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히메네스의 시가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과격하게 문법적 구조를 파괴하고, 은유와 이미지 구성이 전혀 논리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 기준 중의 하나가 대중성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히메네스가 195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그 시절에는 이런 난해한 시도 대중적으로 읽혔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너무 감상적인 시에 길들여져 있는 것일까?
같은 맥락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지만 우리말로 소개된 작품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작품의 대부분이 소개되지 않았지만, 그의 핵심적인 시는 시에 관심이 있는 극소수의 독자들에게 문학잡지를 통해 이따금 소개되었다. 또 그의 순수시가 후대에 미친 영향력은 막대한 것이어서, 그의 시를 접하지 않았더라도 이름이나 개괄적인 시 세계 정도는 우리 문단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앞의 비평에서 말한 것처럼, 히메네스의 시는 감상적 시에서 출발해서 보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언어를 가지게 된다. 특히 시집 ≪욕망받는 신과 욕망하는 신≫은 시어의 관념성을 극단적으로 밀고 간 실험적 시집이다.
이 번역 시선집은 우리 독자들이 시인의 다양한 시적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초기 작품에서부터 시인 사후(死後)에 발표된 시까지 고르게 채택한 것이다. 시집이 워낙 많아서 시집 모두를 아우르지 못했지만 작품의 변화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시인의 시가 후반으로 갈수록 난해해지기 때문에 우리 독자들의 평균적 가독성을 고려해, 전반부의 감상적 시가 후기의 관념적 시보다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도록 했다.
200자평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195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안 라몬 히메네스의 작품을 국내에서 처음 번역, 소개하는 <히메네스 시선>. 지중해 연안 풍경과 함께 성장해 스페인의 근대시파를 창시했던 히메네스의 감성적인 초기 작품부터 형이상학적 의미를 더한 후기 작품까지, 그가 표방했던 순수시를 만나 볼 수 있다.
지은이
히메네스는 1881년 스페인 남부의 항구 도시 모게르(Moguer)에서 출생했다. 산타 마리아의 예수회 학교를 다닐 무렵부터 문학에 관심을 보여, 14세에 이미 낭만주의 시인 구스타보 아돌포 베케르와 로살리아 데 카스트로의 시를 읽었다. 어린 시절부터 특히 그림에 애착을 보였으며 그의 초기 작품에 나타나는 빛과 색채 그리고 그림에 대한 열망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에도 재능을 발휘하여 ≪새 생활(Vida Nueva)≫ 같은 잡지에 기고하자 모더니즘의 선두주자들인 루벤 다리오와 비야에스페사의 극찬을 들었다. 그러나 마드리드에서 처음 발표한 시들이 비평가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얻지 못하자, 이내 고향으로 돌아온다. 가족들은 시인으로서 실패한데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겪게 된 그를, 재충전을 위한 휴식의 일환으로 남 프랑스로 보낸다. 그는 그곳에서 상징주의 시인들(보들레르, 베를렌, 랭보, 말라르메)의 영향을 받으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한다. 1903년, 스페인 현대시의 시초라는 평가를 받는 시집 ≪슬픈 아리아≫를 발표한다. 1908년 무렵부터 그의 시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이러한 변화는 ≪애가≫, ≪잔잔한 고독≫등의 시집에 명확히 드러난다. 이 작품들에서는 그간의 민중적인 요소들을 배제하고, 8음절 이상의 시구, 특히 잘 다듬어진 14음절의 알렉산드로 격의 시구를 사용, 단순한 묘사 대신 복잡한 공감각적 표현과, 이미지의 비이성적인 면에 바탕을 둔 서술 요소들이 등장한다.1912년 말 그는 마침내 마드리드로 돌아와 마드리드의 대학생 기숙사에 기거하면서 그곳에서 세노비아 캄프루비 아이마르를 만난다. 1914년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줄 ≪플라테로와 나≫를 발표한다. 1916년 뉴욕에서 세노비아와 결혼, ≪신혼 시인의 일기≫를 출간하면서 그의 작품에 근원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난해하면서도 대중적인 시인 고유의 목소리로 담아낸 ≪영원함≫, ≪돌과 하늘≫, ≪시≫ 등이 당시의 대표작이라 하겠다. 1936년 내전이 발발하자 그는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 잠시 워싱턴에 머물다가 1951년 푸에르토리코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며 그곳에 영구 정착한다. 이때 ≪다른 측면에서≫와 1948년에서 1949년까지의 시를 모은 ≪욕망하고 욕망되어지는 신≫을 발표한다. 1956년, 그의 부인 세노비아가 죽기 3일 전에 노벨상을 수상하고, 그로부터 2년 후인 1958년 5월 29일 사망한다.
옮긴이
전기순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랑에 대한 연구≫(풀빛, 2008), ≪사랑의 행진≫(박영률출판사, 2007), ≪벽에 그려진 얼굴들≫(니카노르 파라 선집, 고려원, 1994) 등 여러 권의 역서가 있고, 저서로 ≪세계의 소설가≫(2000), ≪환멸의 세계와 매혹의 언어: 붐 이후 라틴아메리카 소설≫(2005), ≪스페인 이미지와 기억≫(2010), ≪알모도바르 영화≫(2011)가 있다.
