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제해기≫는 위진남북조의 지괴소설집(志怪小說集)으로, 유송(劉宋)의 동양무의(東陽無疑)가 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서는 7권이었으나 남송대 이후에 이미 망실된 것으로 보인다. 그 일문(佚文)이 여러 유서(類書)에 산재되어 총 15조가 남아 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일문을 통해 ≪제해기≫의 대체적인 면모와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제해기≫라는 서명은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의 “제해는 괴이한 일을 기록한 것이다[齊諧者, 志怪者也]”라는 구절에서 비롯되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일문 15조의 내용을 살펴보면 귀신에 관한 괴이한 일과 불가사의한 신괴한 일이 대부분이어서 서명과 대체로 일치한다. 그중 일부 고사는 이전의 다른 책에서 채록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찬자 자신이 직접 보거나 들은 것을 기록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제해기≫의 일문 15조를 내용별로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불가사의하고 괴이한 일에 관한 고사(5조): <마고>(제3조), <곽탄>(제4조), <광주자사>(제6조), <주객자의 딸>(제7조), <여항현 사람>(제10조).
2. 귀신과 요괴에 관한 고사(4조): <심종>(제9조), <왕경지>(제11조), <주자지>(제13조), <여사>(제14조).
3. 불교의 보응에 관한 고사(2조): <동소지>(제1조), <범광록>(제8조).
4. 사람이 호랑이로 변신한 고사(2조): <설도순>(제2조), <오도종>(제5조).
5. 민간 풍속에 관한 고사(1조): <잠신>(제12조).
6. 충직한 개에 관한 고사(1조): <장연>(제15조).
이상과 같이 ≪제해기≫에는 귀신, 요괴, 기이한 물건, 인과응보, 변신, 민간 풍속 등 다양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중국 지괴소설의 전형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제해기≫는 당시에 상당히 널리 유포되었고 그 영향력이 자못 컸던 것으로 보인다. 남조 양나라의 오균(吳均)이 ≪제해기≫를 모방해 ≪속제해기≫를 찬한 것이 바로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속제해기≫는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오균(吳均: 469~520)이 찬한 지괴소설집으로, 유송 동양무의의 ≪제해기≫의 속작으로 알려져 있다. 원서는 1권이며 현존하는데 현존본은 원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금본(今本)에는 17조의 고사가 수록되어 있는데, 후대 유서(類書)를 비롯한 다른 전적에서 일문(佚文) 5조가 더 발견된 상태다.
일문을 포함한 ≪속제해기≫의 고사 22조는 내용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세시 풍속(6조): 세시절령(歲時節令)으로 인해 생겨난 민간 풍속의 유래를 기록해 놓은 것으로, <환경>(제7조), <속석>(제10조), <성무정>(제11조), <등소>(제12조), <구곡>(제13조), <장성>(제14조) 고사가 여기에 속한다. 이 6조의 고사는 차례대로 9월 9일의 중양절(重陽節), 3월 3일의 상사절(上巳節), 7월 7일의 칠석절(七夕節), 8월 초하루의 안명대(眼明袋) 만들기, 5월 5일의 단오절(端午節), 정월 보름의 백고죽(白膏粥) 쑤어 먹기 등 중요한 세시 풍속의 유래를 고찰할 수 있어서 민속학적으로도 귀중한 문헌 자료다.
2. 인신연애(人神戀愛)(5조): 인간이 귀신이나 신선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 고사로, <조문소>(제17조), <유신·완조>(제18조), <왕경백>(제19조), <오색석>(제20조), <만문낭>(제22조) 고사가 여기에 속한다. 이 중에서 진(晉)나라 왕경백과 여자 귀신 유묘용(劉妙容)의 사랑을 묘사한 <왕경백> 고사는 지괴소설의 주요 제재 가운데 하나인 ‘인신연애’의 백미로 꼽힌다. 우선 편폭에 있어서도 1300여 자에 달해 단편소설로도 손색이 없으며 이미 당 전기(傳奇)의 체재와 분위기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왕경백’ 고사는 ≪태평어람≫ 권577에 인용된 무명씨의 ≪진서(晉書)≫에서 처음 보이는데, ≪속제해기≫에서 완성된 후 원나라 때까지 계속 널리 유전되면서 인구에 회자되었다.
3. 권선 및 응보(4조): 인간이 행한 선악에 따라 보은을 받거나 보복을 당하게 된다는 권계적(勸誡的)인 성격의 고사로, <전진>(제2조), <양보>(제3조), <장잠>(제6조), <서추부>(제16조) 고사가 여기에 속한다. 이 중에서 <전진> 고사는 재산 분할 때문에 불목(不睦)하던 전진 형제가 이적(異蹟)을 보인 자형수(紫荊樹: 박태기나무)로 인해 분가(分家)하지 않고 효성스런 가문을 이루었다는 내용인데, 여기에서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자형(紫荊)’이라는 전고가 생겨날 정도로 유명한 고사다.
