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주인공 제로보암은 방백을 통해 자신이 비도덕적인 성직자임을 관객에게 고한다. 그는 신도를 ‘손님’이라 부르며 사제직을 ‘생업’, ‘장사’ 등으로 여기지만, 추메를 비롯한 신도들은 제로를 성스러운 은둔자로 추앙한다. 이 작품의 희극적인 요소는 관객이 알고 있는 제로의 실체와, 그에게 미혹된 신도들이 품고 있는 제로의 이미지 사이의 불일치에서 생겨난다.
아프리카 현대문학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이 유럽의 식민 통치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획득한 시기, 즉 1960년대를 전후해 태동했다. 식민지 수탈을 일삼던 제국주의 세력이 물러났고, 아프리카인을 위한 정부가 수립되었기 때문에 밝은 미래를 맞이할 일만 남았다는 낙관적 전망이 당시 대륙 전반에 만연해 있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실상은 정치적 불안 속에서 저개발과 빈곤의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정치적 독립은 이루어졌으나, 사회 곳곳에 식민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은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이 시기 아프리카 작가들은 아프리카의 혼란한 사회상을 작품 속 주요 주제로 다루었다.
이 작품은 소잉카가 영국에서 귀국한 1960년 3월에 나이지리아에서 초연되었다. 그는 이 가벼운 풍자극을 통해 부정부패, 탐욕, 분열 등의 사회악이 활개를 치는 신생 독립국 나이지리아의 암울한 현실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삶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기꾼 목회자에게 속아 넘어가는 모습과, 이 사기꾼의 악행이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지속될 것이라는 결말에서 관객들은 불안정한 아프리카 사회의 실상을 안타까워하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200자평
소잉카의 <제로 형제의 시련>은 독립 전후 나이지리아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지적한 풍자극이다. 탐욕에 눈이 먼 목회자 제로보암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지은이
월레 소잉카(Wole Soyinka)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문인 중 한 사람이다. 아프리카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1986)라는 찬사가 붙은 그의 이름은 현대 아프리카 문학사에서 상징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다. 그 명성에 걸맞게 국내에도 소잉카의 작품이 다수 소개된 바 있다. 소잉카는 희곡, 시, 소설, 자서전,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의 문학작품을 발표했지만, 그가 가장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친 영역은 희곡이라 할 수 있다.
소잉카는 1934년 나이지리아 남서부의 아베오쿠타(Abeokuta)에서 기독교 목사이자 초등학교 교장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아킨완데 올루월레 소잉카(Akinwande Oluwole Soyinka)다. 그가 속한 요루바 민족 집단(ethnic group)은 토착 종교를 바탕으로 한 신화, 전설, 찬양시(praise poem) 등 풍부한 구비문학 전통을 보유하고 있다. 성장 과정에서 체득한 요루바 고유의 문화적 자산은 소잉카 작품에서 영감의 근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소잉카는 영국 식민지에서 자랐다. 식민지 나이지리아에서 실시된 서구식 교육을 통해 접한 영문학 전통 역시 소잉카가 문인으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런던대학교의 분교로 나이지리아 현지에 설립된 이바단대학(University College, Ibadan)을 졸업한 그는 1954년에 영국의 리즈대학교(University of Leeds)로 유학을 떠나 영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소잉카는 런던의 로열코트극장(Royal Court Theatre)에서 배우 겸 감독으로 일했다. 소잉카의 초기 희곡 작품인 <늪지대 사람들>과 <사자와 보석>은 그가 영국에서 체류하던 시기에 창작되었다.
1960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나이지리아로 돌아온 그는 극단을 조직해 본격적인 연극 활동을 하면서 여러 대학교에서 문학을 강의했다. <제로 형제의 시련>과 <숲 속의 춤>은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으로서 특히, <숲 속의 춤>은 나이지리아 독립기념식 공식 연극으로 상연되었다.
소잉카는 혼란을 거듭하던 신생 독립국 나이지리아 정치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반정부 활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 나이지리아 내전 기간 중 소잉카는 정전을 촉구하는 기사를 기고했다가 비아프라(Biafra) 반군에 동조한다는 죄목으로 22개월 동안 수감되었다. 이후에도 나이지리아 군사정부에 대한 저항운동에 참여했던 소잉카는 1994년부터 1998년까지 미국과 프랑스 등지에서 정치적 망명자로 살아가야만 했다. 나이지리아에 민정(民政)이 회복되자 망명 생활을 마치고 나이지리아에 정착한 소잉카는 대학 교수로서 강의와 저술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옮긴이
박정경은 1972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1991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어과에 입학해 아프리카 문학 연구에 첫발은 내딛었고, 동대학교 대학원에서 아프리카 문학 전공 석사과정을 2000년에 마쳤다. 이후 케냐의 나이로비대학교 문학과에서 수학해 2004년에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스와힐리어와 아프리카 문학 관련 강의를 맡으면서 동대학교의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3
제1막····················5
제2막···················13
제3막···················29
제4막···················61
제5막···················75
해설····················91
지은이에 대해················96
옮긴이에 대해···············100
책속으로
제로: 저 사람이 하는 말 들으셨죠. 여러분 귀로 똑똑히 들으셨을 겁니다. 내일이면 마을 전체에 제로보암 형제의 기적적인 실종에 관한 소문이 퍼질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이 나라 지도자급 인사에 의해 목격되고 증언된 사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