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신석정(1907∼1974) 시인은 1924년 11월 24일자 ≪조선일보≫에 <기우는 해>를 발표하고, 1931년 ≪시문학≫ 3호에 <선물>을 게재함으로써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첫 시집 ≪촛불≫(인문사, 1939)을 비롯해 ≪슬픈 목가≫(낭주문화사, 1947), ≪빙하≫(정음사, 1956), ≪산의 서곡≫(가림출판사, 1967), ≪대바람 소리≫(문원사, 1970) 등 생전에 다섯 권의 시집과 유고 시집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창작과비평사, 2007)을 상재하며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했다.
신석정의 시 세계는 “유토피아를 흠모하는 목가 시인”(김기림), “도교적 자연주의” 또는 “전원시인”(서정주)이라는 수식어들에서 알 수 있듯이 유토피아와 자연을 지향하는 낭만주의적 상상력을 매개해 한국 현대 시사에서 서정시의 본령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동시에 해방을 전후한 무렵부터는 이른바 지사 정신을 바탕으로 현실 참여적 성격이 강한 시편들을 지속적으로 생산한다. 이처럼 신석정의 시 세계는 1930년대 우리 시단의 <시문학파> 동인들이 보유했던 순수 서정성 혹은 전통적 리리시즘의 계보를 충실히 계승하면서 한편으로 해방 이후부터는 역사의식을 기저로 한 현실 참여적 면모를 투명하게 보여 준다. 그의 시 세계는 순수와 참여라는 왜곡된 이분법적 대립을 지양하고 순수 서정과 현실 인식이 공존하는 예술적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나름의 문학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석정의 시 세계는 한동안 포괄적이고 입체적인 평가를 획득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원인으로는 해방 직후에 그가 좌익 문인 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한 사건, 1950년대 문협 전통파와 관계 소원 4·19 학생의거 무렵 교직원 노조 가입 등 시대사의 ‘외적 요인’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선생은 서울 문단과 교류가 없이 거의 전 생애를 고향과 그 이웃인 지방의 좁은 지역에서만 생활했고 또 일제 강점기 때부터 지속된 선생의 저항 정신과 민중 의식이 해방 후 분단의 공간에서 상처를 입어 한때 문단의 관심 밖으로 사라진 시인이 되었다”라는 후학들의 증언은 이를 우회적으로 뒷받침한다. 그로 인해 그간의 신석정 시 세계의 전반적 특성에 관한 연구는 적지 않은 기간, 한국 시사의 소외 지역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시인의 시기별 대표작을 중심으로 주요 특성을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신석정 시편들의 풍요로운 서정 정신과 날카로운 시대 의식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200자평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로 목가시의 정점에 선 신석정. 그러나 그의 시는 머나먼 유토피아에만 머물지 않는다. 자연의 일부가 되어 가슴 뜨거운 자연 서정의 노래를 겸허하고 단정한 목소리로 읊는가 하면 근대 한국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과 저항 의식을 숨기지 않는다. 그에게 순수와 참여는 대립이 아니다. 낭만적 영혼의 꿈과 그 미학적 실천일 뿐이다.
지은이
시인 신석정(辛夕汀)은 1907년 7월 7일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석정(錫正), 아호는 석정(夕汀), 필명은 소적(蘇笛)·서촌(曙村)이다. 시인이자 한학자였던 조부 신제하(辛濟夏)와 부친 신기온(辛基溫) 슬하에서 당시(唐詩)와 한학을 공부하며 엄격한 가풍 속에서 성장했다.
첫 작품 <기우는 해>를 ‘소적’이라는 필명으로 1924년 11월 24일자 ≪조선일보≫에 발표한 후, 1930년에 상경해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불교전문강원(佛敎專門講院) 국어국문학과에서 불전(佛典) 공부를 했다. 서울에 있는 동안 ≪시문학≫ 제3호에 <선물>을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 데뷔,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김기림 등과 함께 순수시를 전개한다. 1931년에는 1년 남짓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청구원(靑丘園)’에서 도연명의 시와 매창 시집 등을 애독하며 시작(詩作)에 전념한다. 1939년 첫 시집 ≪촛불≫(인문사)을 간행한 이후, ≪슬픈 목가≫(낭주문화사, 1947), ≪빙하≫(정음사, 1956), ≪산의 서곡≫(가림출판사, 1967), ≪대바람 소리≫(문원사, 1970) 등 생전에 도합 다섯 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신석정은 시인이면서 동시에 존경받는 교육자였다. 해방이 되던 해 잠시 서울에 머무르던 그는 1946년 낙향한 후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1946년 40세 때부터 1950년 5월까지 부안 중학교와 죽산 중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했으며, 1952년 ≪태백신문≫ 편집 고문으로 위촉되어 <토요시단>을 주재한다. 1954년부터 7년간 전주고등학교에서 근무, 이듬해 1955년부터 전북대학교와 영생대학에서 시론(詩論)을 강의했다. 1961년 5월, 5·16 직후 당시 교원노조를 지지하는 시를 발표했다는 이유로 정부에 연행되어 수일 만에 석방된다. 그해 전주고교를 떠나 김제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으며, 1967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전라북도 지부장을 역임했다. 1964년에 전주상업고등학교로 부임해 1972년 8월 정년까지 재직했다. 그는 수필 <병상의 이 여름>(서울신문, 1974. 7. 4)을 마지막으로 집필, 7월 6일 영면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5권과 이병기와 공저한 ≪명시조 감상≫(박영사, 1958), ≪한국 시인 전집≫(신구문화사, 1959), 번역서 ≪중국 시집≫(정양사, 1954) 등이 있다. 이외에 유고 수필집으로 ≪난초 잎에 어둠이 내리면≫(지식산업사, 1974), 유고 시집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창작과비평사, 2007)이 있다.
