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 근현대소설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어쩔 수 없이 전향한 뒤, 김남천의 행적을 보여 주는 작품들이다. ‘요샌 조선어 소설 원고가 태부족이다’란 말을 들으면서 마음이 불편한 작가의 속내를 볼 수 있다.
1930년대 후반, 1940년대 초반의 우리 소설사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것은 이른바 전향소설이다. 전향에서 오는 자조감을 토로하거나, 지조를 꺾은 자신을 변명하거나, 아니면 다른 전향자를 비난함으로써 자신을 학대하는 인물들의 음울한 웅얼거림으로 가득 차 있는 전향소설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녹성당(綠星堂)>이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지기는 싫고, 그러자니 물속에서 숨은 답답하고, 눈을 감은 채 숨을 꼭 트러막고 있던 어린 날의 작난, ― 그 질식할 뜻한 안타까움”이 요점이다.
이 작품의 내적 형식은 ‘실어(失語)의 형식’이다. 사상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고 그 사상 실천의 전장(戰場)에서 이탈하여 한갓 약장수로 떨어진 자신에 대한 환멸과, 환멸과 더불어 자연히 터져 나오는 자조가 말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그가 들게 된 침묵의 세계는 여러 심리 곡절의 뒤얽힘으로 아수라 고해일 터이다. 작가는 질식할 듯한 잠수의 느낌이란 상징적 이미지로써 그것을 담아냈다.
전향소설 가운데 전향을 사상 선택 및 포기의 차원에서 가장 깊이 다룬 것은 김남천의 <경영(經營)>·<맥(麥)>(1940) 연작이다. 이 연작은 연재 잡지(≪인문평론≫)의 폐간으로 완성되지 못한 장편 ≪낭비(浪費)≫와 삼부작을 이룬다.
<경영>은 등장인물 세 사람의 ‘삶의 경영’을 다룬 작품이다. 하나는 어머니의 경영. 젊어 남편과 사별하고 수절의 20년 세월을 살아온 그녀는 전근대적 윤리인 일부종사(一夫從事)의 윤리에 갇힌 존재였다. 그런 그녀가 그 윤리를 부정하고 자유인으로 신생한다. 연애를 하고 마침내는 재혼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적극적인 여성해방론자였던 진보주의자 김남천은 그녀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드러내 보였다.
또 하나는 오시형의 경영이다. 그는 진보적 사상운동가였으나 대동아공영권의 사악한 바람에 휘말려 일제 침략주의를 따르는 길로 나아간다. 그는 일제 말 지식인의 한 유형을 대표한다. 김남천은 오시형을 통해 대동아공영권에 휩쓸린 사상 전향을 비판했다.
마지막 하나는 최무경의 경영이다. 그녀는 감옥에 갇힌 애인 오시형을 위해 몇 년을 살아왔지만 끝내 배신당해 혼자 남겨지고 말았다. 허탈한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녀는 곧 일어서 새로운 삶의 경영으로 나아간다. “방도, 직업도, 인저 나 자신을 위하여 가저야겠다!”라고 다짐하며 새 삶의 첫걸음을 힘차게 내딛는 것이다.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하고 싶은 존재 전이의 욕망을 뚜렷이 드러낸 캐릭터다.
<등불>은 화자와 작가의 이력이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미루어 이 작품이 쓰인 1942년 무렵의 작가의 내면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으로 보인다. 내면 드러내기라는 내용이 그것에 어울리는 고백체의 형식을 불러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자는 소설가이자 평론가로 5∼6년간 활발한 활동을 했으나 지난 일 년 동안 붓을 놓고 상사(商社)의 직원으로 생활해 오고 있는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다. 혁명적 정치성의 문인의 자리에서 장사꾼의 자리로 추락한 인물인 것인데, 작가 자신이 모델임이 확연하다. 자신의 문학 활동에 대한 회고, 어쩔 수 없는 생활 때문에 붓을 놓은 데서 오는 고독감, 생활신조 등을 담담한 목소리로 고백하고 있다.
김남천 문학의 중심에는 신의의 윤리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신의는 누구나 지켜 마땅한 기본 윤리이면서, 한국 사회의 근본 변혁을 겨누는 혁명적 정치 운동의 한 톱니바퀴였던 카프 조직에 충실해야 한다는 조직원의 윤리였고, 그들을 이끌었던 사상에 순사하고자 하는 이념인의 윤리였다. 그걸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이 <신의에 대하여>(≪조광≫, 1943. 9)다. 작품에서 김남천이 거듭해서 강조하고자 했던 그 신의의 윤리는, 변절과 배신으로 가득 차 있는 한국 근현대사를 돌아보게 한다. 그 속에는 변절과 배신의 더미 위에 서서, 그 같은 변절과 배신의 주체로서 오욕의 삶을 살고 있는(물론 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 자신에 대한 근본 반성으로 이끄는 힘이 깃들어 있다.
200자평
1930년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회원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한 김남천. 일제 강점기 말엽엔 카프 해체, 일제의 강요에 따라 사상을 버리고 전향한다. <녹성당>, <등불> 등 전향한 뒤 행적을 보여 주는 작품 네 편을 묶었다.
