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한국문학평론선집의 면모
1890년, 천재가 태어났다. 6세에 국문을, 7세에 한문을, 13세에 일문을 읽었다. 자라서는 시를 쓰고 번역하고 잡지를 만들었다. 그때마다 계몽을 외쳤다. 조선의 땅과 하늘이 온통 캄캄하던 시절, “나라는 보존하지 못할지라도 문화는 밝혀야겠다는 생각”으로 조선학을 세웠다. 그의 이름 최남선이다.
≪최남선 평론선집≫, 최남선 지음, 문흥술 엮음, 김학중 해설
우리 근대문학이 싹을 틔우던 그때, 김억은 시의 새로운 형식을 찾는다. 상징주의였다. 우리 민족에 맞는 시형과 운율은 무엇일까? 민요시와 유행가에 눈길이 미쳤다. 조선심을 바탕으로 한 리리시즘을 정립했다. 그의 무릎 아래서는 한국문학의 보물이 자라고 있었다. 김소월이 그냥 등장한 것이 아니다.
≪김억 평론선집≫, 김억 지음, 김진희 엮음
무산자를 위한 문학 운동의 기수, 이론가 그리고 작가는 한 시절을 보낸 뒤 이렇게 말한다.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이며 상실한 것은 예술 자신이었다.” 문단은 충격에 빠진다. 낭만주의에서 출발해 사회주의를 담았고 후회와 번민을 거쳐 순수문학으로 돌아온다. 언제나 문학의 본질과 현실에 대한 치열한 인식이 있었다.
≪박영희 평론선집≫, 박영희 지음, 허혜정 엮음
김기림보다 훌륭한 시인은 많지만 그보다 뛰어난 시 비평가는 없다고, 송욱은 말했다. 그는 1930년대 모더니즘의 기수다. 이상·정지용·김광균·오장환·장만영·백석이 모두 그를 따라 모더니스트가 되었다. 그는 그때 이미 서구 모더니즘의 한계를 예감하고 조선에 맞는 문학을 탐색했다. 그러더니 모더니즘을 훌쩍 넘어 시학이 과학을 세우게 된다.
≪김기림 평론선집≫, 김기림 지음, 김유중 엮음
임화가 처음에 발표한 시에는 다다이즘이 보였다. 그러다 그의 나이 21세에 <우리 옵바와 화로>를 발표하고 카프의 선봉에 선다. 이때부터 혁명적 낭만주의와 사회주의, 이식문학론, 민족문화를 이야기한다. 북에서 고정간첩 혐의로 사형될 때까지 임화의 45년은 문학 그 자체였다.
≪임화 평론선집≫, 임화 지음, 이형권 엮음
2723호 | 2015년 8월 21일 발행
초판본 한국문학평론선집의 면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