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중국 초창기 화극의 최고작
루징뤄의 <가정은원기>는 작게는 루징뤄와 그의 친구들이 가졌던 연극의 꿈을 대표하고, 크게는 중국 초창기 화극이 해낼 수 있었던 극예술의 최고 수준을 대변한다.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젊은 연극인들과 신극동지회를 결성한 루징뤄는 ‘춘류극장’을 창설해 전통극에서 벗어난 서양식 연극을 꾸준히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창작극 <가정은원기>는 대중의 호응을 얻는 데 성공해 이들의 대표작이 되었다.
왕바이량 일가의 비극
왕바이량은 거금을 들여 기쟁집에서 타오훙을 빼내 그녀와 혼인한다. 왕가에게는 외아들 중선과 민며느리 메이셴이 있다. 타오훙은 정부와 짜고 바이량을 죽인 뒤 그의 재산을 가로챌 계획을 세운다. 왕가는 타오훙이 준 술에 독약이 들었음을 알아채고 그녀를 다그친다. 타오훙은 죄를 중선에게 덮어씌우고 중선은 이런 상황을 비관해 자결한다. 이 일로 충격을 받은 메이셴은 정신을 놓는다. 하인들의 진술로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바이량이 타오훙을 죽인 뒤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하지만 허 선생의 설득으로 마음을 고쳐먹고 참전한다. 일본 신파극 영향을 엿볼 수 있다.
200자평
루징뤄의 <가정은원기>를 통해 중국 화극의 초창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연극에 일생을 바친 작가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지은이
루징뤄(陸鏡若, 1885∼1915)는 중국 최초의 화극 <흑인 노예의 절규>(1907)에 참여하며 화극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후지사와 아사지로의 배우 양성소에 다니며 본격적으로 연극 공부를 시작했다. 특히 일본 신파극 중에서도 예술지상주의 경향이 강했던 이이요호(伊井蓉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자신처럼 연극을 좋아하는 어우양위첸 등 친구들과 춘류사 내에 연극 소모임 신유회를 만들어 <명불평>(1908), <열혈>(1909) 등을 공연했다. 그리고 1910년, 그는 배우 양성소를 나와 쓰보우치 쇼요(坪內逍遙)의 연극 연구소로 가서 연극 공부를 계속했다. 연극 공부와 동시에 이 무렵부터 그는 여름방학이면 귀국해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1910년 6월, 그는 상하이 문예신극장(文藝新劇場)에서 <노예(奴隸)>, <애해파(愛海波)>, <맹회두(猛回頭)> 등을 3주에 걸쳐 공연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11년 여름에는 <열혈>과 사토 코우로쿠의 <구름의 울림(雲之響)>을 개역한 <사회종>을 황난난(黃喃喃) 등과 공연했다. 1912년, 춘류사 시절 친구들이 귀국하자 그는 유학 시절의 옛 친구들과 국내에서 함께 공연하던 루루사(陸露沙) 등 새 친구들을 모아 신극동지회(新劇同志會)를 만든다. 신극동지회는 장쑤 성과 저장(浙江) 성 등 창장 하류 유역에 있는 여러 도시들을 순회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러다가 1914년 4월, 머우더리(謀得利) 소극장을 상설 공연장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춘류극장(春柳劇場)이라는 새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관객에게 외면당한 직업 극단의 형편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사재를 털어 극단 붕괴를 막았고, 번역과 창작, 연출, 연기 등 극단의 거의 모든 일을 감당했다. 극예술을 향한 그의 열정은 초인적인 것이었지만, 몸은 초인이 아닌 사람이었다. 너무 많은 책임을 혼자 떠맡았던 그는 결국 서른 살 젊은 나이에 병사했다.
옮긴이
김종진은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동대학교 중국어과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중국 근현대 연극을 전공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중국 근대 연극 발생사≫(연극과인간)가 있고, 대표 논문으로는 <중국 화극의 중국성(中國性)과 중국적인 화극>, <중국의 화극 민족화와 민족 화극> 등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제6막
제7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왕바이량: (난처한 표정. 책상 위의 유서를 가리키며) 허 선생, 실은 다른 일이 아니라 제 가정에 불미스런 일이 있어서요. 조금 전에 타오훙을 죽였소. 애초에 허 선생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이 지경이 되고 나니 후회막급이오. (보석함과 패물 등을 허싼산에게 건네며) 이 물건들은 선생이 맡았다가 언젠가 메이셴 병이 낫거든 그 아이한테 주시오. 그리고 다른 물건들도 받아 주시구려. 내가 선생 병원에 기부하는 걸로 아시고.
허싼산: 이보시오, 바이량 형. 대장부 인생에 현숙하지 못한 마누라나 불초자식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 아니겠소. 알고 보면 그런 일은 아주 흔하다오. 우리 병원에 기부해 주시는 돈은 감사히 받겠소. 병원에서 보호하고 있는 고아들을 대신해서 감사드리오. 하지만 바이량 형, 평소에 그렇게 속이 깊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속 좁은 생각을 하시오? 당신이 누구시오? 이 나라의 자랑스러운 군인 아니오? 안 좋은 일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좌절하고 자포자기하는 건 당신답지 않소. 내가 알기로 요즘 국경 지대는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고 하오. 나라에는 사람이 필요한데, 바이량 형 같은 사람이 자원해서 우리 군대를 이끌고 적과 맞서 준다면 얼마나 든든하겠소? 바이량 형이라면 틀림없이 큰 공을 세울 거요. 또 설령 전장에서 죽게 된다 해도 조국을 위해 군인으로서 본분을 다한 셈이 아니겠소? 바이량 형, 부디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오!
왕바이량: (허싼산의 말을 듣고 뭔가 깨달은 듯) 말씀 감사하오. 허 선생의 가르침이 아니었으면 큰 실수를 할 뻔했구려. 고맙소. 여봐라, 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