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당나라의 빠진 역사
《당궐사(唐闕史)》는 ‘당나라의 빠진 역사’라는 뜻으로, 당나라의 문인 고언휴(高彦休)가 희종(僖宗) 중화(中和) 4년(884)에 찬한 역사 쇄문류(歷史瑣聞類) 필기 문헌이다. 《당궐사》는 상하 2권에 총 51조의 고사가 실려 있는데, 중당(中唐)과 만당(晩唐)의 역사 인물에 관한 일화가 대부분이다. 또한 일부 고사의 말미에 찬자의 평어(評語)가 달려 있어서, 이를 통해 고언휴의 가치관과 세태 비평을 살펴볼 수 있다.
역대 저록을 살펴보면 《당궐사》의 서명은 원래 “궐사”였는데, 송대부터 “당궐사”라는 서명이 등장해 이후 두 가지 서명이 혼용되다가 청대부터는 대부분 “《당궐사》”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고언휴는 당나라 사람이었기 때문에 서명에 굳이 “당” 자를 붙일 필요가 없었겠지만, 당나라 이후에는 시대를 특정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당” 자를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본래는 3권으로 전해지다가 명대에 이르러 2권으로 줄어들어 현재는 24권으로 전하고 있다.
당 대종∼희종 연간의 역사 인물 이야기
《당궐사》에 수록된 고사는 시대 범위가 당 대종(代宗) 대력(大曆) 연간(766∼779)부터 희종(僖宗) 건부(乾符) 연간(874∼879)까지 약 100여 년이며, 대체로 연도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 내용은 〈자서〉에서 “자랑해 숭상하거나 담소에 도움을 주거나 훈계를 드리우는 것”을 실었고 “내실(內室)의 일에 가까운 것과 의심나고 허망한 일”은 제외했다고 밝혔다.
첫째, “자랑해 숭상하는 것(爲誇尙者)”은 관리의 명철하고 공정한 판결이나 청렴결백한 미덕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둘째, “담소에 도움을 주는 것(資談笑者)”은 대부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내용으로, 고사성이 비교적 높고 소설적인 색채가 농후하다. 셋째, “훈계를 드리우는 것(垂訓誡者)”은 사리에 어두워 남에게 사기당해 재물을 빼앗긴 사람에게 경종을 울리는 내용이다.
문헌적 가치
《당궐사》의 문헌 가치는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사학적 측면에서 《당궐사》는 중당과 만당에 실존했던 제왕을 비롯해 고관과 문인에 관한 많은 일화를 수록해 ‘보사지궐(補史之闕)’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당궐사》에는 총 16조에 “참료자왈”이라는 찬자 고언휴의 논평이 실려 있는데, 해당 고사에 근거해 사회의 부조리와 인정세태를 비판하거나 해당 인물을 칭송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는 다른 필기 소설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장치로, 고언휴는 《사기(史記)》의 “태사공왈(太史公曰)”이라는 논평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둘째, 문학적 측면에서 《당궐사》는 당시 문인들이 지은 시에 관한 일화를 수록해 귀중한 문학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제23조 〈조강음정사〉와 제29조 〈최상서설원옥〉은 후대 공안 소설(公案小說)과 공안희(公案戲)의 창작에 영향을 미쳤다.
《당궐사》는 일찍이 청 건륭제(乾隆帝)가 친히 열람하고 〈제당궐사(題唐闕史)〉라는 7언 율시를 지을 정도로 그 내용과 문헌 가치가 상당히 중요한 역사 쇄문류 필기 문헌이지만,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당궐사》에 대한 번역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은 국내외 초역이자 완역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이 책은 청대 포정박(鮑廷博)의 지부족재본(知不足齋本) 《당궐사(唐闕史)》를 저본으로 하고 기타 판본과 관련 전적을 참고해 전체 51조의 고사를 우리말로 옮기고 주석을 달았으며, 교감이 필요한 원문에는 해당 부분에 교감문을 붙였다. 부록에는 〈역대 서발(序跋)〉과 〈역대 저록(著錄)〉을 첨부했다.
