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9년 만에 집에 돌아온 어누슈커의 열세 시간
이 소설은 열세 시간의 기록이다. 주인공 어누슈커가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잠에서 깨어 일어나는 6시 45분부터 다시 부다페스트로 돌아가는 밤기차에 오르는 저녁 8시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열세 시간 동안 어누슈커의 마음속에 묻어 둔 과거가 하나하나 깊은 잠에서 깨어 새로이 되살아난다. 소설은 시간의 흐름을 순서대로 따라가지 않고 과거의 기억과 현재를 넘나들며 왜 어누슈커가 어린 나이에 가족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뒷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낸다.
작가 서보 머그더의 모습을 투영한 화가 어누슈커
이 책의 제목인 “프레스코”는 벽화를 그리는 화법의 하나다. 어누슈커의 아버지 이슈트반은 목사로서 칼뱅의 기독교리를 철저히 따른다. 그런 그에게 그림이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칼뱅이 그림은 신성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며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어린 시절부터 그림이라면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는 딸 어누슈커는 눈엣가시다. 이슈트반은 자기 논리로 이해도 통제도 되지 않는 딸을 자신이 아는 세상에 가두기 위해 폭력을 휘두른다. 그러나 어누슈커는 아버지에게 굴복하지 않고 열아홉 살 되던 해에 집을 나가 버린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집을 떠나기만 하면 날개를 펼쳐 대단한 화가가 될 것 같았던 어누슈커는 그러나, 그림을 그려 발표하는 대신 집 안에 쌓아 두기만 한다. 소설은 그녀가 공산주의 예술 지침에 따라 체제에 호응하는 그림을 그리는 대신 영원불변의 가치를 지향하는 그림을 그리는 진정한 의미의 예술가가 되었음을 넌지시 암시한다.
소설 속 이야기처럼, 실제로도 이 소설의 작가 서보 머그더는 당시 공산권 문학이라면 으레 목적 지향적일 것이라는 서방 세계의 기대를 보란 듯이 뛰어넘었다. 공산 체제에 호응하는 그림을 그려 발표하거나 전시하지 않는 데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그저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는 데만 열중했던 어누슈커에게서 헝가리 혁명 이후 출판 금지령이 해제되자마자 그간 집필해 두었던 작품을 쏟아 낸 서보 머그더, 작가 자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헝가리 문학의 놀라운 성취
유럽이 동서로 갈리면서 공산권의 문학에서 두드러진 작품은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과 비평이었고, 저항 정신에 입각한 문학만이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에 서보의 소설에서도 그런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접한 서방세계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주의 건설에의 기여라는 목적이 앞선 나머지 예술이 수준에 미치지 못하던 공산권 헝가리에서 이렇듯 완벽한 문학이 태어났구나 하는 놀라움 때문이었다. 이 책은 상투적으로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대신, 변화하는 시대를 살며 그 안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을 깊은 이해로 그려 낸다. 그리하여 심리학의 연구 대상이 될 인물들을 창조하는 문학적 성취를 이루어 냈다.
200자평
헝가리 작가로서 외국에 가장 많이 알려진 서보 머그더의 대표작이다. 주인공 어누슈커가 집을 떠난 지 9년 만에 어머니의 장례식을 계기로 집으로 돌아오는 열세 시간의 여정을 담았다. 열세 시간 동안의 일이라고 하지만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과거의 기억을 넘나들며 가족의 의미, 꿈의 의미, 인생의 의미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낯선 헝가리의 작품이지만 왜 훌륭한 작품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깊은 감동을 주는지 느끼게 하는 책이다.
