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형초세시기≫는 현재 보존된 제일 완정된 고대 기록으로, 초 지방의 세시월령 및 풍물고사를 담은 필기체 산문이다.
저자 종름은 남북조의 혼란한 시기를 살았던 귀족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형초 지방은 남조 왕권의 발원지이며 주요 농업 생산지로 중요한 거점이었다. 당시는 호족에 의해 한족 문화가 짓밟힐 때였다. 종름은 양 원제 때 형주인으로 건업 천도에 반대하며 형주 천도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로 미루어 보아 ≪형초세시기≫ 저작 동기가 향토애정신이라는 설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나아가 형초 지방의 애정을 바탕으로 중국 전통문화를 보존하고자 하는 저자의 애국정신을 짐작할 수 있다.
≪형초세시기≫는 중국 전통문화로 대표되는 형초의 세시풍속을 음력 봄(정월~3월), 여름(4월~6월), 가을(7월~9월), 겨울(10월~12월), 윤월 순서의 체재로 기술했다. 음력 정월에서 12월, 윤월에 이르기까지 모두 49조를 기재했으며 항목마다 간략히 세시풍속을 기술하고 안어(按語)로써 시속(時俗)을 설명했다. 인용한 문헌은 약 90여 권으로 유교 경전, 불경, 도가 및 도교의 경전, 사서, 인물 전기, 지리풍속서, 지괴소설집, 천문서, 의서, 시부, 유서(類書), 민간속언 및 신화·전설 등에 관련된다.
내용은 제신, 축귀·거악·제액, 송구영신, 건강(전염병 예방·치료·퇴치, 의약, 양생·장수), 시절음식, 농사(잠상·생산), 역사 고사(사건·인물전기), 신화·전설, 시문, 신앙, 유희, 남북 풍속 비교 등 12종류로 집약된다. ≪형초세시기≫의 가치는 옛 풍속습관과 신앙을 반영하여 후세 민속학의 중요한 보고(寶庫)가 되며, 사용된 문자가 청신하고 유창하며 시인들의 시부가 인용되어 문학성이 높고, 고대의 신화와 전설·의약·체육문화 등 사회 상황이 보존되어 다방면의 학술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200자평
세시기(歲時記)란 계절에 따라 민속적인 연중행사를 기록한 것이며, 형초(荊楚)는 지금의 후베이성·후난성 일대를 가리킨다. 옛 구주(九州)의 하나인 형주(荊州)는 춘추전국시대의 초국(楚國)이다. 남북조 시대 종름이 짓고 수나라의 두공첨이 주를 단 이 책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는 초나라 풍속과 연중행사를 기록한 것으로, 중국 세시기의 효시다.
지은이
종름(宗懍)은 자는 원름(元懍)이며 남양(南陽) 열양(涅陽)이 본관이다. 출생 시기를 498∼502년 사이, 사망 시기를 561∼565년 사이로 추정한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독서를 좋아해 말에 고사 인용을 잘했다. 향리에서 소아학사(小兒學士)라 불렀다. 525년 수재로 추천되어 대책시험(對策試驗)에 응할 수 있었다. 다음 해 왕부(王府)장사 유지린(劉之遴)이 종름을 인재로 추천해, 훗날 양 원제(元帝)가 되는 상동왕(湘東王)이 그를 만나 보고 그날로 왕부기실(王府記室)과 서기관(書記官)을 겸하게 했다. 이때부터 30년 가까이 양 원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룻밤 사이 용천왕묘비(龍川王廟碑)를 지어 왕의 신임을 두터이 받았다. 왕이 540년 강주(江州)에 전임했을 때 왕부의 형옥참군(刑獄參軍)과 장서기(掌書記)를 겸했다.
그 후 임여(臨汝)·건성(建成)·광진(廣晋) 3현(縣)의 현령을 역임하고 모친상을 당해 퇴관했다. 상을 당해 슬피 곡하며 20일간 절명하고 깨어나길 세 번이나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부친 고지가 재관 중 법을 어기니 대신 속죄하며 종신토록 채식하여 향리에 그의 효성이 회자되었다.
