁자오(王統照) 등으로부터 중국 고전문학과 서양 현대문학을 배우게 되었다. 특히 대학 3학년 때 스승의 도움으로 첫 시집 ≪낙인(烙印)≫을 자비로 출판했다. 이 시집에 실린 시 22수에 대해 원이둬는 그의 시가 생활의 의미를 담고 있는 훌륭한 시라고 평가하며, 짱커자는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에 비교될 만한 좋은 시인이라고 칭찬했다. 소설가 마오둔(茅盾)도 이 시집은 철학이나 연애를 다룬 내용 하나 없이 소박한 시구로 일반 민중들의 생활을 잘 묘사했다고 지적하며, 그를 당대의 청년 시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문단의 조명을 받으면서 짱커자는 계속해서 ≪죄악의 검은손(罪惡的黑手)≫과 ≪운하(運河)≫ 및 ≪자화상(自己的寫照)≫ 등의 시집을 출판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문예 선전 공작에 종사해 중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항전 시를 창작했으나 1943년경에는 전쟁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조용한 생활을 하면서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탐구하는 농촌 전원시 <흙의 노래(泥土的歌)>를 창작함으로써 그의 시문학의 원숙함을 보여 주고 있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중국의 내전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정치 서정시 계열의 <생명의 가을(生命的秋天)>과 <민주의 바다(民主的海洋)> 등을 창작했다. 그 후 그는 국통구(國統區: 국민당이 통치하는 구역)의 어두운 현실을 폭로하며 국민당의 탄압을 피해 홍콩으로 망명했다가 인민의 운명과 국가의 전도를 걱정하는 신랄한 정치 풍자시 <생명의 0도(生命的零度)>,<겨울(冬天)> 등을 창작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 그는 중국작가협회 이사 등을 지내고 ≪시간(詩刊)≫이란 잡지를 창간해 주편(主編)을 맡았으나, 문화대혁명 때에는 혹독한 비판을 받고 책과 원고들을 압수당하며 전혀 문학 활동을 하지 못했다. 1976년 사인방 세력이 몰락한 후 다시 잡지를 복간하고 하방 때의 생활에 근거해 구체 시집을 창작하고 많은 산문집을 출판했다. 1980년대에서 들어와서도 시집 ≪낙조홍(落照紅)≫을 출판했다. 2004년 2월 5일, 9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옮긴이
박남용은 1968년 충북 옥천에서 출생했다. 1987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에 입학해 동 대학원에서 중국 현대시를 전공하며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8년에는 ≪시세계≫를 통해 문단에 데뷔했으며, 계간 문예지 ≪미네르바≫의 편집장과 편집위원을 지냈고 현재는 계간 ≪시평≫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사 학위논문으로 <아이칭(艾靑)의 근대 체험과 시적 이미지 연구>가 있고, 기타 한중 현대시 비교 연구에 관한 논문이 많이 있다. 공저로 ≪중국 시의 전통과 모색≫(신아사), ≪중국 현대문학과의 만남≫(동녘), 공역으로 ≪20세기 중국 문학의 이해≫(청년사) 등이 있다. 한국외대, 강남대, 동덕여대, 상지대, 영동대, 평택대 등에 출강했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BK21신한중문화전략사업단 연구교수로 활동 중이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제1부 낙인(烙印)
서(序)
난민(難民)
우환(憂患)
희망(希望)
생활(生活)
낙인(烙印)
번갯불(天火)
불면(失眠)
한 알의 모래알처럼(像粒砂)
변화(變)
머지않아 그런 날 있겠지(不久有那麽一天)
만국 공동묘지(萬國公墓)
도시의 밤(都市的夜)
늙은 말(老馬)
늙은이(老頭兒)
할아범(老哥哥)
석탄 귀신(炭鬼)
신녀(神女)
가마 일을 맡은 여자(當爐女)
인력거꾼(洋車夫)
생선 파는 아저씨(販魚郞)
고기 잡는 노인(漁翁)
휴식하는 노동자(歇午工)
제2부 죄악의 검은 손(罪惡的黑手)
서(序)
반(盤)
어린 계집종(小婢女)
죄악의 검은 손(罪惡的黑手)
불빛 그림자(亮的影子)
장사의 마음(壯士心)
자백(自白)
제사(弔)
정월 대보름(元宵)
마을의 밤(村夜)
창 없는 방(無窓室)
객의 물음에 답하며(答客問)
민요(民謠)
생명의 외침(生命的叫喊)
새해(新年)
도시의 봄(都市的春天)
떠돌이 시인(流亡的詩人)
마당에서의 여름밤(場園上的夏夜)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나는 쓴 즙을 씹으며 살아가는
파두(巴豆)를 먹는 벌레처럼
허공에 걸어 놓은 듯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호흡조차도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