4. 귀신·요괴(3조): 해묵은 사물이나 동물이 귀신이나 요괴로 둔갑해 괴이한 일을 벌이는 고사로, <곽광>(제1조), <장화>(제5조), <환현>(제7조) 고사가 여기에 속한다. 이 중에서 <장화> 고사는 서생으로 둔갑한 천년 묵은 얼룩무늬 살쾡이와 아이로 둔갑한 천년 묵은 화표목(華表木)을 장화가 간파해 퇴치한 내용인데, 전형적인 지괴소설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구성이 짜임새 있고 환상성이 풍부해 지괴소설의 작품성을 제고시켰다고 할 수 있다.
5. 민간 전설(2조): 특정한 장소의 특이한 유적이나 오래된 사당과 관련해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로, <매계산 석마>(제15조), <오자서>(제21조) 고사가 여기에 속한다.
6. 기예 및 도술(2조): 탁월한 예술적 기예나 도사의 술법을 묘사한 고사로, <서경산>(제4조), <허언>(제8조) 고사가 여기에 속한다. 이 중에서 <허언> 고사는 불경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일찍이 당나라 단성식(段成式)의 ≪유양잡조(酉陽雜俎)≫에서 이 고사가 불경 고사의 영향을 받아 지어졌음을 지적했다. 실제로 이 고사는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 권1의 <모내보살(毛內菩薩)> 고사에서 모티프를 얻어 ≪구잡비유경(舊雜譬喩經)≫ 권상의 <범지토호(梵志吐壺)> 고사를 거친 다음 중국에 전래되어 진(晉)나라 왕가(王嘉) ≪습유기(拾遺記)≫ 권4의 <신독국[인도]도술인시라(申毒國道術人尸羅)> 고사와 진(晉)나라 순씨(荀氏) ≪영귀지(靈鬼志)≫의 <외국도인(外國道人)> 고사에서 약간의 중국화 과정을 거쳤으며, 마지막으로 ≪속제해기≫의 <허언> 고사에 이르러 완전한 중국적 토착화를 이루었다. 따라서 이 고사는 불경이 중국 소설에 미친 영향과 그 수용 양상을 연구할 때 중요한 분석 대상이 되고 있으며, 묘사가 상세하고 환상성이 뛰어나 지괴소설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힌다.
200자평
‘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제해기’는 위진남북조 시대 유송의 동양무의가 찬한, 기괴한 일들을 적은 짧은 이야기인 지괴소설집이다. 또 ‘속제해기’는 ‘제해기’의 속작으로, 남조 양나라의 오균(469~520)이 찬한 지괴소설집이다. <제해기 / 속제해기>는 이 두 권을 함께 묶어 펴낸 책이다.
<제해기 / 속제해기>는 후대에 미친 영향이 자못 큰데, <속제해기>의 경우 당송대 이래로 수많은 유서와 주서(注書)에서 <속제해기>의 고사를 인용해 지식.정보 수집의 자료로 활용했으며, 북주(北周)의 유신(庾信), 당나라의 두보(杜甫), 송나라의 소식(蘇軾)을 비롯한 수많은 후대 문인들이 그들의 시문을 창작할 때 <속제해기>의 고사를 전고(典故)로 사용했다.
지은이
동양무의(東陽無疑)는 사서(史書)에 보이지 않아 그 정확한 생애를 알 수 없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기록을 종합해 보면, 그는 동양군[東陽郡: 지금의 저장성(浙江省) 진화현(金華縣)에 치소(治所)가 있었음] 사람으로, 대략 동진(東晉) 말에서 유송(劉宋) 초에 생존했으며, 유송 초에 산기시랑(散騎侍郞)이란 관직을 지냈다는 정도만 알 수 있다.
