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원매의 강남 산수 유람시≫는 “성난 물결이 산처럼 솟구치는데, 외로운 나룻배에 나는 홀로서 간다”는 강인한 용기와 “목숨을 내던져 산 오르는 일과 맞바꾸려 했으니, 위험을 만났어도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라는 굳센 의지로 길 위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중국 청나라의 원매(1716∼1798)가 강남 산수를 유람하고 지은 시들을 선별해 엮은 책이다.
회재불우(懷才不遇)한 중국의 전통 지식인처럼 재능은 출중했지만 지방의 현령으로 전전해야 했던 원매는 일찍부터 벼슬에 환멸을 느끼고 남경(南京)에 수원(隨園)이란 주택과 정원을 가꾼 뒤에 그곳에서 살며 전업 작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개성이 강하고 주관이 뚜렷해서 유교적 예교주의 전통에 반기를 들고 인간의 자유로운 정욕(情欲)을 긍정했으며 시에서도 시인의 감정을 진솔하게 펴낼 것을 주장하면서, 정교(政敎) 상의 효용을 강조하던 당시의 보수 시단을 비판했다. 나아가 당시 지식인들은 거의 꿈꿀 수 없었던 여제자들을 직접 거느리면서 그들을 격려해 주기 위해 자신의 저술에 그들과 관련된 언론을 남겼고, 또한 그녀들의 시를 모아 시선집을 편찬해 주기도 했다. 이처럼 반전통적인 시론과 대담한 행동은 당시 시단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성령시파(性靈詩派)를 형성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가 원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특이한 점은 바로 그의 유람벽(遊覽癖)이다. 그가 21세 때 숙부를 만나기 위해 강소성 남경에서 광서의 계림까지 장거리 출타를 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그의 긴 여정의 시작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중장년 시절에도 남경 주변 등지로 자주 유람을 나섰지만 더욱 주목할 만한 점은 당시로서는 완전한 노년이라고 할 수 있는 67세 때 절강성으로 장기간 원거리 유람을 떠난 것을 시작으로 안휘성, 강서성, 복건성은 물론 더 멀리 광동성, 광서성까지 다섯 차례 이상 유람을 나섰다는 점이다. 기간도 몇 개월씩 소요되었으며 심지어는 1년 이상 걸린 유람도 있었다.
원매의 유람벽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그리고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유람에 신명이 나도록 했을까?
첫째로는 당시 문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인식되었던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의 관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식을 광범위하게 축적하는 것 이외에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해 견문을 넓히는 것이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창작 구상을 민첩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로 하여금 산천을 유람하도록 강하게 이끌었던 것이다.
다음으로는 원매 본인의 자유분방한 기질, 아름다움을 향유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그로 하여금 유람을 나서도록 재촉했을 것이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기질과 개성은 그를 수원동산에서 유유자적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또한 자연 산수의 이면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맘껏 누리고 싶어 하는 강렬한 욕망이 그를 집 밖으로 나서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 명승지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지적 호기심이 어떤 난관에도 불구하고 직접 현장에까지 이르도록 그를 견인했을 것이다.
200자평
형식과 봉건 규범을 버리고 솔직하고 자유로운 성정을 노래했다. 67세의 나이로 여행을 시작해 82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절강, 안휘, 강서, 복건, 광동, 광서를 두루 다니니 시가 곧 자연이고 인간이다.
지은이
원매(袁枚, 1716∼1798)는 청조(淸朝) 강희(康熙) 55년(1716) 3월에 절강성(浙江省) 전당현(錢塘縣, 지금의 항저우) 동원(東園) 대수항(大樹巷)에서 태어나 옹정(雍正)·건륭(乾隆) 연간을 살며 활동하다가 가경(嘉慶) 2년, 양력 1798년 1월 3일에 소창산의 수원에서 일생을 마쳤다. 그는 자(字)가 자재(子才), 호(號)가 간재(簡齋) 또는 존재(存齋)인데, 주로 지금의 난징(南京)시에 해당하는 강녕현(江寧縣) 소창산(小倉山)의 수원(隨園)에서 살았기 때문에 수원선생(隨園先生)으로 불리기도 했고 만년에는 스스로 호를 창산거사(倉山居士)·수원노인(隨園老人)·창산수(倉山叟)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원매는 일생 동안 많은 저작을 남겼는데 그의 창작이라고 확실하게 증명된 저작으로 총 10종이 있다. ≪소창산방시집(小倉山房詩集)≫ 39권, ≪소창산방문집(小倉山房文集)≫ 35권, ≪소창산방외집(小倉山房外集)≫ 8권, ≪원태사고(袁太史稿)≫ 1권, ≪소창산방척독(小倉山房尺牘)≫ 10권, ≪독외여언(牘外餘言)≫, ≪자불어(子不語)≫ 34권, ≪수원시화(隨園詩話)≫ 26권, ≪수원수필(隨園隨筆)≫ 28권, ≪수원식단(隨園食單)≫ 1권 등이다.