200자평
《당궐사(唐闕史)》는 말 그대로 ‘당나라의 빠진 역사’다. 당나라의 문인 고언휴(高彦休)가 중당과 만당 시기의 역사 인물 및 사건을 총 2권 51조의 고사로 소개한 것이다. 중당과 만당 시기의 실존 인물에 대한 일화를 수록해 <<구당서>>, <<신당서>> 등의 정사를 보완하는 야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문학적으로도 당시 문인들이 지은 시와 관련 일화를 상당수 수록해 이후 <<전당시>> 등의 편찬에 큰 역할을 했고 일부 일화들은 후대의 공안소설이나 공안희곡 창작의 소재가 되었다. 청 건륭제가 이를 읽고 <제당궐사(題唐闕史)>라는 시를 지을 정도로 중요한 문헌이지만,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현대어역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연세대 김장환 교수가 정확한 교감, 친절한 주석, 전문적인 해설을 통해 세계 최초로 소개한다.
지은이
《당궐사(唐闕史)》의 찬자 고언휴(高彦休, 854∼?)는 사서에 그의 전(傳)이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행적을 알기 어렵지만, 고언휴의 〈자서(自序)〉, 《당궐사》 권하 제26조 〈정소윤급제(鄭少尹及第)〉의 내용, 최치원(崔致遠)의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의 관련 기록, 위자시(余嘉錫)의 《사고제요변증(四庫提要辨證)》의 고증 등을 종합해 보면 그 대강의 행적을 알 수 있다.
고언휴는 자호가 참료자(參寥子)이고, 당 선종(宣宗) 대중(大中) 8년(854)에 출생했으며, 악악관찰사(鄂岳觀察使) 고개(高鍇)의 종손(從孫)이다. 희종(僖宗) 건부(乾符) 원년(874) 21세에 진사(進士)에 급제했으며, 섭염철순관(攝鹽鐵巡官)·조의랑(朝議郞)·수경조부함양현위(守京兆府咸陽縣尉)·주국(柱國)을 지냈다. 나중에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고병(高騈)의 막부에 있었던 희종 중화(中和) 4년(884) 31세에 《당궐사》를 찬술했다. 그 후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옮긴이
김장환(金長煥)은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세설신어연구(世說新語硏究)〉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위진남북조지인소설연구(魏晉南北朝志人小說硏究)〉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원대학교 중문과 교수, 미국 하버드 대학교 옌칭 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 객원교수(2004∼2005), 같은 대학교 페어뱅크 센터(Fairbank Center for Chinese Studies) 객원교수(2011∼2012)를 지냈다. 전공 분야는 중국 문언 소설과 필기 문헌이다.
그동안 쓴 책으로 《중국 문학의 흐름》, 《중국 문학의 향기》, 《중국 문학의 향연》, 《중국 문언 단편 소설선》, 《유의경(劉義慶)과 세설신어(世說新語)》, 《위진세어 집석 연구(魏晉世語輯釋硏究)》, 《동아시아 이야기 보고의 탄생−태평광기》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중국 연극사》, 《중국 유서 개설(中國類書槪說)》, 《중국 역대 필기(中國歷代筆記)》, 《세상의 참신한 이야기−세설신어》(전 3권), 《세설신어보(世說新語補)》(전 4권), 《세설신어 성휘운분(世說新語姓彙韻分)》(전 3권), 《태평광기(太平廣記)》(전 21권),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전 8권), 《봉신연의(封神演義)》(전 9권), 《당척언(唐摭言)》(전 2권), 《열선전(列仙傳)》, 《서경잡기(西京雜記)》, 《고사전(高士傳)》, 《어림(語林)》, 《곽자(郭子)》, 《속설(俗說)》, 《담수(談藪)》, 《소설(小說)》, 《계안록(啓顔錄)》, 《신선전(神仙傳)》, 《옥호빙(玉壺氷)》, 《열이전(列異傳)》, 《제해기(齊諧記)·속제해기(續齊諧記)》, 《선험기(宣驗記)》, 《술이기(述異記)》, 《소림(笑林)·투기(妬記)》, 《고금주(古今注)》, 《중화고금주(中華古今注)》, 《원혼지(寃魂志)》, 《이원(異苑)》, 《원화기(原化記)》, 《위진세어(魏晉世語)》, 《조야첨재(朝野僉載)》(전 2권),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 《소씨문견록(邵氏聞見錄)》(전 2권), 《옥당한화(玉堂閑話)》 등이 있으며, 중국 문언 소설과 필기 문헌에 관한 여러 편의 연구 논문이 있다.
