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중관해안은 청허휴정(淸虛休靜)의 제자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당대 이름 높은 승려였으나 그의 생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서역 중화 해동 불조 원류(西域中華佛祖源流)≫라는 책에는 중관해안에 대해 “성은 오씨, 무안 사람이다. 어려서 총명하고 지혜가 있어 신동으로 불렸다. 임제 정맥의 오묘한 진리로 인해 산에 들어가 머리를 깎았다. 혼탁한 세상에서 태고의 청풍을 회복해 떨치게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동으로 불렸다는 것은 중관해안이 어린 시절부터 문장에도 소질이 뛰어났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중관해안은 사대부 가문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문재가 뛰어났으나 출세가 덧없다고 여기고 깨달음을 위해 스스로 속세를 등졌다. 그러나 산사에 거하면서도 유가의 문사들과 서신 교류를 했고 여러 편의 작품을 남겼다. ≪중관대사 유고≫는 중관해안의 시와 문이 담긴 책으로 정확한 간행연도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임마거사(恁麽居士)라는 사람의 글에 따르면 중관해안의 제자인 청간(淸偘)이 엮은 것이라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 책이 중관해안이 입적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간행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중관대사 유고≫는 서울대 규장각과 동국대 중앙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목판본으로 소장되어 있다. 총 페이지 수는 소장본마다 다른데, 수록된 작품과 발(跋)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문집에서 시와 문 부분은 모든 소장본에 동일하게 있다. 그러나 발에 해당하는 임마거사의 글이 서울대 규장각본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으며, 동국대본에는 문집 마지막에, 장서각본에는 문집 첫 부분에 있다. 한편 <중관대사 유고 서(中觀大師遺稿序)>는 서울대 규장각본에만 수록되어 있다. 임마거사의 글에 따르면 문집 편찬 당시에는 행장도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전해 내려오는 과정에서 문집에 함께 수록되어 있던 목차와 행장 등이 빠진 것으로 보인다. ≪중관대사 유고≫에는 시가 146제 168수가 실려 있다. 이 중 세 수는 중관해안이 차운한 시에 원시를 달아 놓은 것으로, 중관해안의 작품은 146제 165수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문은 21편이 실려 있다.
중관해안의 문학은 조선 초기 활발하지 못했던 불가 문학을 다시 부흥시켰고, 후대에 적지 않은 양의 불가 문학이 생산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문집 형태가 불가 문학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했고, 교화만을 목적으로 한 기존 불교시에서 벗어나 개인적 서정을 시의 내용으로 담았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형식적인 면에서 파격을 했다는 점과 언어도단, 첩자의 사용, 고사의 사용과 같은 표현상의 특징도 중관해안 시문학의 중요한 특징으로 꼽힌다. 이렇게 그의 문학의 내용상, 형식상, 표현상 특징은 후대 불교 문학을 더욱 다양하고 융성하게 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200자평
청허휴정의 제자 중관해안. 그는 교화의 도구에 불과했던 불교시를 문학의 지위로 끌어올렸다. 척박했던 조선 초기 불가 문학을 개척해 유가 문학에 못지않은 완성도를 보인 그의 시 85수를 골랐다. 깨달음을 전하는 교화시부터 유가 문인들과 나눈 수창시, 산사의 생활을 담은 일상시를 고루 맛볼 수 있다.
