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Descartes)의 명제를 원용한 독일의 소리 연구가 세게베르크(Segeberg)의 이 명제는 소리의 힘이 그림이나 문자의 힘보다 월등히 크다는 사실을 대변한다. 인간이 일생 동안 커뮤니케이션하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메시지는 소리매체에 의해 운반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인간 커뮤니케이션에서 잡음을 포함한 소리는 인간의 감정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을 그림이나 문자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정확하게 자극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소리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인간의 의식 활동과 태도 변화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내 최초의 소리 메시지 연구
그런데도 지금까지 우리의 소리 연구는 민속학이나 음악학 등의 영역에서 주로 이루어졌고, 커뮤니케이터(소리 창조자 및 송신자)의 의도와 업적에 큰 비중을 두고 수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각 음악 장르의 작사·작곡가와 악곡(樂曲), 악기의 연행(주)자, 성악가 등에 대한 연구가 그것이다. 그러나 소리 커뮤니케이션에서 커뮤니케이터의 의미 선택에서 시작해 전달, 그리고 수용자(소리를 듣는 자)의 이해라는 세 가지 기본 요소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서로 간의 의미 공유를 수행하는 상호작용이 불가능하다. 곧 소리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소리의 청자(聽者)는 소리 연행자가 전달하는 메시지(소리에 실린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태도의 변화, 감정이입 또는 신명을 느끼게 된다. 커뮤니케이션학자인 저자는 이러한 소리 수용자에 대한 관심에서 소리 메시지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한국 소리 커뮤니케이션학의 초석을 이룰 첫 번째 책
이 책의 목적은 우리의 궁중음악 또는 정악과 같은 엘리트 음악이 담아내는 메시지가 아니라, 우리 민중 속에 깊숙이 자리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적 소리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분석·종합하여 정리하는 데 있다. 우리 민중이 창조하고 느낀 소리는 그들의 희로애락을 가장 솔직하고 진지하게 담지해 온 인식과 실천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의 의도가 반영되어 인간들 간의 의미 공유를 목표로 수행되는 비언어적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소리 메시지를 연구하여, 우리 민중이 소리를 창조하고 청취하면서 어떤 의미를 공유했는지 재구성해 해석한다.
200자평
소리는 그림이나 문자보다 인간의 뇌를 훨씬 더 직접적이고 정확하게 자극한다. 청자는 소리 연행자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이해함으로써 태도 변화나 감정이입, 신명을 경험한다. 이 책은 우리 민중이 소리를 창조하고 청취하면서 어떤 의미를 공유했는지 재해석한다. 쇠북소리, 징소리, 풍물, 민요, 판소리, 산조, 유행가 등 생활 속에 깊이 자리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적 소리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분석·종합한다.
지은이
김성재
1980년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고, 1992년 독일 뮌스터대학교 언론학과에서 루만의 체계이론에 기초한 “유행과 반유행: 유행의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유학을 마친 후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 그리고 중앙대학교 강사를 거쳐 1994년부터 조선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커뮤니케이션 이론, 매체철학, 매체미학을 연구·강의하면서 지금은 한국의 소리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한국지역언론학회장, 한국미디어문화학회장, 독일 바이로이트대학교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광주연구소 소장 및 한국지역사회학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유행과 반유행: 공론장의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1993, 독일어판), 『체계이론과 커뮤니케이션: 루만의 커뮤니케이션 이론』(1998, 2005 증보판), 『매체미학』(1998, 편저), 『코무니콜로기』(2001, 역저), 『피상성 예찬』(2004, 역저), 『상상력의 커뮤니케이션』(2010) 등을 포함해 15권이 넘는 책을 썼다. “탈문자 시대의 매체현상학: 기술적 형상의 탄생에 대하여”(2005), “소리 커뮤니케이션에서의 상호매체성: 바그너 오페라와 한국 판소리의 비교연구”(2011), “스크린 밖 영역에서의 소리 커뮤니케이션: 들뢰즈와 시옹의 영화이론을 중심으로”(2012) 등 5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차례