547년 상동왕이 형주의 장관으로 부임했을 때 종름을 불러 별가(別駕)와 강릉령(江陵令)을 지내게 했다. 552년 상동왕이 형주에서 원제로 즉위하고 종름을 중용해 오병(五兵)·도관(都官)·이부(吏部) 각 상서(尙書)의 요직을 맡았다. 이부상서 재임 시 천도 문제에 직면해 형주 토착인 종름은 다수의 건업 천도설에 반대하고 형주 천도설을 주장했다.
557년, 거기장군(車騎將軍)·의동삼사(儀同三司)를 맡았다. 세종(世宗)이 즉위하자 왕포(王褒)와 인지전(麟趾殿)에서 군서간정(群書刊定) 사업에 종사해 자주 위로연을 받았다. 북조에 출사하여 10년 정도 지낸 뒤 보정 연간에 64세로 생을 마감했다. 문집 20권을 세상에 남겼으나 그 책은 전하지 않고 오직 ≪수서≫·≪구당서≫·≪당서≫에 저록만 보인다.
옮긴이
상기숙(尙基淑)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교육대학원에서 <한국 현대문학과 Shamanism−東里·順元 작품을 중심으로>로 교육학석사 학위를 받고, 동 대학원에서 <韓國 巫占의 실태−문학성과 관련지어>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홍콩 사립원동대학(私立遠東大學)에서 <≪剪燈新話≫集證>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현재 한서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저로 ≪荊楚歲時記≫, ≪夢遊桃源圖 贊詩文≫, ≪帝京歲時紀勝≫ 등이 있으며, 중국의 민간신앙, 중국 고전소설문학과 민속, 나아가 한중 양국의 문학 및 민속문화 비교 등을 주제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차례
형초세시기서(荊楚歲時記序)
정월(正月)
이월(二月)
삼월(三月)
사월(四月)
오월(五月)
유월(六月)
칠월(七月)
팔월(八月)
구월(九月)
시월(十月)
십일월(十一月)
십이월(十二月)
윤월(閏月)
참고문헌
부록
영인본: 흠정사고전서(欽定四庫全書) 사부(史部), 사부비요(四部備要) 사부(史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닭이 울면 일어난다.
≪주역위통괘험(周易緯通卦驗)≫을 살피건대, “닭은 양(陽)의 기운에 감응하는 새다. 그러므로 사람이 활동하는 사시(四時)를 알리고 사람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단정히 의대를 갖춰 입게 한다” 했고, 주(注)에,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따르면 자식이 부모를 섬기고 부녀자가 시부모를 섬기려면 첫닭이 울자마자 일어나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 머리를 단정히 빗는다” 했다. 이는 곧 일상적인 것이며 이날만 특별한 것이 아닐 것이다. 다만 원정(元正) 아침엔 존망경조(存亡慶弔)하고, 관에서 조하하고 사가에선 제향하며, 공경하는 모습으로 이른 새벽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평상시와 다르다.
-12~13쪽
4월 15일 승니들이 선찰에서 괘탑(掛塔)하는데 결하(結夏), 결제(結制)라 부른다.
살피건대 여름은 크게 자라는 절기로 밖에 다님에 초목과 벌레 따위를 해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90일간 안거한다. 선원종규(禪苑宗規)에, “축융은 여름철을 맡고 염제는 방(方)을 다스린다. 법왕 금족(禁足)의 때에 해당한다. 이는 석자(釋子)의 탄생을 보호하는 날이다. 7월 15일에 이르면 선사에서 괘탑하던 승니들이 모두 흩어져 나가 결하, 또는 결제라 부른다” 했고, 또 선원의 종규에 “금풍(金風)이 불고 옥로(玉露)가 내리는데, 각황(覺皇) 해제의 때에 해당한다. 이는 법세(法歲) 주원(周圓)의 날이다” 했다. ≪대장경≫에, “4월 15일 나무 아래에 앉아 7월 15일에 이르러 승니가 풀 위에 앉았던 기간을 일세(一歲)라 한다” 했다. 선담어록(禪談語錄)에 이를 법세라 일컫는다.
-88~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