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술이기≫는 위진남북조 남제(南齊) 때의 대표적인 지괴소설(志怪小說)로서, 유송(劉宋)과 남제 때 수학자·천문역법가(天文曆法家)·과학자·문학가로 활약한 조충지(祖沖之, 429∼500)가 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서는 10권이었으나 남송 말에서 원나라 초에 망실된 것으로 보인다. 그 일문(佚文)이 여러 전적에 산재해 총 95조가 남아 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일문을 통해 ≪술이기≫의 전체 면모와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지괴소설은 귀괴류(鬼怪類)·지리박물류(地理博物類)·도교류(道敎類)·불교류(佛敎類)로 나누는데, 이러한 분류는 해당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의 경향성에 따른 것일 뿐이다. 대부분의 지괴소설에는 여러 부류의 고사가 함께 수록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므로, 그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내용성을 기준으로 분류하게 된다. 위의 분류 중에서 조충지의 ≪술이기≫는 귀괴류 지괴소설에 속하는데, 귀괴류 지괴소설은 귀신·요괴·이물·몽환·요징(謠徵)·점복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지괴소설을 말한다. 이는 위진남북조 지괴소설의 본류이자 정통이라 할 수 있다.
조충지 ≪술이기≫의 내용은 크게 다음의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재앙과 상서로움의 징조: 전체 고사 중에서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데, 다른 지괴소설과 비교해 볼 때 비중이 상당히 높다. 여기에는 꿈[<요장>(제26조)], 점복[<무당 진씨>(제22조)], 요언(謠言)[<평석성>(제16조)], 동물들의 말[<주휴지>(제48조)], 자연현상의 변화[<불타는 땅>(제17조)] 등을 통한 암시나 예시가 포함된다. 이는 장시간 천문 관측과 역법 제작에 종사하면서 하늘의 징조와 땅의 응험에 민감했던 조충지의 개인적 관심사가 주로 반영된 것으로 파악된다.
2) 다양한 귀신의 세계: 전체 고사 중에서 약 3분의 1을 차지해 앞의 ‘재앙과 상서로움의 징조’를 묘사한 고사와 함께 ≪술이기≫의 중심 내용이 된다. 여기에는 원한에 복수하는 귀신[<도계지>(제53조)], 은혜를 알고 보답하는 귀신[<흥진>(제79조)], 어수룩해 사람에게 속임을 당하는 귀신[<왕요>(제57조)], 이승의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귀신[<최기>(제82조)], 사당신[<진민>(제80조)] 등 다양한 형상의 귀신 이야기가 포함된다. 이 중에서 사람과 귀신의 사랑을 다룬 이른바 ‘인신연애(人神戀愛)’ 유형의 고사는 지괴소설의 전통적인 제재 가운데 하나로서, 수록된 고사는 많지 않지만 다른 고사에 비해 이야기의 구성이 짜임새 있고 작품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3) 기타: 이 밖에도 ≪술이기≫에는 저승 이야기[<영천 사람 유 아무개>(제56조)], 변괴를 일으키는 요물 이야기[<부양 사람 왕 아무개>(제41조)], 호랑이로 변신한 사람 이야기[<봉소>(제13조)], 여자로 둔갑한 살쾡이 이야기[<동일>(제87조)], 총명한 누렁이 이야기[<황이>(제15조)], 선경(仙境) 이야기[<동망산>(제4조)], 불법(佛法) 이야기[<호비지>(제50조)] 등 전통적인 지괴 고사가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다.
200자평
위진남북조 남제 때의 대표적인 지괴소설로서, 유송과 남제 때 수학자, 천문역법가, 과학자, 문학가로 활약한 조충지가 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귀괴’ 중심의 전통적인 귀괴류 지괴소설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여기에 수록 고사의 참신성과 동시대성, 현실의 삶을 비유적으로 반영한 서사 수법, 간결한 문체, 후대 문학에 미친 영향, 인구에 회자되는 성어의 출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조충지의 <술이기>는 남제뿐만 아니라 남조 전체를 대표하는 지괴소설 가운데 하나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하다.
지은이
조충지는 범양(范陽) 계[지금의 베이징시 서남쪽], 또는 범양 주[지금의 허베이성(河北省) 라이수이현] 사람이다. 유송 문제(文帝) 원가(元嘉) 6년(429)에 태어나 남제(南齊) 동혼후(東昏侯) 영원(永元) 2년(500)에 72세로 죽었다. 증조부 조태지(祖台之)는 동진 때 시중(侍中)을 지냈고, 조부 조창(祖昌)은 유송 때 대장경(大匠卿)으로서 토목공사를 관장했으며, 부친 조삭지(祖朔之)도 봉조청(奉朝請)을 지냈다. 조충지는 유송 때 남서주종사사(南徐州從事史)·공부참군(公府參軍)·누현령(婁縣令)·알자복야(謁者僕射) 등을 역임했고, 남제 때는 장수교위(長水校尉)를 지냈다. 조충지는 어려서부터 전수된 가학(家學)의 과학 지식을 접했으며, 청년 시절에는 화림학성(華林學省)으로 들어가 학술 활동에 종사했다. 그는 산법(算法)과 역법(曆法)에 정통해, 원주율을 소수점 7자리 이하까지 계산해 냈으며 새 역법인 대명력(大明曆)을 제작했다. 또한 지남거(指南車: 나침반 수레), 수대마(물레방아), 천리선(千里船: 쾌속선) 등을 발명하기도 했다. 이렇듯 그는 수학·천문 역법·기계 제작 등 자연과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루었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대부분 그의 문학 방면의 성취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물론 당시의 ‘문학’이란 문장과 학술을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조충지는 문학에도 뛰어나 ≪술이기≫ 외에 여러 문장을 지었으며, 일찍이 ≪주역의(周易義)≫·≪노자의(老子義)≫·≪장자의(莊子義)≫·≪논어석(論語釋)≫·≪효경석(孝經釋)≫ 등의 주석서와 ≪장수교위조충지집(長水校尉祖沖之集)≫ 51권을 지었지만, 아쉽게도 모두 망실되어 남아 있지 않다. 수학 방면에서는 ≪구장산술주(九章算術注)≫와 ≪철술(綴術)≫을 지었다. 그 밖에 음률과 고증 방면에도 조예가 깊었고 바둑에도 뛰어났다. 조충지는 중국 역사상 보기 드문 박학다재한 인물이었다. ≪남제서(南齊書)≫ 권52 <문학전(文學傳)>과 ≪남사(南史)≫ 권72 <문학전>에 그의 전이 있다.