전공 분야는 스페인 현대문학으로, 전후 스페인 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페인 사회시 연구> 외에 중남미 현대소설에 대한 다수의 논문이 있고, 현재는 스페인 황금세기 문학과 스페인 및 중남미 영화와 영화이론 그리고 스페인 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차례
≪서정의 노래(Rimas)≫ (1898∼1902)
머무름의 깊은 곳에 ··················3
사춘기 ·······················5
백합과 태양 ·····················7
5월의 환희 ·····················8
이별의 대화 ·····················9
소녀의 죽음 ····················11
여인과 장미 ····················13
그 생애 스무 송이 장미 ················14
죽음의 미소 ····················15
입술에 대한 향수(鄕愁) ···············17
잠자는 숲 ·····················18
지친 영혼 ·····················21
≪탄생(Anunciación)≫ (1898∼1900)
흰 암벽들 ·····················25
≪슬픈 아리아(Arias tristes)≫ (1902∼1903)
권태 ························29
별도 새도 날아가 버린 하늘 ··············31
비 그친 하늘 ····················33
달이 뜬 도시 ····················34
시인 ························36
목동 ························38
아침 햇살 ·····················40
≪먼 정원(Jardines lejanos)≫ (1903∼1904)
꽃의 계절 ·····················43
≪목가시(Pastorales)≫ (1903∼1905)
태양이 나뭇잎을 금빛으로 물들이리라 ·········47
안개 속에서 ····················49
≪망각(Olvidanzas)≫ (1906∼1907)
10월의 정원 ····················53
≪봄의 발라드(Baladas de primavera)≫ (1907)
밤의 노래 ·····················57
4월 ························58
첫사랑 여인에 대한 슬픈 발라드 ············60
세 번의 입맞춤에 대한 슬픈 발라드 ··········62
≪비가(悲歌, Elegías)≫ (1907∼1908)
말 탄 시인 ·····················67
일몰 ························69
≪소리 나는 고독(La soledad sonora)≫ (1908)
소리 나는 고독 ···················73
≪짧은 노래(Arte Menor)≫ (1909)
그늘진 음악 ····················77
≪미로(Laberinto)≫ (1910∼1911)
태양과 달처럼, 희고 동시에 금발인 나이팅게일에게 ···83
장미 나무 사이로 여름은 가고 ·············85
≪전원시(Poemas Agrestes)≫ (1910∼1911)
아름다운 것 ····················89
새벽 ························90
마지막 여행 ····················92
≪일요일(Domingos)≫ (1911∼1912)
그중 여덟 번째 시 ··················97
≪순수(Pureza)≫ (1912)
동틀 무렵 ·····················101
가을의 순수 ····················102
마을 ·······················104
≪금의 침묵(El silencio de oro)≫ (1911∼1913)
거대한 시간 ····················109
≪영적 소네트(Sonetos espirituales)≫ (1914∼1915)
10월 ·······················113
≪신혼(新婚) 시인의 일기(Diario de un poeta recién casado)≫ (1916)
모노톤 ······················117
하늘 ·······················119
밤 풍경 ······················120
≪영원한 것들(Eternidades)≫ (1916∼1917)
너와 나 ······················125
물웅덩이 ·····················126
우주 ·······················127
노래 ·······················128
참회 ·······················129
≪돌과 하늘(Piedra y cielo)≫ (1917∼1918)
시 1번 ······················133
시 2번 ······················134
≪아름다움(Belleza)≫ (1917∼1923)
어머니 ······················137
사랑 ·······················138
≪완전한 계절(La estación total)≫ (1923∼1936)
제2의 조물주 ···················143
나 다시 태어나면 ··················144
≪바다 저쪽에는(En el otro costado)≫ (1936∼1942)
마지막 아이 ····················149
≪욕망받는 신과 욕망하는 신(Dios deseado y deseante)≫ (1949)
이름들로부터 얻어진 이름 ··············153
우리의 자연스런 움직임에 대해서 ··········155
사랑으로 채우기 ··················157
≪내면적 동물(Animal de fondo)≫ (1949)
완전한 의식 ····················161
≪벌거벗은 시(La obra desnuda)≫ (1918∼1953)
미래의 책 ·····················165
≪떠나가는 강들(Ríos que se van)≫ (1951∼1953)
네 영혼의 색깔 ···················169
오직 너 ······················170
콘서트 ······················171
≪회상(In Memoriam)≫ (유고 시 모음)
죽음 1 ······················175
죽음 2 ······················176
죽음 3 ······················177
해설 ·······················179
지은이에 대해 ···················197
지은이 연보 ····················201
작품 연보 ·····················204
옮긴이에 대해 ···················207
책속으로
안개 속에서 물은 돌에게
자신의 오래된 노래의 고통을 보여 준다.
덩굴 속에서 개똥벌레는
초록빛 비상과 은빛 비상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