차례
제당궐사(題唐闕史)
궐사서(闕史序)
권상
1. 정약이 검으로 시해(尸解)하다 丁約劍解
2. 형양공이 청렴하고 검소하다 滎陽公淸儉
3. 치 상서 집의 쥐 요괴 郗尙書鼠妖
4. 배진공의 도량이 크다 황보 낭중의 편급함을 덧붙임 裴晉公大度 皇甫郞中褊直附
5. 토돌승최 거처의 땅에서 털이 자라다 吐突承璀地毛
6. 승상의 부인이 붉은 옷을 입은 관리에게 말을 인도하게 하다 丞相妻命朱衣吏引馬
7. 창주에서 급한 조서를 낚다 滄州釣飛詔
8. 주 승상이 황제의 질문에 답하다 周丞相對敭
9. 이문공이 밤에 제를 올리다 李文公夜醮
10. 노 사인이 노 급사와 벗하다 路舍人友盧給事
11. 이 승상이 특출하다 李丞相特達
12. 양 강서가 급제하다 楊江西及第
13. 최 상국이 태자 책봉을 청하다 崔相國請立太子
14. 배 승상의 골동품 裴丞相古器
15. 두 사인이 호주를 다스리다 杜舍人牧湖州
16. 허도민과 같은 해에 급제한 자 許道敏同年
17. 위 어사 집의 솥 요괴 韋御史鐺怪
18. 정 상국이 마외 시를 짓다 鄭相國題馬嵬詩
19. 진중의 사람이 선친의 편지를 받다 秦中子得先人書
20. 제 장군의 의로운 개 齊將軍義犬
21. 진릉을 조성하기 위해 산을 개착(開鑿)하다 眞陵開山
22. 정 시랑이 사훈의 검토에 판시하다 鄭侍郞判司勳檢
23. 조강음의 정사 趙江陰政事
24. 단 진사가 글자를 분별하다 進士辨字
25. 이 복야가 방정하다 李僕射方正
권하
26. 정 소윤이 급제하다 鄭少尹及第
27. 노 원외가 청룡사에 시를 적다 盧員外題靑龍寺
28. 최 기거가 〈상마도〉에 제하다 崔起居題〈上馬圖〉
29. 최 상서가 억울한 송사를 해결하다 崔尙書雪寃獄
30. 이가급이 삼교를 희롱하다 李可及戲三教
31. 꿈에서 신이 병자를 치료하다 夢神醫病者
32. 발해의 스님이 새와 짐승의 말을 알아듣다 渤海僧通鳥獸言
33. 황상이 누대에 납시기 하루 전에 비가 오다 御樓前一日雨
34. 왕 거사의 신단 王居士神丹
35. 신 상서의 신비한 힘 辛尙書神力
36. 옛 말 그림을 싸게 사다 賤買古畫馬
37. 위 진사가 죽은 기녀를 만나다 韋進士見亡妓
38. 노 상서의 별장에 뇌공이 떨어지다 盧尙書莊墮雷公
39. 사주의 미치광이 비구니 泗州風狂尼
40. 부처의 사리를 영접하는 일 迎佛骨事
41. 승상 난릉공이 만년에 예우받다 丞相蘭陵公晚遇
42. 수안산의 토관 壽安山土棺
43. 노 상국이 진주의 일을 지휘하다 盧相國指揮鎭州事
44. 태청궁의 옥석상 太淸宮玉石像
45. 노 좌승이 섬교관찰사로 부임해 시를 짓다 盧左丞赴陝郊詩
46. 양 상서가 관리를 보임시키다 楊尙書補吏
47. 설씨의 아들이 사이비 도사에게 사기당하다 薛氏子爲左道所悞
48. 군중의 생고기 선물 軍中生餼
49. 호랑이가 이번을 잡아먹다 虎食伊璠
50. 남전에서 얼음을 공물로 바치다 藍田貢冰
51. 동도의 절이 불타다 東都焚寺
부록
1. 역대 발문(跋文)
2. 역대 저록(著錄)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제당궐사(題唐闕史)
지부족재(知不足齋)가 어찌 부족하겠는가? 서적에 목말라하는 것은 어진 일이로다! 장편 대작은 모두 서각에 꽂혀 있고, 자질구레한 이야기와 하찮은 말도 책 상자에 들어 있다. 《궐사》 두 권은 주워 모은 이야기를 전해, 만당(晩唐)의 남겨진 자취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고언휴(高彦休)는 자호가 참료자(參寥子)인데, 고요한 하늘과 함께 하나 됨이 없다.