지은이
해안(海眼, ?∼?)의 생몰년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성은 오(吳)이고, 전라남도 무안(務安) 출신이다. 조선 중기의 선승(禪僧)으로 처음에 처영(處英)을 은사로 해 득도했으나 뒤에 휴정(休靜)의 문하에서 참학(參學)해 심인(心印)을 받았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외숙부인 뇌묵처영(雷黙處英)에게 의탁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해 청허휴정이 선조의 부름을 받고 승병을 모으자 사명유정(四溟惟政), 뇌묵처영 등과 함께 승병을 일으켜 왜적과 맞서 싸웠다. 이후 전공을 세워 총섭(摠攝)이 되었다. 전란 후 지리산 화엄사에 있으면서 대화엄종주(大華嚴宗主)로서 법화(法化)를 폈다. 만년에는 지리산 귀정사(歸正寺) 소은암(小隱庵)의 옛터에 대은암(大隱庵)을 중창하고 그곳에서 참선수도에 정진했다. 그는 <사명당 행적(四溟堂行寂)>을 통해 조선의 배불(排佛) 정책으로 겨우 법맥을 이은 벽계(碧溪) 정심선사(淨心禪師) 이하 중단된 조계 법통을 모아 임제태고법통설(臨濟太古法統說)을 창안해 내었다.
자세한 행장은 전해지지 않으나 1636년(인조 14)에 화엄사의 사적을 쓴 것으로 보아 70세 이후에 그곳에서 입적한 것으로 추정된다. 법을 이은 제자로 청간(淸侃)·정환(正還)·설매(雪梅) 등이 있다. 저서로는 ≪중관대사 유고(中觀大師遺稿)≫ 1권, <죽미기(竹迷記)> 1편, ≪화엄사 사적(華嚴寺事蹟)≫ 1권, ≪금산사 사적(金山寺事蹟)≫ 1권이 있다.
옮긴이
배규범은 1998년 <임란기 불가문학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래, 해외에서 한국학 연구와 학자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학대학원 부설 청계서당(淸溪書堂) 및 국사편찬위원회 초서 과정을 수료했으며, 수당(守堂) 조기대(趙基大) 선생께 사사했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학술진흥재단의 고전 번역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2000년부터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승정원 일기(承政院日記)≫, ≪조선 왕조 실록(朝鮮王朝實錄): 고·순종≫ 교열 및 교감 작업에 참여했다. 경희대와 동국대 등에서 학술연구교수를 지냈으며, 북경 대외경제무역대학(KF객원교수)을 거쳐 현재 중국 화중사범대학에서 정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불가 잡체시 연구≫, ≪불가 시문학론≫, ≪조선조 불가문학 연구≫, ≪사명당≫, ≪한자로 배우는 한국어≫, ≪요모조모 한국 읽기≫, ≪외국인을 위한 한국 고전문학사≫, ≪속담으로 배우는 한국 문화 300≫ 등이 있고, 역저로는 ≪역주 선가귀감≫, ≪한글세대를 위한 명심보감≫, ≪사명당집≫, ≪청허당집≫, ≪무의자 문집≫, ≪역주 창랑시화≫, ≪정관집≫, ≪초의시고≫, ≪선가귀감≫, ≪허응당 시선≫ 등이 있다.
구봉곤은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하고 2013년 <17세기 가사와 부 문학 비교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강사로 글쓰기 및 한문 강독, 한자의 이해 등을 가르치고 있다. 논문으로 <조선 후기 부와 가사 문학 비교>, <잠곡 김육의 부 문학 연구>, <김휴의 부 문학 연구> 등이 있다.
