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안서(岸曙) 김억(金億, 1896~?)은 1915년 일본 유학생 잡지인 ≪학지광(學之光)≫에 시를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 창작은 물론 서구 시와 시론을 번역해 문단에 소개함으로써 한국 현대시 형성과 전개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베를렌, 구르몽, 보들레르, 예이츠 등의 시가 수록된 ≪오뇌의 무도≫(1921)는 최초의 번역 시집이며, 그의 첫 시집 ≪해파리의 노래≫는 한국 현대시 최초의 창작 시집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처럼 김억은 현대 문학 초기의 대표적 시인으로서 시뿐만 아니라 시론과 번역을 아우르며 현대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해파리의 노래≫는 시에 대한 인식과 표현 방식에서 전대의 시와 구별된다. 주로 슬픔, 외로움, 그리움, 설움 등 개인의 감상적(感傷的) 정서를 감각적이고 세련된 시어로 표현하는데, 이는 그의 시론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김억에게 시란 인간의 고조된 감정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형식, 그 자체였다. 따라서 ≪해파리의 노래≫엔 시에 대한 김억의 인식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으며 특히, 시의 사회적 이념성이나 사상성, 계몽성은 거의 배제되었다.
≪해파리의 노래≫에서 김억이 표출한 주된 감정은 상실감과 그리움, 설움이다. 상실감과 그리움, 설움은 그 내적 동기가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상실감은 어떤 대상의 부재로부터 연유하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그 무엇을 추억하는 그리움과 발생 원인이 동일하며, 다시 상실감과 그리움은 설움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상실감, 그리움, 설움은 대상의 부재라는 공통분모에 동시에 연루되어 있으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환하는 감정의 원환(圓環)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김억은 시의 음악성을 강조했다. 시란 인간의 고조된 감정의 표출인 동시에 음악적 표현이다. 이른바 시 속엔 자생적으로 리듬이 내재한다. 리듬은 인간의 고조된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알맞게 선택된 시의 음악적 요소다. 달리 말하면 인간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음악적 표현은 감정의 세세한 결만큼이나 다양하다. 따라서 정립되고 고정된 율격은 인간의 세세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적절하지 않다. 시인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율격을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은 시 형식의 자율성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요컨대 음악적 표현을 강조한 김억의 시론엔 이미 ‘자유시’가 내재하며, 이는 한국 현대시의 형성에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다.
김억은 시의 본질을 인간 감정의 표출로 인식했다.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객관적 상관물을 주로 활용했으며 심미적 차원의 형상화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또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적 요소를 중요시했다. 이처럼 개인적 감정의 표출과 자유로운 리듬 의식을 강조한 김억의 시와 시론이 한국 현대시의 초석이 되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200자평
최초로 창작 시집을 출간했고, 최초로 번역 시집을 출간했다. 서구의 시론을 번역, 소개했고 김소월이라는 거목을 길러 냈다. 김억을 빼고는 한국 현대시를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다. 개인의 감정을 자유로운 리듬으로 표현하는 것, 바로 현대시의 기본이다. 현대시 최초의 모습을 ≪초판본 김억 시선≫에서 만나 보자.
지은이
김억(金億, 1896~?)은 1896년 11월 30일 평안북도 곽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희권(金熙權)이고 호는 안서(岸曙)다. 필명으로 ‘안서(岸曙)’, ‘안서생(岸曙生)’, 안서의 머리글자를 딴 ‘A. S.’, 에스페란토 이름인 ‘Verda E. Kim’ 등이 있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문 수업을 받았으며 1907년 정주 오산학교에서 신학문을 수학했다. 오산학교를 졸업한 후, 1913년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문과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1914년 부친의 사망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으며 1916년 모교인 오산학교에 부임했다. 1924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학예부 기자, 문예부장으로 활동했으며 1930년대 ≪매일신보≫ 기자를 거쳐 1930년대 후반부터 해방 직후까지 경성 중앙방송국에 근무했다.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문화위원, 조선문인협회 간사, 조선문인보국회 평의원 등을 지내며 친일 활동을 했다. 해방 후, 출판사인 수선사(首善社)의 주간을 맡았고 1946년부터 한국 전쟁 때까지 육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강의했다. 한국 전쟁 당시 서울에서 납북되어 북한 국영출판사의 교정원으로 배치되었다. 1956년 납북 인사들로 구성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중앙위원으로 임명되었다가 평안북도 철산의 협동농장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그 이후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김억은 1914년 일본 유학생들이 발간한 잡지인 ≪학지광≫에 <이별>을 발표하며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 작품으로 <야반>, <나의 적은 새야>, <내의 가슴>, <밤과 나> 등이 있다. 이후 개인적 감정을 중시하고 감각적인 시어와 개성적 리듬을 강조한 시를 통해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한편, 1916년 9월 ≪학지광≫에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베를렌의 시를 번역한 <내 가슴에 내리는 비>를 발표한 이래, 꾸준히 서구의 시와 시론을 번역·발표했다. 특히, 1918년 9월 창간된 ≪태서문예신보≫에 주로 프랑스 상징주의 시와 시론을 번역해 소개함으로써 한국 현대시에 상징주의 시풍을 정착시켰다. 1920년 ≪폐허≫ 동인으로 활동한 것을 비롯해 ≪개벽≫, ≪동광≫, ≪영대≫, ≪조선문단≫, ≪학생계≫ 등에 참여했다. 1925년 이후, 민요시 운동의 중심에 서서 한국적 정서와 가락을 담은 민요시 창작에 주력했으며 한시 번역에도 힘을 쏟았다.
