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아스와 멜리장드
프랑스 희곡, 상징주의 신간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너의 운명을 보라
보는 것은 눈의 일이다. 눈은 있는 것을 본다. 운명은 먼 과거와 먼 미래를 연결하는 직선의 궤적이므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지금의 한 점이다. 점은 방향이 없으므로 우리는 운명을 볼 수 없다. 다만 청명한 마음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선을 긋는다. 그다음이 너의 운명이다.
작가 마테를링크는 누구인가?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벨기에 출신 프랑스어권 작가다. <파랑새>로 유명하다. 1911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어떻게 살다 갔나?
부르주아 가문 출신으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교 졸업 후에는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한 뒤 변호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작가로 전향해서는 죽음과 운명을 주제로 한 글을 주로 발표했다.
창작 계기는?
몇 달 동안 파리에 머물면서 말라르메, 릴라당을 만난다. 변호사 생활을 접고 문학의 길을 걷게 된다. 1890년 ≪피가로≫지에 그의 작품 <말렌 공주>의 미르보 평론이 게재되면서 일약 유명해진다.
상징주의자인가?
그렇다. 그것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일어난다.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를 거부하고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상징파의 예술 운동과 경향을 말한다.
상징주의는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나?
선구자 보들레르는 이 세계를 하나의 상징의 숲으로 보았다. 시인은 그것을 해독한다. 가시적인 세계를 비가시적 세계의 외형적 현시물로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인식되는 현상은 존재의 껍데기에 불과하다. 본질은 비가시적인 것 속에 숨어 있다.
연극에서 상징주의는?
현실 문제보다는 보이지 않는 운명의 힘이나 신비의 영역을 다룬다. 상징적 수법으로 표현했다.
마테를링크의 방법은?
상징과 암시 그리고 침묵을 사용한다. 정적이며 모호하고 신비스럽다. 영혼의 연극을 창조했다.
영혼의 연극이 뭔가?
수동적이고 움직이지 않으며 예민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극이다. 정적이다. 죽음이나 운명, 산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다. 그는 일상의 비극을 드러낸다.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운명과 마주한 영혼의 태도와 인물이 숙명에 눈떠 가는 상황을 암시해야 한다. 배우의 양식화된 연기를 통해 가능하다.
양식화된 연기란?
인물의 표현 내용은 모호하지만 배우는 인물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마테를링크는 골로 역을 맡은 배우 뤼네 포에게 편지를 보낸다. 인물 행위가 불분명하더라도 내재된, 은밀한 동기를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남편, 아내, 정부의 삼각관계가 불러 온 비극을 그린 치정극이다. 운명적인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상징과 암시를 통한 시적인 표현으로 그려 낸 작품이다.
스토리라인은?
알르몽드의 왕자 골로는 사냥 중에 숲에서 길을 잃는다. 샘터에 앉아 울고 있는 멜리장드를 발견한다. 그녀를 신부로 맞아 왕국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골로의 이복동생 펠레아스와 사랑에 빠진다. 이들의 밀회가 골로의 의심을 산다. 확증 없이 의심만 키워 가던 그는 그들의 마지막 밀회 장소인 숲 속 샘터에서 그녀를 칼로 찌른다. 상처를 입은 멜리장드는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고 죽는다.
특징은?
신비하고 모호한 대표적 상징주의극이다.
작품에 나타나는 상징은?
성을 둘러싼 짙은 숲, 폭풍우 치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 떼, 이것들은 앞으로 닥칠 어두운 운명을 암시한다.
샘은 무엇인가?
순수와 진실, 동시에 욕망을 상징한다.
결혼반지를 멜리장드가 샘에 빠트리는 것은?
골로에 대한 애정의 상실, 펠레아스에 대한 무의식의 욕망을 암시한다.
극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은?
빛과 어둠의 대조다. 도식적일 정도로 매우 뚜렷하게 나타난다.
빛과 어둠의 대조는?
빛은 어둠을 밝힌다. 진실로 암시된다. 골로는 죽어 가는 멜리장드에게 진실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미 선입견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다.
알르몽드의 어두운 성은 무엇인가?
빛의 세계와 대조되는 닫힌 세계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이 닫힌 세계를 벗어나 빛의 세계로 가고자 한다.
이 극의 주제는?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죽음, 이것은 운명의 덫에 빠지고 마는 인간의 비극을 말한다.
운명의 덫은 작품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늙은 왕 아르켈이 말한다.
“나는 결코 운명에 반대한 적이 없어.”
“곧 무슨 일이 닥칠지 알게 될 때까지 기다리라.”
펠레아스가 성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그런가?
“운명이 무엇을 가져다줄 것인지 기다려 보자”는 아르켈의 권고 때문이었다.
갈등은?
보이는 갈등은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과 그로 인한 죽음이다. 그러나 인물들의 내적 갈망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서 작가는 독자나 관객의 상상을 기대한다.
멜리장드는 어떤 인물인가?
어디에서 왔는지, 몇 살인지 밝혀지지 않는다. 세상에 잠시 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죽는 물의 요정을 연상시킨다. 샘에 왕관을 빠뜨리고 울고 있는 모습에서 <햄릿>의 오필리아를 연상할 수도 있다. 그녀는 골로를 따라 알르몽드로 오게 되지만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무언가에 사로잡혀 괴로워한다.
무엇에 사로잡혔는가?
그녀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펠레아스에 대한 사랑, 이를 이루지 못하는 데 대한 절망이다.
펠레아스는 어떤 인물인가?
