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1879∼1944)이 1926년에 출간한 시집 ≪님의 침묵(沈黙)≫은 한국 근대시사에 있어서 기념비적 시집의 하나다. 이 시집이 우리 근대시사에서 기념비적 의의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 세 가지 측면에 기인한다.
우선, 시집 ≪님의 침묵≫은 이 땅에서 근대적인 자유시가 창작되기 시작한 이래 형이상학적 사유를 자유시라는 형식 속에 녹여낸 최초의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집은 심오한 불교적 사유에 시적 인식이 닿아 있어, 우리의 근대 자유시에 철학적이며 명상적인 깊이를 불어넣어 주었다. 시인 한용운은 관념적인 철학과 사상을 예술적 형상으로 미학화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사상의 정서화라는 근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시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시집은 핵심적인 시어인 ‘님’의 상징적 의미가 단순히 연인, 조국, 절대자뿐만 아니라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생명의 역동적인 존재 양상들로 확대되면서 밀도 높은 상징성을 갖는 상징 시집의 한 지평을 열어젖혔다. 시인은 소멸과 생성, 부재와 현존, 이별과 만남, 현실과 초월의 변증법적 극복 과정을 시어 ‘님’으로 상징화함으로써, ‘지금 여기’가 아닌 초월적 세계를 향한 절절한 시적 염원을 노래한다. 이를 통해 가시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자의 모습을 시적으로 감지함으로써, 이 시집은 인간의 종교적 심성을 드러내는 상징시의 한 전범을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시집은 서구로부터 상징주의가 이 땅에 유입되어 자유시 창작을 고무한 이래, 상징시편으로 일정한 미학적 완성도를 획득한 최초의 시집이라는 시사적 의의를 갖는다.
마지막으로, 시집 ≪님의 침묵≫에 수록되어 있는 개별 시편들은 상호 유기적 연관성을 보이는 구조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당대 여타의 다른 서정 시집과 구별된다. 이 시집에는 총 88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서시에 해당하는 <님의 침묵>에서 종시에 해당하는 <사랑의 판>에 이르는 전편의 시에 ‘님’과의 이별과 만남이 극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각기 독자적인 의미 영역을 갖는 개별 시편들은 내적으로 상호 연관성을 가지며 시집 전체가 한 편의 사랑의 드라마를 구성해 낸다. 이처럼 우리의 근대시사에서 시집 ≪님의 침묵≫은 연작시 형식을 개별 시편이 내면화해 예술적 형상화에 성공한 최초의 시집이라는 독특한 시사적 의의를 갖는다.
200자평
‘님’이라는 단어에 가장 깊고도 절실한 의미를 부여한 시인 만해 한용운. 이 ‘님’이 사랑하는 사람일지, 국가나 민족, 신념일지, 아니면 신일지, 그 의미는 읽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그의 시편이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처럼 우리 가슴에 와 닿았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시인이자, 승려이자, 독립투사였던 그의 영혼의 노래를 초판본으로 만나 본다.
지은이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은 1879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정옥(貞玉), 속명은 유천(裕天)이며, 법명은 용운(龍雲), 법호는 만해(萬海)다. 고향 홍성에서 성장한 그는 서당에 다니며 한학의 기초적인 교양을 익혔다. 19세에 가출해 시베리아 등을 여행하며 격변하는 국내외 정세를 직접 체험했다. 그 후 27세가 된 1905년에 출가해 정식 승려가 되었다. 출가 후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조선 불교를 근대적인 종교로 거듭나게 하려는 조선불교 근대화 운동과 일제 강점하에서 신음하는 민족의 독립운동에 앞장서는 사회적 실천을 계속했다. 1944년 6월에 자택인 심우장(尋牛莊)에서 66세의 나이로 입적했다.
1926년에는 한국 근대시사에 있어서 기념비적 시집인 ≪님의 침묵≫을 출간했으며, 1935년 이후에는 장편 소설 ≪흑풍≫, ≪후회≫, ≪박명≫ 등을 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주요 저작으로 ≪조선불교유신론≫(1913), ≪불교대전≫(1914), ≪정선강의 채근담≫(1917), ≪십현담주해≫(1926) 등이 있다.
