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화문학선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동화작가와 시공을 초월해 명작으로 살아남을 그들의 대표작 선집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공동 기획으로 7인의 기획위원이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대표작을 고르고 자기소개를 썼다. 평론가의 수준 높은 작품 해설이 수록됐다. 깊은 시선으로 그려진 작가 초상화가 곁들여졌다. 삽화를 없애고 텍스트만 제시, 전 연령층이 즐기는 동심의 문학이라는 동화의 본질을 추구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편저자가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 소개와 해설을 집필했으며,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다.
손기원은 현대 아동문학의 중견 작가다. 그동안 다양한 소재를 다루면서 짧고 간명한 문장 구사로 빠르게 사건을 전개하며 폭넓은 주제를 형상화해 낸 작가로 알려져 있다. 비교적 짧은 문장을 많이 쓰지만, 필요한 장면의 세밀한 묘사 또한 결코 소홀하지 않은 동화를 써 왔다.
그의 동화에서 가장 짙게 풍겨 나오는 문학적 향취는 ‘삶과 사랑 그리고 그리움’이다. 그는 삶에서 사랑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며 그것이 삶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치열하게 들여다보며 형상화하려 했다. 다양한 삶의 모습 속에서 드러나는 사랑의 문제를, 동심을 바탕으로 하여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한 흔적을 동화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그의 동화는 작가의 삶에 대한 수행과 성찰 과정을 잘 드러낸다. 삶이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작가의 탐색은 치열하다 못해 수행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의 작품을 읽어 가노라면, 삶의 진리를 깨닫고자 차분하면서도 끈질기게 천착하는 작가 정신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치열하고도 끈질긴 수행 끝에 그가 얻어 낸 결론은 삶은 “어떻게 사랑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의 동화에서 그리고 있는 진정한 사랑은 인간의 자기 성찰, 인간 간의 사랑, 인간과 우주 만물 간의 사랑 등 다양한 삶의 맥락과 함께 묘사된다. 다양한 삶의 장면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이고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그려 내고 있다. 특히 ‘동물 보은’, ‘선녀 하강과 승천’, ‘인신 제물’, ‘안수정등(岸樹井藤)’ 등 우리 민족의 전통적 설화와 종교 설화에서 다양한 화소를 끌어와 동화의 내적 리얼리티와 안정감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독자의 삶과 사랑의 문제와 직결되도록 형상화했다.
특히 ‘흰고를 사랑한 야켓’은 삶과 사랑에 대한 작가의 야심작이다. 이 작품은 인간의 삶이 무엇이고, 그 삶 속에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이어야 하며, 인간 문명이 가져온 문제가 무엇인지를 인간으로부터 버림받은 고양이인 ‘흰고’와 외로운 들고양이 ‘야켓’의 사랑으로 치밀하고도 깊이 있게 묘사해 낸 수작이다. 중편인데도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을 만큼 탄탄한 구성과 세밀한 심리 묘사가 돋보인다. 인간으로부터 버림받은 ‘흰고’가 들고양이 ‘야켓’의 사랑으로 점차 회복되는 과정을 그림으로써 사랑의 의미를 성찰하도록 하고 있다. 진정한 사랑은 배려와 기다림의 고통을 통해서 완성될 수 있음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동시에 이 작품은 현대인의 삶과 그 정체성 문제도 깊이 있게 성찰하고 있다. 인간이 삶에서 진정으로 누리고 찾으며 살아야 할 행복이 무엇인지를 야생 고양이와 집고양이의 삶을 대비함으로써 형상화했다. 작품에서 확인되는 다음과 같은 흰고의 말은 독자로 하여금 짙은 공감을 느끼게 한다.
손기원의 동화 속 인물들은 독자로 하여금 삶에 치열하고 정직하게 대면하도록 한다. 외로움과 그리움과 사랑의 과정을 고민하고 탐색하는 작가의 수행 과정에 함께 참여토록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작가의 간명한 문체와 집중력 있는 인물의 내면 묘사는 독자 개개인의 삶과 사랑의 과정을 작품 속 인물과 사건으로 투사하거나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동화를 읽는 동안 독자 또한 작가의 수행 과정에 참여하여 삶과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 속으로 몰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200자평
손기원은 다양한 소재를 다루면서 짧고 간명한 문장 구사로 빠르게 사건을 전개하며 폭넓은 주제를 형상화해 낸 작가다. 삶에서 사랑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며 그것이 삶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치열하게 들여다보며 형상화하려 했다. 이 책에는 <빨간 장갑> 외 7편이 수록되었다.
지은이
손기원은 1948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안동교육대학교를 졸업했다. 1981년 제1회 아동문예 신인상에 오세발 선생이 심사한 동화 <물그림자>가 당선되고, 1982년 김요섭 선생이 심사한 제1회 새벗문학 신인상에 동화 <빨간 장갑>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출간도서로는 ≪물그림자≫, ≪다시 나는 새≫, ≪사육장의 빨간 원숭이≫, ≪양파 껍질 벗기기≫ 외 다수가 있다. 청구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한국불교청소년저작상 등을 받았다.
해설자
진선희는 1965년 대구에서 출생했다. 대구교육대학교를 졸업했고, 한국교원대학교대학원에서 초등국어교육 전공으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교육 관련 저서로 ≪문학체험 연구≫(2006), ≪학습자 중심 시 교육론≫(공저, 2006) 등이 있고 아동문학 연구 논문으로는 <박화목 동시 연구>, <1970년대 이후 동시의 생태학적 상상력>이 대표적이다. 2013년 현재 대구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차례
작가의 말
빨간 장갑
곰바위
뿔난 오리
산새와 병사
동구 밖 미루나무
오디새의 노래
청벽사 돌아이
흰고를 사랑한 야켓
해설
손기원은
진선희는
책속으로
“삶이 어떤 것이라는 걸 알았어. 이곳의 삶이 진정한 내 삶이고 내겐 더없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았어. 그걸 네가 가르쳐 주었어. 도시의 매연은 나를 답답하게 했어. 지난날 내가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만 해도 끔찍해. 할머니의 사랑도 거짓이란 걸 알았어. 그간 나는 인간에게 한낮 노리개에 불과했던 거야. 이제 여기서 너와의 삶이 진정한 나의 삶이란 걸 알게 되었어.”
그러면서 흰고는 희고 누런 얼룩 꼬리를 야켓의 가슴에 얹었습니다.
“나는 너 때문에 목숨을 건졌고 또 행복도 알게 되었어. 이젠 정말 너를 사랑할 거야. 인간보다도 더 사랑할 거야.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데. 네 가슴은 너무 따뜻해. 꼭 안아 줘.”
야켓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 야켓이 입을 열었습니다.
“난 네가 ‘우린 죽어서도 사랑하자’고 한 말을 잊지 않았어. 그 말을 믿고 기다렸어. 언젠가는 네가 돌아오리란 걸 난 믿었어.”
“오, 참 그랬지. 미안해. 나는 그 말을 벌써 잊고 있었는데….”
“잘 왔어. 원래 우리는 인간과는 살 수 없는 야성의 동물이었어. 너는 인간에게 길들여졌을 뿐이야. 이제 진짜로 네가 본성을 찾게 되어 나는 한없이 기뻐. 인간은 인간이고 우린 우리야.”
-<흰고를 사랑한 야켓>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