지은이
서보 머그더는 헝가리의 작가로서 외국에 가장 많이 알려진 여성 작가다. 그녀는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고, 그 결과 다뉴브 제국이 세상에서 사라진 해인 1917년 10월 5일 헝가리의 동부 도시 데브레첸에서 개신교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1935년에 데브레첸의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코슈트 러요시 대학에 바로 들어가 라틴어와 헝가리 문학을 전공했고, 1940년 교사 자격증을 얻으며 철학 박사로 졸업했다. 졸업과 함께 시작해 1945년까지 교사로 재직했으며, 이어서 1949년까지 교육부에서 일했다. 서보 머그더의 문학은 시로 시작된다. 1947년 ≪양(Barany)≫, 1948년 ≪인간으로의 회귀(Vissza az emberig)≫ 등의 시집을 발간했다. 그녀는 ≪뉴거트≫의 전통을 잇는 우이홀드 그룹의 시인이었다. 높은 수준의 순수시를 지향하는 그의 문학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어울리지 않았고, 그 원인이 부르주아라는 출신 성분에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 때문에 서보 머그더는 1949년 저명한 바움가르텐(Baumgarten) 상을 수상했으나 수상 자체가 바로 무효화되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공무원 신분을 잃게 되었음은 물론, 이후 10년 동안 작품 발표 금지령을 받는다. 1947년에 결혼한, 작가이자 번역가인 남편 소보트커 티보르(Szobotka Tibor)의 운명도 서보 머그더와 마찬가지였다. 1956년 헝가리 혁명의 영향으로 비로소 출판 금지령에서 해제되었고, 서보 머그더는 그 후 전업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2007년 11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죽음을 알린 헝가리의 통신사 ≪MTI≫에 의하면 “헝가리의 가장 중요한 작가 가운데 하나인 서보 머그더가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면서 평화롭게 잠들었다”라고 전한다. 서보 머그더는 시, 아동문학, 드라마, 여행기, 에세이 등 문학 전반에서 업적을 남겼다. 소설로 ≪프레스코(Fresko)≫(1958)를 필두로 ≪사슴(Az oz)≫(1959), ≪도살 잔치(Disznotor)≫(1960), ≪필러투시(Pilatus)≫(1963), ≪창세기 1장 22절(Mozes egy, huszonketto)≫(1967), ≪커털린 거리(Katalin utca)≫(1969), ≪옛 우물(Okut)≫(1970), ≪구식 이야기(Regimodi tortenet)≫(1977), ≪문(Az ajto)≫(1987), ≪엘리제를 위하여(Fur Elise)≫(2002)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 42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수백만 부가 팔릴 정도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지금까지의 헝가리 사람 중에서 가장 많이 활자로 인쇄되어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람으로 통한다. 1959년과 1975년에 수상한 요제프 어틸러(Jozsef Attila) 상, 1978년 코슈트 러요시 상, 2003 프랑스 외국여성문학(Prix Femina Etranger) 상 등 국내외의 주요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2년 세체니(Szechenyi) 문학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1993년에는 유럽 학술원 회원이 되었다.
옮긴이
정방규는 1948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독일의 괴팅겐에서 헝가리 문학과 독문학을 공부했다. 1990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헝가리 문학에 대해 강의했다. <통일 후 독일 지성인의 심리적 갈등 연구>(1993) 등의 논문과 ≪사슴≫(1994), ≪방문객≫(1995), ≪토트 씨네≫(2008), ≪에데시 언너≫(2009), ≪등불≫(2010), ≪종다리≫(2016) 등의 번역서가 있다.
차례
프레스코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그들은 둘이서 그림을 그린다. 어누슈커와 아담 둘이, 그것도 집에서. 어누슈커는 가끔 글을 쓰기도 한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어누슈커와 아담이 사는 집은 이제 그림으로 가득하다. 그림을 쌓아 놓을 자리가 더 이상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림을 보여 주지 않는다. 전시를 하지도 않는다. 전시회에 그림을 가지고 나오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은 둘이서 재떨이를 주물러 만들고 체스에 쓰는 말을 깎는다. 그리고 상자에 그림을 그린다. 그것으로 그들은 살아간다.
(…)
언주는 어누슈커가 큰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교회에서 늘 보던 그런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믿었다. 재작년이었다. 언주가 아직 장화를 갖고 있을 때였다. 그때 그는 화가들의 전시회에 갔다. 그림을 계속해서 바꿔 걸고 입장료도 무료인 전시회였다. 드디어 어누슈커의 그림이 걸리겠구나 하고 그것을 볼 거라고 기대했다. 전시회를 알리는 광고에도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회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에 언주는 어누슈커의 그림이 걸려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어누슈커가 그린 그림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형편없는 그림들만이 걸려 있었다. 형편없는 그림 옆에는 더 못한 수준의 것이 걸려 있어서 어느 것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꾼들이 거의 모든 그림에서 망치질을 했다. 쇠를 녹여 붓는 장면도 있고.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일에, 그리고 쇠를 녹이는 열에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