이 중 ≪소창산방시집≫ 39권은 건륭 원년 21세 때부터 가경 2년 82세 때까지 지은 고금체시(古今體詩) 도합 4484수를 수록했다.
옮긴이
최일의(崔日義)는 서울대학교 중문학과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하고 국립 타이완대학(國立臺灣大學)과 중국 랴오닝대학(中國遼寧大學) 방문학자를 역임했다. 지금은 강릉원주대학교 중문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논저로는 ≪원매 시선≫(문이재), ≪중국 시의 세계≫(신아사), ≪중국 시론의 해석과 전망≫(신아사)가 있고, 논문으로 <실제 시가 분석을 통한 청대 4대 유파 시론 용어의 개념 검토>, <十九世紀朝鮮詩壇的性靈觀與清朝袁枚之關系> 등이 있다.
왕잉즈(王英志)는 베이징대학(北京大學) 중문과(中文系) 출신으로, 쑤저우대학(蘇州大學) 학보 편집 위원을 맡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淸人詩論硏究≫(江蘇古籍出版社), ≪續詩品注評≫(浙江古籍出版社), ≪袁枚與隨園詩話≫(上海古籍出版社), ≪紅粉靑山伴歌吟―袁枚傳≫(東方出版社) 등이 있다.
차례
밤에 과주에 들러
강을 건너는데 거센 바람 불어와
저녁에 청량산에 올라
최고봉에 올라
죽림사
천하 제이의 샘물
호구에서 전경개와 술배를 띄우고
소주의 서서포 거사가 옹동유 유생과 함께 나를 초청해 동정서산 섬을 유람하고 나서 석공산방에서 함께 묵고 짓다
표묘봉에 올라
빗속에 호주에 들러
동강에서 짓다
무림으로 돌아왔다 성을 나서며 짓다
도광사
용정 샘물
비래봉
옥천에서 물고기를 감상하며
달밤에 단교에 홀로 앉아
고산
육화탑에 올라
자운과 금고 등 여러 동굴을 노닐며
난정
후산
천태산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즉흥을 맘대로 쓴 시
국청사에서 고명사로 가는 도중 산색을 보고서
화정봉에 올라 노래하다
석량에 이르러 폭포를 보고
경대
입하에 천모사에 들러
흔들바위
자광사에서 걸어서 석동을 지나 나무 사다리를 타고 문수원에 이르다
내내 천도·연화 두 봉의 반쯤 구름에 잠긴 모습만이 보이다가 문수원에 이르니 비로소 전모가 살짝 드러나다
비 온 뒤 문수원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오다 백보운제·일선천·오어동을 지나니 황산의 가장 높은 곳이로다천도봉을 바라만 보며 과감하게 오르질 못하다
괴로운 구름
황학루
동정호에 들러
악양루
상수는 정말 맑아 열 길 깊이에도 바닥을 볼 수 있네
파양호
향로봉에서 폭포를 바라보며
병상에서 일어나 나부산을 유람하며 시 다섯 수를 얻다
단강에서 계림까지 가는 수로의 산수가 기막히게 아름다워 천태산·안탕산보다 빼어난 점이 있기에 6언시 9수를 지었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을까 봐 끝내 산신령에게 죄송한 마음이다
독수봉
계림의 여러 산들이 대개 다 우뚝 솟아 장난삼아 지은 절구 한 수
흥안
선하령에 들러
8월 28일에 무이산 유람을 나서며
배 안에서 천유봉을 뒤돌아보니 일람루는 벌써 하늘 위에 있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강을 건너는데 거센 바람 불어와
성난 물결이 산처럼 솟구치는데,
외로운 나룻배에 나는 홀로서 간다.
내 몸이 용의 등 위에 타고 있는 건 아닐까?
돛이 솟구치는 물보라와 나란하다.
닻줄을 맬 곳조차 없는데,
선창 밖으로 악어의 울음소리 들려온다.