[청 고종] 건륭(乾隆) 갑오년(甲午年 : 1774) 청화(淸和 : 4월) 상한(上澣 : 상순)에 황제가 친히 쓰다.
3. 치 상서 집의 쥐 요괴
허하[許下 : 허창(許昌)] 사람인 상서(尙書) 치사미(郗士美)는 [헌종] 원화(元和) 연간(806∼820) 말에 악주관찰사(鄂州觀察使)를 지냈는데, 인애로 아랫사람을 어루만지고 충심으로 윗사람을 모셨으며 정치 교화의 훌륭함이 전적에 실렸다. 하루는 새벽에 일어나 장차 일을 보러 나가려고 의대를 다 매고 나서 왼손으로 가죽신을 들고 아직 발을 넣지 않았을 때, 갑자기 커다란 쥐가 정원을 가로질러 가더니 북쪽을 향해 손을 모으고 춤을 췄다. 팔좌(八座 : 치사미)가 크게 화내며 겁주어 쫓아내려고 했지만, 쥐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에 치사미가 가죽신을 던져 맞히자 쥐가 즉시 도망쳤다. 가죽신 속에 독사가 떨어져 있었는데, 독사는 구슬 같은 눈에 비단 같은 몸을 하고 긴 대쪽 같은 가는 독을 혀끝에서 마구 쏘았다. 아까 쥐 요괴가 없었다면 치사미는 필시 발가락이 붓고 발이 썩는 해를 입었을 것이다.
참료자가 말하길, “올빼미가 울고 쥐가 춤추는 것이 항상 재앙이 되지는 않는다. 대인군자는 이런 일을 만나더라도 길하다”라고 했다.
20. 제 장군의 의로운 개
금군대교(禁軍大校) 중에 이름이 영(瑛)이고 성이 제씨(齊氏)인 자가 있었는데, 처음에 뛰어난 말타기로 황제의 은총을 크게 받아 임시 어사(御史) 직함으로 극헌(劇憲 : 어사대부)에 이르렀다. 그는 집에서 명견 네 마리를 길렀는데, 늘 황제를 수행해 드넓은 원유(苑囿)에서 사냥하고 돌아오면 개들에게 쌀밥과 고기를 먹였다. 그중에서 한 마리만은 목구멍과 이빨 사이에 먹이를 담아서 나갔는데, 마치 덤불 속에 감춰 놓았다가 나중에 먹으려는 것 같았으며 다 먹으면 다시 왔다. 제영은 속으로 이상해하다가 하루는 노복에게 그 개가 가는 곳을 살펴보게 했더니, 북쪽 담의 오래된 구멍 속에 그 개의 어미가 있었는데, 늙고 앙상한 데다 더럽기 짝이 없었다. 그 개는 입에 넣어 온 먹이를 뱉어 내서 어미에게 먹였다. 제영도 의로운 사람인지라 한참 동안 그 기이함에 감탄했다. 그래서 광주리에 어미 개를 담아 오게 해 망가진 자리를 깔아 따뜻하게 해 주고 남은 음식을 배불리 먹였다. 그 개는 꼬리를 흔들고 머리를 숙여 마치 감격한 마음을 표시하는 것 같았다. 그 후로 제영이 간사한 짐승을 사로잡거나 교활한 짐승을 뒤쫓을 때 손짓이나 눈짓만 해도 그 개는 나는 듯이 내달렸다. 제영이 그 개를 데리고 황제를 수행해 어가(御駕) 앞에서 사냥하면, 반드시 많은 짐승을 잡아 상을 받았다. 1년이 지나 어미 개가 죽자, 그 개는 더욱 열심히 힘을 바쳤다. 또 계절이 바뀌어 제영도 죽자, 그 개는 저녁 내내 우! 우! 하고 울부짖으면서 멈추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 장지에서 매장할 때 네 마리의 명견을 남겨 두어 도적을 막게 했는데, 하관한 날 저녁에 그 개 혼자만 발로 흙을 긁어내 구덩이를 만들더니 제영의 관에 머리를 찧어 피가 났으며, 무덤의 흙을 다 덮기 전에 그 개도 죽었다.
참료자가 말하길, “아, 네 발로 달리고 털 달린 짐승이지만 능히 충과 효 둘을 지녔으니 감탄스럽도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