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945년 중일전쟁이 끝난 중국에서는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고 있었다. 1950년대에는 국민당 정권이 타이완에 계엄을 선포했고 공산당에 대한 탄압도 거세어졌다. 문학과 예술에서도 반공 사상이 강요되었고 대규모로 반공 문학이 창작되어 곧 타이완 문학의 주류를 형성했다.
장구이는 원래 국민당 군인 출신으로 1948년 타이완으로 이주했으며, 1950년대에 대표적인 반공 작가로 손꼽히며 창작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그중에서도 ≪회오리바람≫은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작가는 창작 당시의 타이완의 상황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비판적인 시각으로 공산당이 어떻게 중국 사회에 흡수되었으며 무엇이 사람들을 매료했는지 분석했다. 작가의 중국 사회와 중국인에 대한 고민과 반성은 혼란스러웠던 중국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새로운 독법을 제시했다.
소설은 1930년대 산둥 지역을 배경으로 지역의 공산당 형성과 함께 시작된다. 주인공 팡샹첸은 산둥 지역의 유서 깊은 지주 가문 출신이지만, 공산당에 매료되어 주변 인물과 가족들에게 공산당의 이념을 설파한다. 그때부터 팡샹첸은 고향으로 옮겨 가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역 공산당의 창시자로서 공산당을 성장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하지만 공산당에 대한 이해의 결여와 무리한 세력 확장은 조용한 농촌의 질서를 무너트리고 결국 사람들을 혼란으로 몰아넣는다. 이 과정에는 팡샹첸 일가를 비롯해 지주, 하인, 노동자, 소작농, 도적, 군인, 일본인, 기생과 창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각각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뿐 아니라 복잡한 갈등과 대립 관계를 맺으며 스토리에 힘을 부여하고 작품에 생명력을 더한다.
작가는 당시 부패한 사회제도에서 무지한 민중이 겪어야 했던 고통에 특히 관심을 가졌으며, 수천 년을 이어 온 구세대의 인습에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물질문명의 병폐까지 뒤섞여 중국인의 삶이 잠식당하는 과정을 세밀한 필치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여성 인물의 형상은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권력과 평등의 모순 관계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또한 소설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세밀하게 재구성하는 데에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기존의 많은 작품이 권력이 대도시를 장악하는 데 주목했다면, 작가는 농촌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과 인물 간의 갈등을 통해 거대 권력이 작은 농촌 마을에 어떤 일들을 일으키는지 밝히고자 했다. 특히 혈연이나 신분과 같은 봉건사회의 이념이 강하게 남아 있던 농촌 사회에서 사람들의 의식이 미처 따라가지 못할 만큼 급진적으로 진행된 혁명의 결과가 얼마나 많은 폭력을 야기하는가에 대한 작가의 분석은 작품 전체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작품 후반부에 공산당에 대한 묘사는 지나치게 편중되어 독자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다. 특정 인물에 대한 평가나 공산당과 일본의 관계, 공산당의 미래에 관한 예측 등은 특정한 시기와 특정한 작가의 상상에서 나온 설정이며, 창작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환경으로 생긴 한계라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정치적·시대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중국인의 봉건적 관념과 무지를 고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주지한 바와 같이 공산당에 대한 작가의 견해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는 한계는 있지만, 사상이나 이념을 넘어서 중국인의 기본적 윤리에 대한 반성과 근대화의 필요성을 암시한 점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맹목적 충동, 봉건적 사고와 관습에 대한 비판 및 농촌 사회에 대한 다양한 묘사는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장구이(姜貴)의 ≪회오리바람≫은 1952년 완성되었으나 신문사와 출판사에게 모두 거절을 당해 1957년 500부가 자비로 출판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출판되어 뜻밖의 관심을 받게 되었으며, 1959년 ≪문학잡지(文學雜誌)≫의 창간자 우루친(吳魯芹) 선생의 추천으로 정식으로 출판되었다. 1978년에는 제1회 우싼롄(吳三連)문예상을 받는 영광을 안았다.
이 책은 타이완의 ≪회오리바람(旋風)≫[타이베이(臺北): 주거출판유한공사(九歌出版有限公司), 1999]을 원전으로 삼았다.
200자평
국민당 군인 출신이자 1950년대에 대표적인 반공 작가 장구이의 대표작이다. 1952년 완성된 원고가 신문사와 출판사에게 모두 거절을 당한 아픔이 있지만, 1978년 제1회 우싼롄(吳三連)문예상을 받는 영광을 안은 작품이다.
중일전쟁과 내전을 겪으면서 기존의 봉건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권력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과정이 다양한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중국의 변화를 꿈꾼 지식인 팡샹첸은 공산당을 선택했다. 결국 그의 새로운 도구는 이상에 지나지 않았으며, 모래성처럼 위태로웠다.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세상을 만든다던 구호는 새로운 권력이 득세하자 껍데기만 남고 만다.
