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선험기(宣驗記)≫는 위진남북조에서 최초로 전문적으로 불교를 선양하기 위해 지어진 불교류지괴소설집(佛敎類志怪小說集)이다. 원서는 13권이었으나 중간에 망실됐고 일문(佚文: 원문은 사라져 없어지고, 원문 중의 일부 문장이 다른 책에 실려 남아 있는 것) 형태로 여러 책에 흩어져 총 37조가 내려왔다.
근대에 들어서 대문호 루쉰(魯迅)이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이라는 책을 내놨는데 여기에는 ≪태평광기(太平廣記)≫·≪태평어람(太平御覽)≫·≪변정론(辨正論)≫ 등에서 모은 일문 35개조가 실려 있다. 그 후로 2조의 일문이 ≪법원주림(法苑珠林)≫에서 추가로 발견됐다.
‘선험기’는 ‘불교의 영험함을 선양하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위진남북조시대에는 수준 높은 대화의 주제로서 불학(佛學)이 중시되었고 대량의 불경이 번역되었기 때문에 당시 많은 명사(名士)들이 불교에 심취해 있었다. 유의경은 여기서 더 나아가 불교를 종교로서 믿었다. 유송(劉宋)의 왕족인 그가 불교를 신봉하게 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생애를 살펴보면 추측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유의경은 13세 때 이미 백부 유유(劉裕)가 후진(後秦)의 요홍(姚泓)을 정벌하는 데 따라나섰으며, 420년에 유유가 송나라를 개국한 후부터는 여러 벼슬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전쟁의 참상과 왕조 교체기의 혼란한 상황을 직접 겪었다. 정치투쟁의 살벌한 현장을 목격한 유의경은 중앙관직을 사양하고 지방관을 자청하여 멀리 떠났다. 이런 모진 시대환경이 불교를 신봉하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선험기≫에 실린 불교 찬양담을 세분하면 다음의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관세음보살의 영험함을 밝힌 고사(10조): 자비로 중생의 고난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열심히 염송함으로써 죽음과 질병 등의 고통에서 구제받게 되는 고사들이다. ‘관세음보살의 영험함’은 대부분의 불교류지괴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내용이다.
2. 불경·불상·사리·이인(異人)의 영험함을 밝힌 고사(9조): 특정한 불상이나 불경 또는 사리 등이 일으킨 이적(異蹟)을 기술하여 불법의 위대함을 선양하는 고사들이다.
3. 불법을 신봉하여 복을 받은 고사(6조): 재(齋)를 올리거나 스님을 공양하거나 선업(禪業)에 정진하는 등 불사를 열심히 행한 덕으로 오래된 병이 낫거나 장수하는 등 좋은 일이 생기게 되는 내용들이다.
4. 불법을 불경스럽게 대해 벌을 받은 고사(6조): 계율을 어기거나 사원을 침탈하거나 불상을 훼손하는 등 훼불(毁佛) 행위를 자행했다가 급병이 생겨 고통 받거나 죽게 되는 이야기들이 여기에 속한다.
5. 살생을 저질러 업보를 받은 고사(4조): 불교의 팔계(八戒) 중 첫째에 해당하는 ‘불살생(不殺生)’의 계율을 범했다가 자신이나 자손이 그 업보를 받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6. 불경의 영향을 받은 고사(2조): 불경의 고사를 채록한 것으로, ‘산불은 끈 새’ 같은 이야기다. 당시 문사들이 불경 고사에 주목, 자신들의 저작에 채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200자평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유송 왕족이었던 유의경이 지은 불교 찬양 이야기. 원전은 망실됐으나 여러 고전에 실렸던 일문을 통해 서른일곱 가지 이야기를 만나 보자.
