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크리스마스는 없다?
북레터 [주간 인텔리겐치아]입니다.
안녕하세요. 북레터 인텔리겐치아입니다.
팬데믹 2년, 올해도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크리스마스를 맞게 되었습니다.
스페인 국민 작가 알레한드로 카소나의 ≪바다 위 일곱 번의 절규≫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크리스마스 전야, 호화 여객선, 화려한 선상파티에서 죽음이 예고된 겁니다. “오늘이 여러분의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될 겁니다.” 파티 호스트였던 선장의 말 한마디에 기대와 설렘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바뀝니다. 하필 크리스마스에! “메리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환기해 줄 희곡을 모아 봤습니다. 스페인 국민 작가가 그린 크리스마스 악몽, ≪바다 위 일곱 번의 절규≫ 알레한드로 카소나는 유머와 휴머니즘이 잘 조화된 작품들로 내전과 독재에 지친 스페인 민중의 심신을 따뜻하게 위로했습니다. 선한 인물들, 이상적인 무대, 행복한 결말로 나아가는 이야기에 관객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습니다. 관객들에게 그의 연극은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해 주는 안식이었습니다.
≪바다 위 일곱 번의 절규≫에도 카소나의 이런 작품 성향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전야의 화려한 선상 파티를 배경으로 동화 같은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며 어떻게 죽어야 할지, 나아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죽음’을 소재로 ‘삶’에 대한 성찰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어렵지 않게 전하는 카소나의 탁월한 재능이 빛나는 작품입니다.
영국의 젊은 재주꾼들이 이뤄 낸 크리스마스의 기적, ≪고보덕≫ 이너 템플 법학원의 두 재사 토머스 노턴과 토머스 색빌은 크리스마스 축제 때 공연할 목적으로 ≪브리튼 열왕기≫에서 소재를 가져다 비극 <고보덕>을 완성했습니다. 형제간의 왕권 다툼, 백성들의 봉기, 유력 귀족의 반란으로 이어지는 고보덕 왕가의 몰락 과정을 보여 주며 전제 군주의 대안으로 의회를 제시한 급진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정치적·종교적 공세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왕좌를 차지한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동안 정치 드라마의 무대 상연을 엄격히 금하던 때에 이런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히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공연은 무사히 치러졌고 대성공을 거둡니다. 게다가 이듬해에는 웨스트민스터 궁전 화이트홀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이 직관하는 가운데 공연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격변하는 러시아에서 불가코프가 꿈꾼 평화의 크리스마스, ≪백위군≫ ≪백위군≫은 20세기의 도스토옙스키라 불리는 불가코프의 대표 희곡입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을 각색한 것입니다. 뒤에 희곡은 다시 소설 <투르빈가의 나날들>로 개작되었습니다. 이 현란한 개작 이력은 수차례에 걸친 검열과 상연 금지 처분이라는 당국의 압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역사적 격변 가운데 인간의 굴곡진 ‘삶’을 총체적으로 조망하고 당시 러시아 인텔리들의 비극적 운명과 인간 실존의 문제를 성찰하고자 했던 불가코프의 의도는 숱한 변형을 거치며 점차 옅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희곡 ≪백위군≫은 불가코프의 최초 문제의식이 고스란히 반영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혁명으로 온 사회가 들썩이는 와중에도 크리스마스트리에 불을 밝히고 건배하고 노래하며 태연히 일상을 보내는 투르빈가 사람들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만인(Everyman)>은 15세기 말엽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영국에서 발전한 도덕극이라는 독특한 연극 장르의 대표 작품입니다. 내용을 보면 곧바로 구두쇠 스크루지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죽음의 순간 ‘만인’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생전에 친밀히 지냈던 우정, 재물, 선행, 지식, 힘, 분별력 등을 찾아가 지옥까지 동행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마지막 영적 여정을 우화적으로 그린 이 작품은 인물들의 성격화와 여행이라는 내러티브 구조,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연극적 효과 때문에 현존하는 도덕극 계열의 작품들 가운데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인간 영혼의 참모습을 웃음과 감동으로 그려 낸 <만인>은 이를테면 ‘어른을 위한 동화’로서 세속적 삶의 진창에서 허우적대는 현대인에게 시공을 초월한 교훈을 던져 줍니다.
지음이 모름, 강태경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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