금산과 초산은 나그네가 오는 줄을 아는 것인지,
성 밖으로 나와 멀리서 나를 맞이한다.
·최고봉에 올라
여러 봉우리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여
다투어 한 봉우리에 양보하고 있네.
한 봉우리는 과연 당당하게
홀로 푸른 하늘 위로 솟아 있네.
내가 여기에 오르니 하늘에 오른 듯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네.
흰 구름은 뭉게뭉게 발밑에서 피어오르고
붉은 해는 바로 가슴 앞을 밝게 비추고 있네.
닫힌 산사의 문을 손으로 두드리니
소리가 바람을 타고 산 아래로 퍼져 가네.
노승은 맞이하자마자 바로 나를 부축해 주니
내가 바람에 불려 하늘 너머로 떨어질까 두려워서이네.
노승이 창문 열어 양주의 탑을 가리키며 알려 주는데
또 과주에서 종소리가 무척 선명하게 귀로 들리네.
섭산은 이곳에 이르자 형세가 완전히 바뀌어
괴석과 기송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네.
이것들이 인간 세상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모르겠는데
장강의 물빛이 한 필의 비단처럼 흔들거리는 걸 느낄 수 있을 뿐이네.
머리 들어 보니 봉우리가 조물주의 자리를 침범할까 봐 걱정인데
긴 하늘에 나는 새의 소리는 벌써 끊겨 있네.
산을 유람할 적엔 정상에 이르려 하지 말지니
더 오르려 해도 길이 없어 돌아가고픈 마음만 일어난다네.
산을 등지니 채찍 휘두르듯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오고
손으로 던져 넣은 듯 해는 서해를 밝게 비추고 있네.
·용정 샘물
용이 서호의 떠들썩함을 싫어해
여의주를 숨길 집을 따로 골랐다.
용정의 샘물은 맑고 깊어
푸른 하늘 한복판이 떠서 출렁거린다.
잎이 떨어지자 새가 물고 가고
사람을 멀리하지 않고 물고기가 헤엄친다.
바야흐로 건륭 황제를 영접해야 하는 때라서
벼랑에 돌계단을 열었다.
구멍을 뚫어 신령한 샘물의 수원지를 준설하다가
모래를 긁어내니 기이한 돌이 나왔다.
폭포는 구천에서 쏟아지는데
흩어지며 수많은 곳들을 하얗게 만든다.
구슬을 뿜어내며 갖가지 꽃들을 떨어뜨리는 듯하고
얼굴에까지 뿌리며 눈처럼 어지러이 날린다.
귀 기울이니 물소리 세차서
쟁쟁 둥근 옥이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높은 누대에 돌기둥 차갑고
노송에 푸른 안개 켜켜이 쌓여 있다.
차를 시음하던 사람들은 돌아갈 생각조차 잊었으니
물이 맑아 하늘도 어두워지지 않아서다.
·비래봉
기이한 산봉우리 허공을 날다가
우연히 떨어져 이 땅을 빌리게 되었다.
여기 서호의 아름다움이 마음에 들어
돌아가지 않고 오랫동안 눌러앉기에 이르렀다.
나는 유람 왔다가 동굴로 들어가 둘러보려고
머리 숙이고 기꺼이 사타구니 밑으로 기어 들어왔다.
종유석은 번쩍번쩍 빛나는 연꽃 모양으로 드리웠고
쏟아지는 물은 슬픈 듯 요란하게 소용돌이친다.
악마가 사자후에 항복해 엎드린 듯
용이 싸우고 나서 허물을 벗은 듯
어두운 벼랑에 박쥐가 날아다니는 듯
구름을 뚫고 붉은 사다리가 놓여 있는 듯 모습이 다양하다.
과아씨가 산을 옮기다가
왼쪽 다리에 다친 흔적이 아직 그대로인가 의심되는 것도 있고
또 거령신이 쪼개서
신선 손바닥에 태화봉을 나눠 왔나 의심되는 것도 있다.
객경 수백 명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넓은
텅 빈 동굴이 정말이지 놀랍기만 하다.
머리카락은 뿌려지는 물에 점점 젖어 들고
한창 오후인데도 이미 밤이 되었나 의심이 든다.
영원토록 해가 보이지 않으니
사계절 중 어찌 여름이 있겠는가!
처음으로 작은 틈새로 하늘이 드러나는가 싶더니
구름이 피어나 또 틈을 메운다.
앞 동굴에서 비바람 소리 들리니
다시 찾아가 보고 싶지만 마음은 벌써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