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사행록’
≪빈왕록(賓王錄)≫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사행록’이다. ‘사행록’은 사신 행차에 대한 기록이다. ≪빈왕록≫은 ≪제왕운기≫의 저자로 유명한 이승휴가 서장관(書狀官)으로 임명되어 1273년 원나라 수도 대도(大都: 현 북경)를 다녀온 후 1290년 10월에 편집해 남긴 사행 기록(使行記錄)이다. 현재 ≪빈왕록≫은 이승휴의 문집(文集)인 ≪동안거사집(動安居士集)≫ 권4에 수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내용으로 보아서는 문집 안에서 독립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빈왕록≫은 1개월여 동안 원나라 수도를 향해 가는 과정뿐만 아니라 대도에 도착해서 사절의 예식 절차와 당시의 정경 등을 묘사하고 있어 사료(史料)로서의 가치가 크다.
사행단(使行團)의 여로(旅路)와 의전(儀典)
≪빈왕록≫은 서문에서 ‘어느 날 상자를 뒤지다가 지난날의 삶의 부침(浮沈)이 새로워 사행 기록을 한 부 엮어서 ≪빈왕록≫을 냈다’라는 말과 함께 책 전체를 간단히 요약,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본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개경을 1273년 윤 6월 9일(양력 7월 24일) 출발해 8월 4일(양력 9월 16일) 대도에 도착할 때까지 통과하는 지역 연도(沿道)의 풍물·유적과 장마로 인한 사행단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7언 절구, 율시, 배율, 고시 등의 형태로 읊고 있다.
두 번째는 대도에 도착해서 황제를 만나기 전 중추일에 천복사(薦福寺)의 당두노숙(堂頭老宿)을 만나서 시를 지어주고, 8월 21일에는 여강(濾江) 석교(石橋) 관람 길에 올랐다. 이 석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노구교(蘆溝橋)다. 8월 24일에 황제인 세조(世祖)를 만나 표문을 올리고, 그 후 황후(皇后), 황태자(皇太子), 중서성 단사관(斷事官) 등을 만나 사절로서 예수(禮數)를 행하는 등의 절차를 정리했다. 이때 원 황제에게 올린 표문(表文)이 격식에 맞는 문장이라 하여 칭송이 자자했다. 그 표문 때문에 이승휴는 문장으로 중국을 감동시킨 사람이라고 지칭되었다.
200자평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사행록’이다. ≪빈왕록≫은 이승휴가 서장관에 임명되어 1273년 원나라 수도 대도(북경)를 다녀온 후 1290년 10월에 편집해 남긴 기록이다. 1273년 원나라 황제가 황후와 황태자의 책봉을 천하에 반포하자, 고려에서는 이를 축하하는 사절단을 파견하게 된다. 이승휴는 사절단의 서장관이라는 직책으로 임명되고, 사행 길에 겪은 일과 황제를 만나 예를 표하는 예식까지 장장 112일에 이르는 이야기를 ≪빈왕록≫에 담았다.
지은이
이승휴(1224~1300)의 자는 휴휴(休休), 자호(自號)는 동안거사(動安居士)다. 9세에 독서를 시작하여 12세에 ≪좌전(左傳)≫과 ≪주역(周易)≫ 등을 익혔다. 14세에 아버지 상을 입고 종조모인 북원군부인(北原郡夫人) 원씨(元氏) 밑에서 양육되었다. 그 후 몽고 침입으로 고려 정부가 천도(遷都)한 강화도로 들어가서 낙성재(樂聖齋) 도회소(都會所)에서 수업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교유 관계를 맺게 된다. 29세에 과거 시험에 급제했다. 과거 급제 후 홀어머니가 있는 삼척으로 금의환향했으나, 몽고의 침입으로 환도하지 못하고 두타산 구동(龜洞)에서 농사를 지으며 홀어머니를 봉양했다. 원나라에서 황후와 황태자를 책봉한 사실을 알려오자 원나라에 가서 책봉을 하례했다. 원나라에서 올린 그의 표문(表文)은 원 세조(世祖)와 낭리(郎吏)들의 탄복을 받았다. 동행했던 송송례도 “문장이 중국을 감동시킨다는 말은 임자를 두고 하는 말이오”라고 탄복했다. 충렬왕 6년에 국왕의 실정 및 국왕 측근 인물들의 전횡을 들어 10개조로 간언했다가 파직된 후 국사(國事)와 세론(世論)에 일절 함구하고자 했다. 77세를 일기로 고단한 생을 마쳤다. 저서는 ≪제왕운기≫와 ≪동안거사집≫이 남아 있다.
옮긴이
진성규는 경북 예천에서 출생했다. 은풍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서당에서 3년 동안 한학을 공부했다. 예천의 대창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3년 여 공무원 생활을 했다.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 및 중앙대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문학석·박사).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 중앙연구원) 및 부산여대(현 신라대)를 거쳐 현재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현재 중앙대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진각국사 혜심연구≫, 공저로는 ≪신라의 불교사원≫, ≪인물로 본 한국불교사상사≫, ≪한국사상사입문≫ 등이 있다. 역서로는 ≪서하집(西河集)≫, ≪원감국사집(圓鑑國師集)≫, ≪계와문집(溪窩文集)≫, ≪경기금석문대관(京畿金石文大觀)≫ 등이 있다.
차례
빈왕록(賓王錄)-서문을 곁들임
1. (1273년) 이달 11일 패강(浿江) 도중 바로 읊다.
2. (1273년 6월) 12일 금암(金岩)으로 가는 길에
3. (윤 6월) 길은 분수령(分水嶺)을 지나기에 한 수 남겨두다
4. (1273년) 이달(윤 6월) 29일에 비로소 동경(東京)에
5. (1273년) 7월 9일 사로(斜路)에서 길을 떠나
6. (1273년) 이달(7월) 16일 악두참(渥頭站)에 도착하고
7. (1273년) 이달(7월) 29일 신산현(神山縣)에 이르러
8. (1273년) 이달(7월) 그믐날(30일) 병풍산(屛風山)을 경유하여
9. (1273년) 8월 4일 연경(燕京)에 들어가려고
10. 차운하여 봉답(奉答)하다
11. (1273년) 중추(中秋) 이튿날 정 시랑의 기재(忌齋)
12. (1273년) 이달(8월) 21일 후저를 모시고
13. (1273년) 이달(8월) 24일 황제 폐하(원 세조)께서
14. 이달(8월) 28일은 바로 황제의 성절(聖節)이다
15. 9월 1일 중서성(中書省)이 강 선사를 시켜
16. (1273년) 이달(9월) 7일 중서성이
17. (1273년) 그 이튿날(9월 8일) 후저께서
18. 행차(行次)가 소문(蘇門)의 동쪽 교외로
19. 즉석에서 차운해 답하다
20. 이달(9월) 25일 압록강까지 돌아와서
21. 10월 2일 행차가 흥의역(興義驛)에 이르니
편집 후에 우연히 씀
부록
원(元)나라 사행단 사행일지
원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우연히 유고(遺稿)를 찾다가 다시 침묵에 잠기노니,
농부가 어떻게 정음에 맞을 수 있으랴?
스스로도 우습구나. 가난한 집안 일물도 없으면서
공연히 헌 빗자루 갖고 천금을 누리려 했네.
偶尋遺草更沈吟 擊壤那能中正音
自笑貧家無一物 空將弊帚享千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