차례
매(梅) 노스님의 제자인 인(印) 스님에게 드리다
징원(澄遠) 스님이 선어(禪語)를 구하기에
광산뇌징(匡山靁澄) 스님이 법어를 구하기에
용성(龍城)의 부백(府伯) 영 공(令公)이 안부 편지와 여덟 가지 물건을 보냈기에 황률로 사례하며
성성정매(惺惺貞邁) 스님의 편지에 답하다
능가산(楞迦山)에 있으면서 모양(牟陽)태수 김창일(金昌一)의 운을 빌려
취두산(鷲頭山) 청량대(淸涼臺)에서 모양태수(牟陽太守)를 맞이하며
호구청규(虎丘淸規)의 선화(禪話)가 담긴 편지
인(仁) 스님의 부도(浮屠)를 조롱하며
삼(三) 스님 만사(挽詞)
≪남화경(南華經)≫을 읽다 광산목백(光山牧伯) 박경신(朴慶新)의 시에 차운해
충원태수(忠原太守) 송흥주(宋興周)에게 드리다
관생(觀生) 도사의 운을 빌려
부령(扶寧) 임 공의 <궂은비에 서로 묻다(苦雨相問)>라는 시에 차운해
몰현(沒絃) 스님이 마침 법어를 구하기에
소요(逍遙) 스님의 <≪능엄경≫을 읽다(讀楞嚴)> 시에 차운해
옛날 것을 본떠
소요(逍遙) 스님의 시에 차운해
선롱(禪弄) 2수
방편전(方便戰)에 대한 이해
상사(上舍) 김(金) 모의 시에 차운해
찰방(察訪) 조(趙) 모의 시에 차운해
금강산(金剛山) 미륵봉(彌勒峯) 향로암(香爐庵)에서 청허대사(淸虛大師)를 참배하고 2수
꿈에 한 문사(文士)를 보고서
시름을 달래며
사인(舍人) 심(沈) 모가 산으로 돌아옴을 사양치 않다
이른 봄 행차 2수
뇌묵당(雷默堂) 노스님께서 집에서 장난으로 염(鹽) 자 운으로 지으신 시에 차운하며
≪불조통재(佛祖通載)≫를 읽고 느낌이 있어
한중잡영(閑中雜詠) 3수
우연히 읊다
우연히 짓다
정좌(靜坐)의 뜻
행각승(行脚僧) 무지(無知)에게 드리다 2수
답장이 없는 사람을 조롱하며
의심하지 말게나
선사(禪師)를 만나고서
담(湛) 노스님께 드리다
임(任) 거사가 찾아와서
4월 초파일 낮에 눈이 내리다
뇌묵(雷默) 스님께서 꿈에 글 한 편을 주셨는데 정녕코 잊을 수 없어서
새소리를 듣고 장난삼아
술 취한 사람을 조롱하며
산속 가을 흥취
운상원(雲上院) 가을밤에
종경광조(宗鏡廣照) 스님에게 드리다
뇌은(雷隱) 스님
서암환성(瑞嵓喚醒) 스님
법민(海敏) 스님이 ≪제왕세기(帝王世紀)≫를 쓰려고 하기에 여기에 써서 드리다
방주(芳洲) 스님이 선어(禪語)를 구하기에
장용진조(藏用眞照) 스님의 말
정매(貞邁) 스님이 선화(禪話)를 구하기에 장난삼아 짓다
무하성주(無瑕性珠) 스님이 쓴 시축(詩軸)
월담관조(月潭觀照) 스님에게 선화(禪話)를 드리다
장난삼아 누군가에게 선(禪)을 말하다
대방귀본(大方歸本) 스님
지백영준(知白令遵)이 선어(禪語)를 구하기에
초대를 받아 간 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시에 차운해
누군가에게 드리다
종일토록 호남(湖南) 지방을 다니며
장난삼아 속객(俗客)에게 드리다
유감
연곡사(燕谷寺) 모임에서
세모(歲暮)에 답하다 2수
간전(看箭) 스님이 오직 호(號) 하나만을 구하기에
용문(龍門)에서 한가로이 살면서
석상(石霜) 스님의 초운(楚雲) 선화(禪話)
고시(古詩)를 본떠서
충원태수(忠原太守) 송(宋) 공에게 드리다
임종게(臨終偈)
황령암(黃嶺庵) 유증명(鍮甑銘) 2수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종일 맑고 한가롭게 집에 머물며
무심히 경계 대하니 바로 선나(禪那)로고.
호미로 김매는 것 일삼지 않아도
주인 밭에는 잡초가 많지 않다네.
一日淸閑自在家
無心對境是禪那
不向鋤頭爲事業
主人田地草無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