오균(吳均: 469~520)은 남조 양(梁)나라의 사학가이자 문학가로, 자는 숙상(叔庠)이며 오흥(吳興) 고장[故鄣: 지금의 저장성(浙江省) 안지현(安吉縣)] 사람이다. 집안은 빈한했지만 학문을 좋아하고 뛰어난 문재를 지녔기에 심약(沈約)이 그의 문장을 보고 매우 칭찬했다. 양나라 천감(天監) 연간(502~519) 초에 오흥태수 유운(柳惲)의 주부(主簿), 천감 6년(507)에 양주자사(揚州刺史) 건안왕(建安王) 소위(蕭偉)의 기실(記室), 천감 9년(510)에 국시랑(國侍郞) 겸 부성국(府城局)을 지냈으며, 천감 12년(513)에 임천정혜왕(臨川靖惠王) 소굉(蕭宏)의 추천으로 양 무제 앞에서 지은 시가 무제의 마음에 들어 대조저작(待詔著作)과 봉조청(奉朝請)에 임명되었다. 오균은 시문에 뛰어나 당시 명성을 떨쳤는데, ≪양서(梁書)≫ 본전에서 “오균의 문체는 맑게 빼어나 예스런 기운이 있었는데, 호사자들이 간혹 그것을 본받아 오균체라고 불렀다”라고 했다. ≪오균집(吳均集)≫ 20권이 있었으나 이미 망실되었고, 명나라 때 그의 시문을 모아 ≪오조청집(吳朝請集)≫ 1권을 간행했다. 또한 ≪제춘추(齊春秋)≫ 30권, ≪묘기(廟記)≫ 10권, ≪십이주기(十二州記)≫ 16권, ≪전당선현전(錢唐先賢傳)≫ 5권, ≪속문석(續文釋)≫ 5권, ≪후한서주(後漢書注)≫ 90권을 지었는데 모두 망실되었고, ≪속제해기≫ 1권만 남아 있다. ≪양서(梁書)≫ 권49와 ≪남사(南史)≫ 권72에 그의 전(傳)이 있다.
옮긴이
김장환은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世說新語硏究>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魏晉南北朝志人小說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원대학교 중문과 교수, 미국 Harvard-Yenching Institute의 Visiting Scholar(2004~2005), 같은 대학교 Fairbank Center for Chinese Studies의 Visiting Scholar(2011~2012)를 지냈다. 전공분야는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문헌이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중국문학의 벼리≫, ≪중국문학의 갈래≫, ≪중국문학의 숨결≫, ≪中國文言短篇小說選≫, ≪劉義慶과 世說新語≫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中國演劇史≫, ≪中國類書槪說≫, ≪中國歷代筆記≫, ≪세상의 참신한 이야기―世說新語≫(전3권), ≪世說新語補≫(전4권), ≪世說新語姓彙韻分≫(전3권), ≪太平廣記≫(전21권), ≪太平廣記詳節≫(전8권), ≪封神演義≫(전9권), ≪列仙傳≫, ≪西京雜記≫, ≪高士傳≫, ≪笑林≫, ≪語林≫, ≪郭子≫, ≪俗說≫, ≪談藪≫, ≪小說≫, ≪啓顔錄≫, ≪神仙傳≫, ≪玉壺氷≫, ≪列異傳≫, ≪齊諧記․續齊諧記≫, ≪宣驗記≫, ≪唐摭言≫(전2권), ≪述異記≫ 등이 있으며,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문헌에 관한 여러 편의 연구논문이 있다.
차례
≪제해기≫
1. 동소지
2. 설도순
3. 마고
4. 곽탄
5. 오도종
6. 광주자사
7. 주객자의 딸
8. 범광록
9. 심종
10. 여항현 사람
11. 왕경지
12. 잠신
13. 주자지
14. 여사
15. 장연
부록
제해기서 / 청 마국한
≪속제해기≫
1. 곽광
2. 전진
3. 양보
4. 서경산
5. 장화
6. 장잠
7. 환현
8. 허언
9. 환경
10. 속석
11. 성무정
12. 등소
13. 구곡
14. 장성
15. 매계산 석마
16. 서추부
17. 조문소
부록
18. 유신·완조
19. 왕경백
20. 오색석
21. 오자서
22. 만문낭
속제해기발 / 원 육우
속제해기발 / 명 무명씨
속제해기서 / 청 왕모
속제해기제요 / 청 기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문과 정원을 나섰지만 슬퍼하며 차마 헤어지지 못했다. 여인이 왕경백에게 말했다.
“교분이 두텁지 못한 사람에게 진실을 토로하기란 지극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친구처럼 마음을 다 쏟은 것을 문득 오늘 새벽에 증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깊은 규방에서 지내며 문을 나가지 않은 지가 16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다 객사에서 우연히 당신을 만나 문득 평생의 뜻을 다 이룰 수 있었지요. 이는 정해진 운명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술자리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별이 곧 시작되는군요. 밝은 태양에 놀라고 슬퍼하면서 지나가는 구름을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진수(溱水)에서 노닐고 유수(洧水)를 건너는 사랑을 복수(濮水) 가 뽕나무 사이에서의 음행(淫行)으로 여기지 말아 주세요. 서로 헤어진 후에라도 비웃음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제 한 번 이 소매를 놓게 되면 평생토록 영원히 끊어지겠지요. 보고픈 마음이 들 땐 저 구름을 쳐다보고 달을 바라볼 뿐입니다.”
여인은 말을 마치고 곧장 떠나갔다. 왕경백은 목이 메어 흐느껴 울 따름이었는데, 뒤돌아보았더니 여인은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왕경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