지은이
유의경은 중국 위진남북조 송(宋)나라의 문학가로, 팽성(彭城) 수리[綬里: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쉬저우시(徐州市) 퉁산구(銅山區)] 사람이다. 위진남북조 때의 송나라를 일명 ‘유송(劉宗)’이라고도 하는데 개국 황제가 유유(劉裕)이기 때문이다. 송나라 개국 황제인 무제(武帝) 유유(劉裕)의 조카가 바로 유의경이다. 송나라 개국 후 유의경은 임천왕(臨川王)에 습봉되었으며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단양윤(丹陽尹)·형주자사(荊州刺史) 등을 역임했다. 사후에 시중(侍中)과 사공(司空)에 추증되었으며 강왕(康王)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유의경은 문학을 좋아했으며 많은 문인들을 초빙, 함께 여러 저작을 편찬했다. ≪선험기≫를 비롯하여 ≪세설신어(世說新語)≫·≪유명록(幽明錄)≫·≪소설(小說)≫·≪서주선현전(徐州先賢傳)≫·≪강좌명사전(江左名士傳)≫·≪의경집(義慶集)≫·≪집림(集林)≫ 등 많은 작품을 저술했는데, ≪세설신어≫를 제외하고는 모두 망실되었다. ≪송서(宋書)≫ 권51과 ≪남사(南史)≫ 권13에 그의 전(傳)이 있다.
옮긴이
김장환은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世說新語硏究」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魏晉南北朝志人小說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원대학교 중문과 교수, 미국 Harvard-Yenching Institute의 Visiting Scholar(2004~2005), 같은 대학교 Fairbank Center for Chinese Studies의 Visiting Scholar(2011~2012)를 지냈다. 전공분야는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문헌이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중국문학의 벼리』, 『중국문학의 갈래』, 『중국문학의 숨결』, 『中國文言短篇小說選』, 『劉義慶과 世說新語』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中國演劇史』, 『中國類書槪說』, 『中國歷代筆記』, 『세상의 참신한 이야기―世說新語』(전3권), 『世說新語補』(전4권), 『世說新語姓彙韻分』(전3권), 『太平廣記』(전21권), 『太平廣記詳節』(전8권), 『封神演義』(전9권), 『列仙傳』, 『西京雜記』, 『高士傳』, 『笑林』, 『語林』, 『郭子』, 『俗說』, 『談藪』, 『小說』, 『啓顔錄』, 『神仙傳』, 『玉壺氷』, 『列異傳』, 『齊諧記․續齊諧記』, 『宣驗記』, 『唐摭言』(전2권), 『述異記』 등이 있으며,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문헌에 관한 여러 편의 연구논문이 있다.
차례
1. 장융
2. 혜상과 법향
3. 안순
4. 건안군의 산적
5. 오흥군의 경당
6. 차 아무개의 어머니
7. 심갑과 육휘
8. 고순
9. 사준
10. 오당
11. 정덕도
12. 주씨
13. 왕도
14. 천축 스님의 소
15. 산불을 끈 앵무새
16. 산불을 끈 꿩
17. 이무기
18. 손호
19. 승회법사
20. 손조
21. 모덕조
22. 이유
23. 곽선과 문처무
24. 왕습지
25. 곽전
26. 유문
27. 정도혜
28. 포판 정사
29. 진현범의 부인 장씨
30. 장도의 모친 왕씨
31. 정선
32. 유식지
33. 유유민
34. 불불
35. 정령
부록
36. 대규
37. 대옹
≪광세음응험기(光世音應驗記)≫
동진(東晉) 사부(謝敷) 원저(原著), 유송(劉宋) 부량(傅亮) 찬(撰)
1. 축장서
2. 사문 백법교
3. 업성 서사의 세 호승
4. 두부
5. 여송
6. 서영
7. 사문 축법의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어떤 앵무새가 다른 산으로 날아가 깃들였는데 그 산속의 날짐승과 들짐승들이 앵무새를 매우 아껴 주었다. 앵무새는 스스로 생각하길, 비록 이곳이 즐겁기는 하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다고 하면서 곧 떠났다. 몇 달 뒤에 그 산속에서 큰불이 났는데, 앵무새가 멀리서 그 광경을 보고 곧장 물로 들어가 깃털을 물에 적셔 날아다니며 물을 뿌렸다. 이를 보고 천신이 말했다.
“너는 비록 뜻은 있지만 어찌 그것으로 충분하겠느냐!”
앵무새가 대답했다.
“비록 불을 끌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일찍이 제가 이 산에서 잠시 기거하는 동안 날짐승과 들짐승들이 선을 베풀어 모두 형제가 되었기에 차마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천신이 가상히 여기고 감동하여 즉시 불을 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