지은이
김남천(1911∼1953)은 소설가·평론가·수필가로서, 남과 북에서 많은 글을 남긴 이 땅의 대표적인 문인 중 한 사람이다. 김남천은 카프의 조직원으로서, 문학을 통해 한국 사회의 근본 변혁을 이루고자 했다. 김남천의 삶과 문학의 근저에 놓인 것이 혁명적 정치성인 것은 이와 관련된 것이다.
김남천은, 혁명적 정치성의 이념에 몸을 싣고 한국 사회의 변혁을 향해 내달았던 많은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금기의 대상으로 묶여 있다가 1988년의 해금 조치에 따라 서점에서, 학교의 문학 교실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문인이다.
김남천의 삶과 문학은 한국 근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그것을 넘어 나아가고자 하는 어기찬 열정에 이끌려 펼쳐졌다. 역사의 거친 물결 한복판에 들어 크게 흔들렸지만 김남천은 쓰러지지 않고 고투하여 큰 문학을 일구었다. 90여 편의 평론, 40여 편의 소설, 두 편의 희곡, 한 권으로 묶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필 등이 구축하는 높은 봉우리가 염상섭, 채만식, 이기영, 임화 등 다른 우뚝한 봉우리들과 나란히 20세기 초중반기 문학사의 산줄기에 솟아 있다.
연구자들의 오랜 추적에도 불구하고 김남천의 최후는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이 사실은 상징적이다. 휴전선을 넘어 전해진 ‘소문’에 근거한 몇 가지 설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당대 한국 사회의 주변부였던 평안남도 성천에서 태어나 한국 사회의 전면 해체와 재구성을 꿈꾸었으나 실패하여 캄캄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만 한 진보적 정신의 삶과 문학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김남천은 생전에 장편소설 ≪대하≫(1939)와 ≪사랑의 수족관≫(1940), 창작집 ≪소년행≫(1939)과 ≪삼일운동≫(1947) 그리고 ≪맥≫(1947) 등, 다섯 권의 책을 펴냈다. 생산량에 비해 터무니없다 할 정도로 적은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미완성 작품이 많다는 점이다. 김남천 연보 속에는 ≪낭비≫, ≪1945년 8·15≫, ≪시월≫ 등 미완의 장편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것들을 포함하여 책에 묶이지 않은 작품들을 찾아 정리하는 것은 후인들의 책무일 터이다.
엮은이
정호웅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평론가로 활동해 오고 있으며, 현재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에 ≪우리 소설이 걸어온 길≫, ≪한국현대소설사론≫, ≪임화 – 세계 개진의 열정≫, ≪반영과 지향≫, ≪한국문학의 근본주의적 상상력≫, ≪한국의 역사소설≫ 등이 있다.
차례
녹성당(綠星堂)
경영(經營)
등불
신의(信義)에 대하여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잡지는 순조로히 잘 나오게 됩니까.”
“그저 어떻게 꾸여매듯 하여 간신히 종이를 변통해 대고 있지오. 종이만큼 원고도 귀합니다, 국어 원고에 비해서 조선말 원고가 얻기가 더 힘듭니다, 소설들을 통 안 쓰니까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해 보며, 신 형은 필시 소설 쓰기를 그만둔 나를 비대고 하는 말일 께라고 생각해 보며, 나는 그대로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덤덤히 앉었습니다.
“쓰는 분들은 대체로 어떤 것들을 주제로 삼고들 있는지.”
나는 오랫동안 잡지에 나는 동료들의 작품을 구경하지 못한 때문에 그러한 미안스러운 질문을 하였습니다.
“소극적인 인생 태도를 가지고 오든 분은 역시 애조나 실의(失意)나 소멸의 정조 같은 것을 그전처럼 취급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어느 때까지 쓸 수 있을런지오, 또 시대적인 감각을 가졌다는 분들은 모두 시국 편승이라고 욕먹어 마땅할 천박한 테마로 일시를 호도하는 현상이지오. 가장 딱한 것은 내선일체의 이념을 작품화한다고 곧 내선 인간의 애정 문제나 결혼 문제를 취급하는 태돕니다. 이런 주제는 퍽 흔합니다, 되려 일상생활에서 출발하는 편이 자연스럽고 시국으로 보아도 좋을 것인데. 그러니까 아직 시대와 겨누어서 하나의 확고한 작품 세계를 발견했다고 볼 작가는 없는 셈이지오.”
“시일이 짜른 탓이겠지오.”
나는 형의 설명에 간단히 그렇게만 대답하였으나, 내가 다시 쓴다면 나는 무엇을 쓸 것인가, 그런 것을 내심으로 막연히 생각해 보고 앉었습니다. 내지 사람의 여급이 조선 청년을 따르는 이야기를 나도 쓸 수 있을 것인가 하고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 것을 써서 제법 옳은 작품을 만들 재주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와 내면적 관련이 없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수법을 익힌다고 일량 년간 주장도 하고 쓰기도 해보든 나이였으나 역시 그러한 재료에는 자신이 가들 않었습니다. 형도 아시다싶이 내가 본격적으로 작가 생활을 해본다고 결심하든 당초에 나는 작가 자긔의 주체적 검토라는 과제를 들고 나섰습니다. 그때에도 지금보다 못지않게 나의 내면생활은 커다란 시련 속에 영위되어 하나의 위기를 지나가고 있었는데, 이러한 때 나는 무엇보다도 자긔 자신을 추구하고 자긔 자신을 검토하는 사업이야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