옮긴이
김장환은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世說新語硏究」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魏晉南北朝志人小說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원대학교 중문과 교수, 미국 Harvard-Yenching Institute의 Visiting Scholar(2004~2005), 같은 대학교 Fairbank Center for Chinese Studies의 Visiting Scholar(2011~2012)를 지냈다. 전공분야는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문헌이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중국문학의 벼리』, 『중국문학의 갈래』, 『중국문학의 숨결』, 『中國文言短篇小說選』, 『劉義慶과 世說新語』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中國演劇史』, 『中國類書槪說』, 『中國歷代筆記』, 『세상의 참신한 이야기―世說新語』(전3권), 『世說新語補』(전4권), 『世說新語姓彙韻分』(전3권), 『太平廣記』(전21권), 『太平廣記詳節』(전8권), 『封神演義』(전9권), 『列仙傳』, 『西京雜記』, 『高士傳』, 『笑林』, 『語林』, 『郭子』, 『俗說』, 『談藪』, 『小說』, 『啓顔錄』, 『神仙傳』, 『玉壺氷』, 『列異傳』, 『齊諧記․續齊諧記』, 『宣驗記』, 『唐摭言』(전2권), 『述異記』 등이 있으며,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문헌에 관한 여러 편의 연구논문이 있다.
차례
1. 여산의 강왕곡
2. 여산의 돌다리
3. 여산의 기이한 꽃
4. 동망산
5. 산도
6. 몽구혈
7. 교어
8. 나근생
9. 백도유
10. 역양호
11. 등서의 게
12. 원객
13. 봉소
14. 비견인
15. 황이
16. 평석성
17. 불타는 땅
18. 붉은 비늘 물고기
19. 용산신
20. 진완
21. 남강군의 사당신
22. 무당 진씨
23. 유둔
24. 건라
25. 거인의 나막신
26. 요장
27. 주방
28. 여광
29. 유자욱
30. 장궤
31. 장준
32. 장중화
33. 공정
34. 견법숭
35. 양청
36. 채철
37. 황묘
38. 구경지
39. 왕중덕
40. 유반
41. 부양 사람 왕 아무개
42. 곽중산
43. 석현도
44. 이도예
45. 유계수
46. 등덕명
47. 박소지
48. 주휴지
49. 조종지
50. 호비지
51. 색만흥
52. 곽수지
53. 도계지
54. 황부귀
55. 비경백
56. 영천 사람 유 아무개
57. 왕요
58. 필중보
59. 유원경
60. 유순
61. 무강현의 서씨
62. 유도존
63. 주등지
64. 호자
65. 장을
66. 왕문명
67. 주도진
68. 주태
69. 장백아
70. 독각
71. 윤웅
72. 봉도장
73. 순괴
74. 장윤
75. 칠징
76. 제갈경지
77. 하후조흔
78. 장심
79. 흥진
80. 진민
81. 유막
82. 최기
83. 인계지
84. 왕조종
85. 주의
86. 오감
87. 동일
88. 오고지
89. 마도유
90. 법력
부록
91. 왕자충
92. 축법의
93. 나여의 부인 비씨
94. 완예
95. 조도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왕요(王瑤)는 유송(劉宋) [효무제(孝武帝)] 대명(大明) 3년(459)에 도성에서 병으로 죽었다. 왕요가 죽은 후에 호리호리한 검은 몸에 웃통을 벗고 독비곤(犢鼻褌)을 입은 귀신 하나가 늘 그의 집을 찾아왔는데, 어떤 때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사람의 말을 흉내 내기도 했으며, 늘 오물을 사람의 음식에 던지곤 했다. 또 동쪽 이웃인 유(庾) 아무개의 집에서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왕요의 집에 있을 때와 다름이 없었다. 유 아무개가 귀신에게 말했다.
“흙과 돌을 나에게 던져 봤자 나는 전혀 무섭지 않다. 만약 동전을 나에게 던진다면 그건 정말 소름 끼치는 일이다.”
그러자 귀신은 곧바로 새 동전 수십 개를 던져 유 아무개의 이마를 정통으로 맞혔다. 유 아무개가 다시 말했다.
“새 동전은 날 아프게 할 수 없다. 나는 오직 때 묻은 동전만 무서워한다!”
그래서 귀신은 때 묻은 동전을 그에게 던졌는데, 유 아무개는 이렇게 6∼7번을 계속해 모두 100여 냥을 얻었다.
―<왕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