여성적이고 몽환적이며 감수성이 예민한 인물이다. 항상 다른 곳으로 떠나려 하지만 실행하지 못한다. 나중에는 멜리장드에 대한 사랑으로 성에 남게 되고 마침내 멀리 떠나려는 결심이 섰을 때 골로에 의해 ‘장님의 샘’에서 죽임을 당한다.
골로는 어떤 인물인가?
펠레아스와는 대조적으로 거구에 사냥을 좋아하는 남성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큰 몸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혼의 깊이는 결여된 것으로 그려진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한다. 아내를 의심해 매복하고 염탐하는 모습은 오셀로를 연상시킨다.
당대의 반응은?
말라르메는 모든 것이 본연의 의미에서 음악이 되고 있음을 발견하고 이 작품을 환영했다.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인 드뷔시는 연극을 본 즉시 이 작품을 오페라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10년 만에 자신의 유일한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완성했다.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어떤 작품인가?
20세기 전반 오페라를 대표하는 명작으로 꼽힌다. 대규모 오페라가 지향하던 웅장함을 거부하고 미묘한 뉘앙스를 살리는 데 주력했다. 이 때문에 혹독한 악평에 시달리며 1902년 초연 이후 1907년까지 한 번도 공연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드뷔시를 서구 음악사상 가장 독창적인 음악가로 격상시켰다. 드뷔시는 ‘오페라’라는 명칭 대신 이 작품을 ‘서정극’이라 불렀다.
마테를링크와 드뷔시의 소송은 어쩐 일인가?
작곡을 허락해 달라는 드뷔시의 부탁에 마테를링크는 “기쁜 마음으로 작곡에 대한 전권을 드린다”고 화답했다. 대신 자신의 연인 조르제트 르블랑(Georgette Leblanc)에게 멜리장드 역을 맡겨 줄 것을 요구했다. 10년 만에 작품이 완성되었으나 초연 광고에는 멜리장드 역에 스코틀랜드 출신의 신인 여가수 메리 가든(Mary Garden)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이는 마테를링크의 분노를 샀고 소송으로 비화됐다. 법원은 드뷔시의 손을 들어 주었다.
독법은?
‘본다’는 것의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
본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 극에서 ‘본다’는 것은 외면의 눈이 아니라 내면의 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내면의 눈으로 운명의 참모습을 보는 것이 진정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내면의 눈으로 보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눈뜬장님처럼 한 치 앞도 보지 못하고 운명의 덫에 걸리고 만다.
놓칠 수 없는 한 장면은?
골로는 죽어 가는 멜리장드에게 펠레아스와 어떤 관계인지 묻는다. 멜리장드는 진실을 말하지만 골로는 믿지 못한다. 그는 모든 것을 본다고 말하지만 질투에 사로잡혀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는 끝내 자신이 원하는 진실을 얻지 못한다. 다음 장면을 보라.
골로: 난 당신에게 몹쓸 짓을 많이 했어, 멜리장드…. 내가 저지른 몹쓸 짓을 당신에게 말할 수는 없어…. 하지만 난 그걸 봐. 난 오늘 그걸 아주 똑똑하게 보지…. 첫날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것이 오늘 저녁엔 아주 명백해졌어…. 모든 게 다 내 잘못이야, 이미 일어난 모든 일들이,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도…. 내가 그걸 말로 할 수 있다면 당신도 내가 보듯이 볼 수 있을 텐데! 난 모든 걸 봐, 모든 걸 봐! 난 당신을 몹시 사랑했어! 당신을 너무 사랑했어!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가 죽을 거야…. 내가 곧 죽을 거야…. 그런데 난 알고 싶어…. 당신에게 묻고 싶어… 당신은 날 원망하지 않을까? 난… 곧 죽을 사람에게는 진실을 말해야만 해…. 그 사람은 진실을 알아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그는 잠들 수가 없을 거야…. 나한테 진실을 말하겠다고 맹세하오?
멜리장드: 그래요.
골로: 당신은 펠레아스를 사랑했어?
멜리장드: 그래요. 난 그를 사랑했어요. 그는 어디 있지요?
골로: 당신은 날 이해하지 못하는 거요? 날 이해하고 싶지 않은 거요? 내가 보기에… 내가 보기에… 그럼, 내가 묻겠는데, 당신은 그를 금지된 사랑으로 사랑했소? 당신은… 당신들은 죄를 범했소? 말해 봐요, 말해 봐. 맞아요, 맞아, 맞아?
멜리장드: 아니요, 아니요. 우린 죄를 범하지 않았어요. 왜 그런 걸 물어보지요?
골로: 멜리장드! 제발 나한테 진실을 말해 줘!
멜리장드: 왜 내가 당신한테 진실을 말하지 않겠어요?
골로: 그렇게 거짓말하지 마, 죽는 순간에!
멜리장드: 누가 죽는다는 거지요? 난가요?
골로: 당신, 당신! 그리고 나. 나도 역시, 당신 다음에! 그러니 우리에겐 진실이 필요해…. 우리에겐 마침내 진실이 필요해. 알았어! 나한테 다 말해요! 다 말해! 모든 걸 용서하겠어!
멜리장드: 왜 내가 죽지요? 난 모르고 있었어요….
골로: 당신은 이제 그걸 알아! 그러니 지금이야! 지금! 빨리! 빨리! 진실을! 진실을!
멜리장드: 진실… 진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모리스 마테를링크 지음, 이용복 옮김, 108∼110쪽
당신은 누구인가?
이용복이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2대학에서 불문학 석사 학위, 파리 3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