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스페인 정치 현실을 무대화
≪푸엔테오베후나≫는 로페의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476년 푸엔테오베후나(Fuente ovejuna)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농민 반란을 소재로 삼아서 집단의 심리를 서정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작품의 주제는 귀족의 권력 남용에 대한 민중들의 봉기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당시에 잠재해 있던 봉건귀족과 평민 부르주아 사이의 사회적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부류의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전개 과정을 거친다. 우선 부도덕한 권력자(귀족)가 권력을 남용(주로 평민 여성에 대한 성폭행)한다. 그다음에는 이에 분노한 평민들이 귀족들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고, 마지막 단계에서 국왕이 사건에 개입해 귀족 세력에 대항한 평민들의 손을 들어준다. 국왕은 언제나 최상의 심판자처럼 행동하며 판결을 통해 귀족을 비판하고 평민들의 행동을 정당화해 준다. 그리고 이러한 국왕의 결정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민중들도 사회체제를 바꾸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다만 정의가 실현되기를 원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왕에게 악덕 귀족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행동의 정당성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왕은 이를 받아들인다.
이것은 귀족들의 세력을 억누르고 절대왕정 체제를 공고하게 만들려는 군주와 절대 군주의 비호 아래 세력을 키우며 당시 부상하고 있던 부유한 부르주아 세력이 서로 공통된 이익을 추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민중들의 삶을 옹호.
왕이 푸엔테오베후나에 파견한 판사가 사실을 밝히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취조하는 장면에서 로페 데 베가는 고문당하는 마을 사람들을 노인과 소년, 여자와 뚱뚱한 겁쟁이 멩고로 설정했다. 즉 가장 약한 사람들을 대표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선택은 마을 사람들의 영웅성을 극대화한다. 이 영웅성이 마을을 살렸다.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가장 돋보이는 작가의 수완은 마을 사람들의 복수의 장면 다음에 고문의 장면을 연이어 배치한 것이다. 복수를 실현한 마을 사람들은 고문의 장면에서 하나가 된다는 의식을 고취한다. 그들의 영웅성을 가장 강렬하게 드러내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결코 복수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복수는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왕에게는 하나의 중대한 범죄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웅성으로 인해 그들은 자유를 되찾았다. 당대를 작품 안에 녹여낸, 그러나 시대를 거스르기 어려웠던 로페로서는 평민들의 자유를 옹호하는 연극을 쓰는 것은 불가능했겠지만, 정의가 실현되는 연극과 보통 사람들의 영웅성을 드러내는 연극을 쓰는 것은 가능했던 것이다.
200자평
정의라는 상대적인 개념을 판별하기 위해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기준 중 하나는 그것이 얼마나 공동체의 질서 유지에 기여하느냐 하는 것이다. 개념 혹은 약속이란 것이 본래 공동체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현실적인 이해관계들의 절묘한 균형을 이뤄내는 ‘정의’를 보여준다. 당대 스페인의 정치· 경제· 문화적인 갈등 상황과 해결을 절묘하게 그려낸 로페 데 베가의 대표작이다.