김억은 한국 현대시 최초의 창작 시집 ≪해파리의 노래≫(1923)를 위시해 ≪봄의 노래≫(1925), ≪금모래≫(1925), ≪안서 시집≫(1929), ≪지새는 밤≫(1930), ≪안서 시초≫(1941), ≪먼동이 틀 제≫(1947), ≪민요 시집≫(1948) 등을 상재했다. 그리고 베를렌, 구르몽, 보들레르, 예이츠 등의 시가 수록된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1921)를 필두로, 타고르의 시를 번역한 ≪기탄자리≫(1923), ≪원정≫(1924), ≪신월≫(1924), 아서 시먼스(Arthur Symons)의 시를 번역한 ≪잃어진 진주≫(1924), 한시를 번역한 ≪망양초≫(1934), ≪동심초≫(1943), ≪꽃다발≫(1944), ≪야광주≫(1944), ≪지나 명시선≫(1944) 등을 남겼다.
엮은이
방인석은 1972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났다. 1998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 입학했다. <조태일 시 연구>로 문학 석사 학위를, <김수영 시의 탈식민성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부터 글쓰기, 논문 작성법 등을 강의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글쓰기와 문학 관련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차례
꿈의 노래
꿈의 노래
읽어진 봄
피리
내 설음
풀밧 우
바다 저便
달과 함끠
배
갈매기
읽어지는 記憶
눈
가을
해파리의 노래
林檎과 복송아
安東縣의 밤
눈
별 나끄기
十一月의 저녁
가을
失題
孤寂
四季의 노래
漂泊
漂泊
스핑쓰의 설음
하픔論
입
아츰잠
붉은 키쓰
歎息
새빨간 피빗의 진달내꼿이 질 때
애닯기도 하여라
火印
달
黃浦의 바다
黃浦의 바다
失題
참살구
思鄕
꼿의 목슴
이슬
鳳仙花
初旬 달
눈물
남기운 香내
가는 봄
椰子의 몸
죽음
언제 오서요
半月島
밤의 大同江 가에서
江가에서
記憶은 죽지도 안는가
내 世上은 물이런가 구름이런가
三月에도 삼질날
記憶
別後
가을
低落된 눈물
설은 喜劇
祈禱
低落된 눈물
悲劇의 序曲
友情
탈춤
黃昏의 薔薇
失題
사랑의 때
때
죽은 記憶
落葉
田園의 黃昏
喪失
봄은 와서
六月의 낫잠
北邦의 小女
北邦의 따님
流浪의 노래
난홈의 노래
亡友
三 年의 녯날
무덤
봄의 仙女
聲樂
나의 理想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꿈의 노래
밝은 해볏은 말나 가는 金잔듸 우의
바람에 불니우는 가마귀의 나래에 빗나며,
뷔인 山에서 부르는 머슴軍의 머슴 노래는
머춤 업시 내리는 落葉의 바람 소리에 석기여,
秋收를 기다리는 넓은 들에도 빗겨 울어라.
只今은 가을, 가을에도 때는 正午,
아아 그대여, 듯기좃차 곱은 나즌 목소리로,
操心스럽게 그대의 ‘꿈의 노래’를 부르라.
●孤寂
바다에는 어름이 덥히고
大地는 눈 속에 잠들어,
가이업는 나의 이 ‘孤寂’은
依支할 곳도 업서지고 말아라.
보라, 西녁 하늘에는
눈섭 갓튼 새빨간 半달이
슬어저 들며, 새깜한 밤이
헤매며 내리지 안는가.
●江가에서
실버드나무 가지에 새눈이 돗아나오며,
해적해적 웃으며 흘으는 江물에 쓰치우는
江 두런에는 새봄의 氣運이 안개갓치 어리울 때,
‘나를 생각하라’고 그대는 소삭이고 갓서라.
넘어가는 새빨간 피빗의 져녁노을이
늣저 가는 小女의 나무 광즈리에서 웃으며,
꿈을 일흔 늙은이의 가슴을 덥허 빗최일 때,
‘나를 생각하라’고 그대는 소삭이고 갓서라.
樂調의 곱은 꿈길이 두 番 보드랍은 바람을 딸아
저멀니, 먼바다를 건너 새 芳香을 놋는 이때,
‘나를 생각하라’신 그대는 찾기좃차 바이업서라.
밤이면 밤마다, 날이면 날마다, 노래 부르며,
물결의 記憶이 흰 모래밧을 숨여드는 이때,
‘나를 생각하라’신 그대는 찾기좃차 바이업서라.
●江가에서
亡友
-S. W 君의 靈에게
그대는 암만해도 올 길 업서라,
그대는 암만해도 돌아가섯다,
그대는 몸이 죽어 올 길 업서라,
그대는 고요하게 돌아가섯다.
그대의 덥게 타든 가슴의 생각,
그대의 희멀금한 病色의 얼골,
只今은 슬어지어 듯기 어렵고,
只今은 깁히 뭇처 볼 길 업서다.
흘여도 다치 안는 두 눈의 눈물,
돌바도 다치 안는 녯날의 생각
그대는 그러나마 잇지 안으매,
그대는 그러나마 알지 못하매.
물갓치 때 바퀴는 흘너가는데,
물갓치 세샹 맘은 니저 가는데,
그대여, 깁흔 잠에 고요하여라,
하늘아, 그의 靈에 은헤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