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구니키다 돗포는 가라타니 고진이 꼽은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이다. 고진은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에서 근대문학의 기원을 ‘풍경과 내면의 발견’에서 찾는데, 내면의 존재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풍경’의 발견은 돗포의 작품에서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으므로 이를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으로 본다. 돗포 문학은 일본의 근대문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문예평론가 나카지마 겐조는 존재의 자각을 일깨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삶에 영향을 준다고 했다. 히라노 겐은 작품을 읽으면 잊고 있었던 원초적인 무엇인가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육욕 소설의 선조’, ‘메이지 시대의 진정한 작가’라는 평도 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돗포를 스트린드베리, 니체, 톨스토이 등과 견주었다. 돗포를 흔히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돗포 스스로는 자신을 자연주의에 묶으려 하지 않았으며 돗포는 돗포라고 주장함으로써,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자신의 독자적인 문학관에 근거해 작품을 쓰고 있었다.
돗포의 대표적 작품으로,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무사시노의 자연미를 시정이 가득한 필치로 그려 낸 <무사시노>가 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4월 이야기>의 배경이 된 지역이며,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돗포의 ≪무사시노≫를 읽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무사시노>가 일본 근대문학사에 그 이름을 남기게 된 이유는 이전과는 다른 관점과 방식으로 무사시노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돗포 스스로 ‘아름다움이 아니라 시적 정취’가 무사시노에 어울린다고 말했듯이, 추상적 개념의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무사시노를 직접 경험하고 받은 감동을 시적 언어로 표현하겠다는 돗포의 열망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외에 스스로 동맥을 끊은 친구의 죽음 앞에서 죽음의 문제를 돌아보는 <죽음(死)>, 저회취미(低徊趣味)라는 관점에서 한 인간을 가장 잘 드러낸 완벽에 가까운 사생문이라고 나쓰메 소세키가 극찬을 아끼지 않은 <순사(巡査)>, 시대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운명의 톱니바퀴에 끼여 세상과 불협화음을 내며 살아간 한 인간을 그린 <도미오카 선생님(富岡先生)>, 나약하기에 불행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남자의 비극을 그린 <취중일기>, 교육의 본질이 삶의 지혜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 주면서 돗포가 추구하는 교육자와 영웅은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 주는 소설 <해돋이> 등 열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200자평
가라타니 고진이 꼽은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 구니키다 돗포. 돗포의 작품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잔잔하면서도 인간의 심부를 해부하는 예리함, 내면의 자신과 직면하게 만드는 강한 흡입력, 스토리의 전개에 따른 의외성과 진실의 보편성을 아우르는 문학적 균형 감각을 갖추고 인생의 해답을 끊임없이 자문하게 만든다. 이 책에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4월 이야기>의 배경이 된 지역을 그린 <무사시노>, 나쓰메 소세키가 극찬을 아끼지 않은 작품 <순사>를 비롯해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지은이
구니키다 돗포는 1871년 치바(千葉) 현에서 태어났다. ‘돗포(独歩)’는 필명으로, 혼자서 걷기를 좋아했던 고독한 성향과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70여 편의 단편 소설을 발표했고 시(詩), 고백론, 수필, 평론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썼다. 일본 근대문학사에서는 ‘천부적인 단편 작가’로 불린다. 유일한 장편소설인 ≪폭풍(暴風)≫을 연재하다 완성을 보지 못하고, 폐병이 악화되어 1908년 짧은 인생의 막을 내렸다.
옮긴이
인현진은 연세대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 동양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오테마치에 있는 대한재보험 동경사무소에서 통번역비서로 근무한 바 있으며,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쳤다. 저서로는 ≪시나공 JLPT 일본어능력시험 N1 문자어휘≫, ≪비즈니스 일본어회화 & 이메일 핵심패턴 233≫이 있으며, 현재 번역 활동을 하면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다.
차례
무사시노
죽음
순사
소라치 강가
도미오카 선생님
취중일기
해돋이
제삼자
봄 새
두 노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사회는 어디에 있는가, 인간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역사’란 어디에 있는가. 이 순간, 이 장소에 있으면, 인간의 ‘생존’ 그 자체가 자연의 숨결에 달려 있음을 실감한다. 예전에 러시아의 시인은 밀림에 홀로 앉아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다. 시인은 말했다. ‘지구에 남은 마지막 한 사람이 사라질 때, 나뭇잎 하나도 그 때문에 흩날리지 않으리라.’
−<소라치 강가> 104∼105쪽
그곳에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점점 더 캄캄한 어둠을 쫓아 헤매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창백한 얼굴을 옷깃에 묻은 채 바위 그늘에 웅크리고 앉아 한숨을 쉬고 있었는데, 이미 죽기로 마음먹고 잠시 주저하던 참이었나 봅니다.
문득 발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노인 한 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옆으로 오더니, 다정하게 말을 건넸습니다.
(…)
“나는 올해 예순인데, 이렇게 멋진 해돋이는 처음이네. 내년엔 올해보다 더 아름다운 해돋이를 보고 싶군.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일세.”(…) “그나저나 얼굴색이 안 좋은데 그렇게 매가리 없이 다녀서야 세상을 어찌 헤쳐 나갈 수 있겠나. 어떤가, 해돋이를 같이 본 것도 인연인데, 우리 집에 함께 가세. 오조니라도 대접할 테니.”
−<해돋이> 228∼230쪽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가 선생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사람이란 대충대충 살다가 죽어선 안 된다, 온힘을 다해 영웅호걸이 되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죠. 모름지기 인간은 인간 이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모두 발휘할 의무가 있다, 이 의무를 다하면 곧 영웅이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영웅은 바로 그런 의미였습니다.
−<해돋이> 2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