1958년 전라북도문화상, 1968년 한국문학상, 1973년 제5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엮은이
권선영(權善英)은 1970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일본 헤이와나카지마(平和中島) 장학재단의 초청으로 일본 도쿄가쿠게이(東京學藝)대학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한 후 한일 근대 여성 문학 비교 연구와 번역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남성 작가가 바라본 ‘신여성’의 한일 비교>, <일본 근대 여성 문학에 나타난 ‘여성의 결혼’>,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의 ≪주산야(十三夜)≫와 ‘달맞이(月見)’>, <한일 근대 여성 문학에 나타난 ‘연애(戀愛)’ 고찰> 등이 있다.
차례
≪촛불≫
임께서 부르시면
그 꿈을 깨우면 어떻게 할까요?
나의 꿈을 엿보시겠읍니까
아 그 꿈에서 살고 싶어라
化石이 되고 싶어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날개가 돋혓다면
봄의 誘惑
秋果三題
봄이여 당신은 나의 寢臺를 지킬 수가 있읍니까
훌륭한 새벽이여 오늘은 그 푸른 하늘을 찾으러 갑시다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山으로 가는 마음
나는 어둠을 껴안는다
銀杏잎을 바라보는 마음
푸른 寢室
이 밤이 너무나 길지 않습니까?
≪슬픈 목가≫
작은 짐승
들ㅅ길에 서서
밤을 지니고
슬픈 傳說을 지니고
슬픈 構圖
고흔 心臟
抒情歌
봄을 부르는 者는 누구냐
차라리 한 그루 푸른 대로
어느 支流에 서서
少年을 위한 牧歌
黑石고개로 보내는 詩
≪빙하≫
三代
꽃 덤풀
哀詞 三章
슬픈 平行線
望鄕의 노래
歸鄕詩抄
發音
山山山
篁
小曲 六章
코스모스
旅程
짐승
氷河
立春
對話
나무들도
어린 羊을 데불고
心臟이 없는 世界
나무 등걸에 앉아서
≪산의 서곡≫
푸른 SYMPHONY
祝祭
山은 알고 있다
山 1
山 2
輓歌 二章
내 가슴속에는
나의 노래는
窓
紅梅 지는 속에
푸른 門 밖에 서서
斷膓小曲
밤의 노래
靈柩車의 歷史
餞迓詞
壁의 노래
쥐구멍에 햇볕을 보내는 民主主義의 노래
薔薇꽃 입술로
哀歌
耳․目․口․鼻
꿈의 一部
≪대바람 소리≫
立春
대바람 소리
立春 前後
梧桐島엘 가서
파초와 이웃하고
그 마음에는
나랑 함께
저 無等같이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森林帶를 끼고 돌면
고요한 湖水에 힌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野薔薇 열매 붉어
멀리 노루 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서요
나와 가치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山비탈 넌즈시 타고 나려오면
양지밭에 힌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서요
그때 우리는 어린 羊을 몰고 돌아옵니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五月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나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가마귀 높이 날어 산국화 더욱 곱고
노란 은행잎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果樹園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고 새빩안 林檎을 또옥똑 따지 않으렵니까?
●꽃 덤풀
태양을 의논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홉사 비 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헤매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뜯지 않었느냐?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 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 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 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내갔다.
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에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오는 봄엔 분수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그 어늬 언덕 꽃 덤풀에 아늑히 안겨 보리라.
●쥐구멍에 햇볕을 보내는 民主主義의 노래
이슥한 안개 속을 헤쳐 온
네 얼룩진 얼굴에 슬픈 鐘소리가
마지막 메아리로 잦아든 오늘
또다시 앞을 가로막는 검은 밤이 올지라도
아폴로가 있어서 우리는 安心한다.
‘어제는 모조리 원수에게 주어라!’
‘오늘만은 아예 양보할 수 없다!’
‘내일은 더구나 빼앗길 수 없다!’
멍든 歷史가 疾走하는 언저리에
주름 잡힌 얼굴
핏발 선 눈을 가진 얼굴
사자같이 노한 四月이 주고 간 얼굴
얼굴과
얼굴과
얼굴들 속에서
내일을 약속할 얼굴을 찾아라.
‘없걸랑 그저 무참히 활을 겨누어도 좋다!’
한 詩人이 있어
‘딱터·李’의 肖像畵로 밑씻개를 하라 외쳤다 하여
그렇게 자랑일 순 없다.
어찌 그 치사한 休紙가 우리들의 성한
肉體에까지 犯하는 것을 참고 견디겠느냐!
그러기에
最後에 벅찬 呼吸으로 다스릴
욕되지 않을 握手는
아마 地球가 몇 바퀴 돌아간 뒤라야
우리 廣場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嚴肅한 歷史의 宣告도 凍結된 地區에서
그렇게도 우리가 목마르게 待望하는 것은
결국
헤아릴 수 없는 쥐구멍에
햇볕을 보내는 民主主義의 作業을 떠나선 意味가 없다.
다시 그 쥐구멍에서
여윈 손이 나오고
노오란 얼굴들이 나온다면
차라리 그때엔
그 어둔 地區에
까마귀로 하여금 목 놓아 울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