지은이
로페 데 베가(Lope de Vega)는 17세기 스페인 국민극을 확립하고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음은 물론이거니와 당대와 후대의 극작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작가다. 그는 1562년 마드리드의 하류층 가정에서 출생한다. 우선 그는 다작의 작가로 유명하다. 일생동안 1500∼2500편의 장편극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중 현재까지 425편이 전해진다. 그 밖에 단편극과 시를 더한다면 그의 작품 수는 훨씬 더 많다. 그는 어려서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보이는데, 다섯 살에 스페인어와 라틴어를 읽을 줄 알았으며, 열 살 때는 클라우디아누스의 고전 라틴어 시를 스페인어로 번역했고, 열세 살에는 3막극 <진실한 연인>을 썼을 정도라고 한다. 열네 살에 예수회 학교에 입학했으나 스페인의 포르투갈 원정대에 참여하기 위해 학교에서 도망쳤다. 이 원정대에 참여하면서 그의 재능을 알아본 아빌라 주교의 눈에 들게 되어 알칼라데에나레스 대학교에서 공부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대부의 길을 따르려 했으나 뭇 여성들과 사랑에 빠지고, 결국 자신은 육체적 순결을 지키면서 수도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수도자가 되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는 일생 동안 수많은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1583년 해군에 입대해 포르투갈의 아소르스 제도 원정을 다녀온 다음부터 극작가로서 활동하면서 극단주의 딸이자 여배우인 엘레나 오소리오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와의 관계가 정리되면서 그는 1588년 펠리페 2세의 칙사였던 고관의 딸 이사벨 데우르비나와 결혼한다. 결혼 2주 후에 무적함대에 자원입대한 그는 원정이 실패하자 스페인으로 돌아와 당시 한창 연극 활동이 왕성하던 발렌시아에 정착하게 된다. 이후 로페는 왕성한 극작 활동으로 ‘천재 불사조’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로페 데 베가는 당대 관객들에게 대단한 인기와 영향력이 있었고, 극을 만드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 일반적으로 그의 연극은 지나치게 대중적인 성향으로 인해 문학성이나 심오한 철학성, 인간 본질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가 지배층이 주된 관객이었던 기존의 연극 무대에 일반 대중을 불러들여 연극의 관객층을 넓혔다는 공로는 분명히 인정받아야 한다. 그로 인해 17세기 스페인에서는 대중의 존재를 인식하는 연극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양산되었으며, 연극의 지평 또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전주의 미학에서 벗어난 대중 미학으로 연극에 대한 체계화를 시도했다. 그는 당대 스페인 관객들의 요구와 취향에 맞는 연극을 써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그 결과 고상하고 지적인 것으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계열의 연극과 대중적 취향의 민중 희극의 부류를 통합해서 관객들이 선호하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옮긴이
김선욱은 서울 출생으로 고려대학교 서어서문학과와 동대학원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국립대학교(Universidad Complutense de Madrid)에서 스페인 연극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고려대학교에서 강의하며 스페인과 중남미 연극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의 연극을 번역하고 무대에 올리는 한편 드라마투르그(문학 감독)와 연극 평론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공연 예술≫(공저), ≪작품으로 읽는 스페인 문학사≫(공저) 등과 역서로 ≪누만시아≫, ≪살라메아 시장≫, ≪푸엔테오베후나≫ 등 다수가 있다. 논문으로는 <연극사 각 시대별 연기 양식 비교 연구: 음악적 대사의 연극적 재현의 역사>, <르네상스와 바로크 과도기 시기 스페인 연극의 관객: 또레스 나아로를 중심으로>, <20세기 라틴아메리카 연극과 연극 축제> 등과 평론으로 <젊은 작가와 극단의 재기발랄한 놀이: 극단 이상한 앨리스의 변기 속 세상>, <사회적 폭력에서 잉태된 개인의 폭력, 그리고 그 치유에 대한 희망: ‘주인이 오셨다’의 텍스트 구조와 의미>, <‘마호로바’의 미덕: 그 구조와 연기 앙상블> 등 다수가 있다. 이외에도 <번역극의 드라마투르그 임무와 역할>과 같은 연극에 관련된 많은 문화 칼럼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차례
푸엔테오베후나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하신타: 그렇습니다. 제 아비는 명예로우신 분입니다. 각하만큼 고귀한 신분은 아닐지라도, 지금까지 살아오신 동안의 행실은 각하보다 훨씬 더 고귀하십니다.
(…)
라우렌시아: 가세요! 하늘이 당신들을 보고 있어요. 아, 마을의 여인들이여! 이리로 모이세요. 우리들의 명예는 우리들 힘으로 되찾아야 합니다. 모두 모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