서문
01 쇠북소리: 영혼의 소리
영혼을 파고드는 소리
쇠북소리의 커뮤니케이션학적·음향학적 특성
-커뮤니케이션학적 특성
-음향학적 특성
『시경』에 나타난 쇠북소리
우리의 구전문학에 나타난 쇠북소리
-심청전
-토끼전
-논산 상여 소리 <짝소리>
우리의 고전문학에 나타난 쇠북소리
-남명집
-동곡문헌
-난중잡록
우리의 현대문학에 나타난 쇠북소리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
-심훈의 <그날이 오면>
-유치진의 <원술랑>
-이병천의 <우리의 숲에 놓인 몇 개의 덫에 대한 확인>
구원, 시간 그리고 전쟁의 메시지
02 징소리: 하늘의 소리와 마을의 소리
하늘을 향한 기화의 소리
음악기학론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유의미한 상징으로서 징소리
문순태의 『징소리』에 나타난 징소리의 메시지
–<징소리>
–<저녁 징소리>
–<말하는 징소리>
–<무서운 징소리>
–<마지막 징소리>
–<달빛 아래 징소리>
조정래의 『아리랑』에 나타난 징소리의 메시지
유정자의 『징소리에 실려 올 꽃의 숨소리』에 나타난 징소리의 메시지
신명과 한의 메시지
03 풍물: 대동신명의 소리
굿판의 대동신명과 희로애락
한국 고유의 전통문화로서 풍물의 특성
-놀이 형식으로서 풍물
-굿 형식으로서 풍물
춤과 어우러진 풍물의 소리 커뮤니케이션
풍물의 메시지
집단신명과 대동단결
04 민요: 민중의 목소리
민족음악의 진수
지역별 대표 민요
-경기민요
-서도민요
-남도민요
-강원·함경·경상도 민요
-제주민요
주제별 민중 민요
-농요
-노동요
-의례요
-유흥요
-서사민요
-기타 민요
남녀상열지사, 노동의 고통 그리고 인생무상
05 판소리: 마당·장터의 소리
소리의 원근법과 추임새
소리 커뮤니케이션에서의 상호매체성: 이론적 논의
판소리 커뮤니케이션에서의 상호매체성
상호매체성의 부각과 판소리의 세계화
06 산조: 정교한 실내 음악
민족기악과 한풀이
산조의 메시지
-가야금산조
-거문고산조
-해금·대금산조
우주의 기운을 타는 음악
07 유행가: 노래방의 소리
사랑, 이별 그리고 눈물
연구 내용과 방법
유행가의 메시지
-사랑
이별
눈물
한국인의 신명과 한풀이
08 결론: 소리예술과 매체미학
출처
책속으로
우리의 소리 커뮤니케이션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해 온 쇠북소리의 메시지에 대한 연구는 언론학 연구나 매체 연구에서 아직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쇠북소리는 공기라는 원초적인 매체를 필요로 하는 청각의 소리이고, 그 메시지는 이 공기에 의해 운반되는 의미다. 우리 소리의 뿌리를 찾기 위해 시도된 쇠북소리의 메시지 연구는 한국의 소리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첫 발걸음이 될 것이다.
_ “01 쇠북소리: 영혼의 소리” 중에서
소리예술의 재미와 효용을 만끽하기 위해서 우리는 소리매체가 운반하는 메시지를 인지하고 이해해야 한다. 소리에 담긴 메시지의 이해와 관련, 우리는 매체의 감각적인 인지에서 출발한 개념인 ‘매체미학’을 도입해야 하는 해석학적 당위성과 마주친다. 매체미학의 개념은 감성적 판단이라는 미학의 원래 의미를 좇아 매체의 감각적 인지형식이라고 정의된다. 곧, 매체미학은 매체의 수용자가 이성적 판단에 따라 ‘예/아니요’의 답변을 요구하는 합리적 커뮤니케이션에서 해방되어 매체를 통해 중개된 대상과 사건을 자신의 취향과 능력에 따라 감각적으로 판단하는 인지 형식이다.
_ “결론: 소리예술과 매체미학” 중에서
추천글
놀랐다. 이 책은 한국의 작가나 작곡가, 성악가의 작품과 연행 형태만을 연구해 온 기존의 연구서와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한 커뮤니케이터는 물론 전달 과정과 수용자가 상호작용하는 소리 메시지를 함께 연구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저자는 벌써 ‘한국의 소리 커뮤니케이션학’을 수립하여 인간 영혼까지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소리예술을 또다시 우리에게 전달한다. 소리란 역시 최고의 매체였다.
_ 노동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전통예술학부 교수
침묵과 소음을 포함해 모든 ‘소리’는 인간의 몸과 영혼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은 다양한 장르의 소리예술을 통해 그 힘의 내력과 작용을 탐사한다. 특히 엘리트 중심의 음악보다는 민중의 생활 깊숙이 뿌리내린 음악에 주목하고 그 메시지들을 분석한 점이 인상적이다. 언어가 아니지만 때로는 언어 이상의 소통과 감응을 이끌어 내는 ‘소리’야말로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영토일 것이다. 영혼을 일깨우는 쇠북소리에서 현대의 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폭넓은 연구는 그 보이지 않는 영토를 풍요롭게 드러내며 소리의 존재론적 기반을 마련해 준다.
_ 나희덕 시인,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