엮은이
이선이(李善伊)는 경희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한국 근대문학을 전공해 1999년에 <만해시의 생명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에 <문학사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1996년에 대한불교 조계종이 주최하는 문학의 해 기념 ‘불교문학 현상 공모’를 통해 평론가로 등단해 창작 및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서서 우는 마음≫(1998), 연구서 ≪만해시의 생명사상 연구≫(2001), ≪근대 한국인의 탄생≫(2011), 평론집 ≪생명과 서정≫(2001), ≪상상의 열림과 떨림≫(2005) 등이 있으며, 만해 한용운 관련 논문으로는 <만해의 불교 근대화 운동과 시집 ≪님의 침묵≫ 창작동기>, <만해문학의 탈식민주의적 인식>, <萬海詩와 當代詩의 영향관계에 대한 일고찰>, <‘문명’과 ‘민족’을 통해 본 만해의 근대이해> 등이 있다.
차례
군말 ······················3
님의 沈黙 ····················4
리별은 美의 創造 ·················6
알ㅅ수 업서요 ··················7
나는 잇고자 ···················8
가지 마서요 ···················10
고적한 밤 ····················12
나의 길 ·····················13
꿈 깨고서 ····················15
藝術家 ·····················16
리별 ······················18
길이 막혀 ····················22
自由貞操 ····················23
하나가 되야 주서요 ················24
나루ㅅ배와 行人 ·················25
차라리 ·····················26
나의 노래 ····················27
당신이 아니더면 ·················29
잠 업는 꿈 ····················30
生命 ······················32
사랑의 測量 ···················33
眞珠 ······················34
슯음의 三昧 ···················35
의심하지 마서요 ·················37
당신은 ·····················39
幸福 ······················40
錯認 ······················41
밤은 고요하고 ··················43
秘密 ······················44
사랑의 存在 ···················45
꿈과 근심 ····················46
葡萄酒 ·····················47
誹謗 ······················48
‘?’ ························49
님의 손ㅅ길 ···················51
海棠花 ·····················53
당신을 보앗슴니다 ················54
비 ·······················56
服從 ······················57
참어 주서요 ···················58
어늬 것이 참이냐 ·················60
情天恨海 ····················62
첫 ‘키쓰’ ·····················64
禪師의 說法 ···················65
그를 보내며 ···················66
金剛山 ·····················67
님의 얼골 ····················69
심은 버들 ····················71
樂園은 가시덤풀에서 ···············72
참말인가요 ···················74
꼿이 먼저 아러 ··················76
讚頌 ······················77
論介의 愛人이 되야서 그의 廟에 ··········78
後悔 ······················82
사랑하는 까닭 ··················83
당신의 편지 ···················84
거짓 리별 ····················86
꿈이라면 ····················88
달을 보며 ····················89
因果律 ·····················90
잠꼬대 ·····················91
桂月香에게 ···················93
滿足 ······················95
反比例 ·····················97
눈물 ······················98
어데라도 ····················100
떠날 때의 님의 얼골 ···············101
最初의 님 ···················102
두견새 ·····················104
나의 꿈 ·····················105
우는 때 ·····················106
타골의 詩(GARDENISTO)를 읽고 ·········107
繡의 秘密 ···················109
사랑의 불 ····················110
‘사랑’을 사랑하야요 ···············112
버리지 아니하면 ·················114
당신 가신 때 ··················116
妖術 ······················117
당신의 마음 ···················119
여름밤이 기러요 ·················120
冥想 ······················121
七夕 ······················122
生의 藝術 ···················125
꼿싸옴 ·····················126
거문고 탈 때 ··················127
오서요 ·····················128
快樂 ······················130
苦待 ······················131
사랑의 끗판 ···················134
讀者에게 ····················135
해설 ······················137
지은이에 대해 ··················145
옮긴이에 대해 ··················146
책속으로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맛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녀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리별은 뜻밧긔 일이 되고 놀난 가슴은 새로은 슯음에 터짐니다.
그러나 리별을 쓸데업는 눈물의 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것잡을 수 업는 슯음의 힘을 옴겨서 새 希望의 정수박이에 드러부엇슴니다.
우리는 맛날 때에 떠날 것을 염녀하는 것과 가티 떠날 대에 다시 맛날 것을 밋슴니다.
아아 님은 갓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얏슴니다.
●당신이 아니더면 포시럽고 맥그럽든 얼골이 웨 주름살이 접혀요.
당신이 긔룹지만 안터면 언제까지라도 나는 늙지 아니할 테여요.
맨 츰에 당신에게 안기든 그때대로 잇슬 테여요.
그러나 늙고 병들고 죽기까지라도 당신 때문이라면 나는 실치 안하여요.
나에게 생명을 주던지 죽엄을 주던지 당신의 뜻대로만 하서요.
나는 곳 당신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