이 책은 당시 중국과 타이완이 처해 있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 역사적 사료이자 작가의 문학관이 풍부하게 드러난 작품으로서 역사성과 상징성을 확보한다. 단순히 반공소설을 읽는다기보다는, 시대적 배경과 작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 현실이나 이데올로기의 외부적 요인들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넓은 시각으로 살핀다면 타이완 소설의 다양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장구이의 본명은 왕린두(王林渡)다. 1908년 11월 3일 산둥성 주청(諸城) 현에서 태어나 1980년 10월 17일 타이중(臺中)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구이는 투철한 반공 사상으로 순탄치 않은 일생을 보내야 했다. 소년 시절에 국민당에 가입했고, 1927년 국민당 정부의 분열과 난창(南昌)에서 벌어진 국민당과 공산당의 무력 충돌[소설 ≪중양(重陽)≫은 이 시기를 주요 배경 및 제재로 삼았다]을 겪었다. 그 때문에 공산당의 형성과 성장, 본질에 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바로 ≪회오리바람≫을 쓰게 된 주요 원인이 되었다.
1928년 상하이에서 옌쉐메이(嚴雪梅) 여사를 만나 결혼했으며, 9·18 사변을 겪고 베이징에 가서 베이징대학 관리과를 졸업했다. 1937년 입대해 중일전쟁에 참전했으며, 전쟁이 끝나고서 퇴역했다. 1948년 장구이는 가족과 함께 타이완의 타이난(臺南)으로 이주했다. 1952년 ≪회오리바람≫이 완성되었으나 출판사들에게 여러 차례 거절당하고 1957년 자비로 출판해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당시 유명했던 동명의 책 때문에 제목을 ≪금도올전(今檮杌傳)≫으로 바꾸었다. 이 책은 2년이 지나서 우루친 선생의 추천으로 밍화수쥐(明華書局)에서 정식으로 출판되었는데, 이때 ≪회오리바람≫이라는 원래의 제목을 찾았다.
1961년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3년이 지나 또 다른 장편소설 ≪벽해청천야야심(碧海靑天夜夜心)≫을 완성했다.
장구이는 30여 년간 전업 작가로 활동하면서 20여 편의 작품을 썼다. 그중에서도 ≪회오리바람≫과 ≪중양≫을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데, ≪회오리바람≫은 야저우(亞洲) 주간에서 선정한 ‘20세기 100대 중국어 소설’의 49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샤즈칭(夏志淸) 교수는 그를 두고 ‘청 말, 5·4, 1930년대 소설의 전통을 집대성한 작가’라고 평한 바 있다. 장구이는 근대 중국 사회의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 근심과 걱정들을 두루 돌보며 풍자하면서도 동정한 작가로, 당시 중국의 사회상은 물론 중국인들의 삶을 진실하고 진지하게 그려 냈다. 그렇기에 시대적·사상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과 정신은 중국 현대문학사에서 귀중한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다.
옮긴이
문희정은 한국해양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중국 현대 문학을 전공해 석사 과정을 마쳤다. 논문으로 <페미니즘 시각으로 본 李碧華의 “霸王別姫”: 인물 형상과 대립 구조를 중심으로>(부산대 석사 논문, 김혜준·강경구 교수 공동 지도, 2009. 8)가 있다. 번역으로는 롱페이의 <불교의 예악화(禮樂化)와 예악화된 불교: 허시(河西) 회랑과 관련한 형상과 문헌 자료를 근거로>(한국음악문화연구 제2집, 2011. 6)와 위화의 <나는 나를 믿을 수 있는가 외 2편>(중국현대문학학회 제60호, 2012. 3), 역서로 ≪시바오 이야기≫(지식을만드는지식, 출간 예정) 등이 있다.
현재는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박사 과정에서 홍콩 통속소설과 여성 문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현대중국문화연구실에서 활동하며 연구와 번역을 진행하고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인물 관계도
회오리바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종대가 건립되었으니 이름을 하나 정해야 할 텐데, 다들 한번 생각해 보시오.”
한바탕 논의가 오간 뒤에도 결론이 나지 않자, 팡샹첸이 말을 꺼냈다.
“회오리바람을 본 적이 있소? 회오리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면 모래가 날리고 돌이 뒹굴며 하늘은 흐려지고 땅은 어두워지니, 커다란 위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지. 우리 종대도 그런 위력을 갖춰야 하오. 또한 그것은 행동이 신속하고 천둥 번개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1000리를 가며, 사람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으니, 우리의 행군과 전투 또한 응당 그러해야 하지 않겠소? 그래서 나는 우리 종대의 이름은 ‘회오리바람’으로 할 것을 제안하오. ‘회오리바람 종대’로 정하는 것이 어떻겠소?”
2.
“어르신, 지금 든 생각인데, 당초에 우리 종대의 이름을 회오리바람이라고 지은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회오리바람은 명성과 힘을 갖추고 속도와 위력을 자랑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좋은 날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우담바라(優曇婆羅)처럼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지지요. 한바탕 휩쓸고 간 자리에는 모든 것이 흩어져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우리 두 사람도 마치 그와 같지 않습니까? …돈, 명예, 지위, 이상, 희망, 어느 것 하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마치 회오리바람이 지나간 것과 같지 않습니까?”
팡샹첸은 그 말을 듣고는 지난 일이 마치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는 조금 흥분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