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9세기의 프랑스 작가인 제라르 드 네르발은 ≪동방 여행기≫라는 책을 남겼다. 이 안에는 <시바의 여왕과 정령들의 왕자 솔로몬 이야기>가 삽화로 들어 있다. 이 작품은 신전 건축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명인(名人) 아도니람 사이의 애증을 그리고 있다. 쉽게 말해 고대 이스라엘이 배경으로 ≪성서≫를 좀 읽어 본 독자라면 익숙한 요소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이야기는 순수한 작가 자신의 창작물이다.
어쩌면 이 작품은 ≪성서≫ 이야기의 되풀이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18세기 유럽의 신비주의와 프리메이슨 사상이 함축되어 있어서, 전통적인 이야기와 시각을 달리하고 있는 부분이 종종 있다. 단적으로, 19세기 낭만주의자들과 보들레르를 비롯한 상징주의 시인들이 선호했던 ‘카인 숭배’ 사상이 그것이다.
제라르 드 네르발은 1841년 정신병 발작을 겪고 요양원에서 퇴원한 후, 1842년 12월부터 만 1년 동안 동방을 여행한다. 이 여행 중 보고 경험한 것들을 1844년 2월부터 ≪라르티스트(L’Artiste)≫지에 발표한다. 이 여행기는 1851년 5월 말 ≪동방 여행기≫(전 2권)라는 표제로 출간된다. 광증의 발작 상태에서도 동방을 꿈꾼 그의 정신적 여정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자평
≪시바의 여왕과 정령들의 왕자 솔로몬 이야기≫은 제라르 드 네르발이 남긴 ≪동방 여행기≫에 들어 있는 삽화다. 신전 건축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명인(名人) 아도니람 사이의 애증을 그린다.
지은이
제라르 드 네르발의 본명은 제라르 라브뤼니다. 1808년 파리에서 태어나, 로망주의가 격동했던 프랑스에서 독특한 문제의식과 서정성 가득한 문체를 완성했다. 19세의 젊은 나이에 괴테의 <파우스트>를 처음으로 프랑스어로 번역 소개하였고, 그 유려한 번역에 괴테가 깊이 감동했음은 유명한 일화이다. 이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은 그는 로망주의의 총아(위고, 고티에, 보렐)들과 교류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군의관인 부친의 희망이었던 의사로서의 길을 포기하여 평생 부친과 갈등을 겪으면서도 다양한 독일 문학작품 번역, 문학잡지 창간, 극작품 창작, 신문 기고 등의 다양한 문학 활동을 했다. 33세인 1841년에 첫 정신병 발작을 겪었고, 10년의 잠복기가 지난 뒤 다시 정신적 위기로 입원과 퇴원이 이어진다. 1842년에 행해진 장기간의 동방 여행과 기회 있을 때마다 끊임없이 떠돌아다녔던 그의 편력은 ≪동방여행기≫와 여러 산문에서 주옥같은 이야기로 나타난다. 1852년 초, 두 번째 정신병 발작 이후, 필생의 작품들을 책으로 엮는 동시에 걸작들을 새롭게 발표하였고, ≪불의 딸들≫에 이르러 그의 문학 절정을 이루었다. 1855년 1월의 새벽에 비에이유-랑테른가에서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되었다. ‘신비주의와 제교 통합주의(諸敎 統合主義 syncretisme)’로 일컬어지는 그의 작품 세계는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로 인해 한동안 편견과 망각 속에 놓여 있다가 20세기 이후 브르통, 프루스트, 아르토에 의해 새롭게 발굴되었다. 오늘날에는 루소, 스탕달, 프루스트와 함께 프랑스 최고의 산문가 중의 한 작가로 손꼽힌다. 주요 작품으로 ≪몬테네그로 사람들≫, ≪라마잔의 밤≫, ≪동방 기행≫, ≪실비≫, ≪오렐리아≫, ≪불의 딸≫, ≪보헤미아의 작은 성들≫, ≪콩트와 해학≫, ≪환상 시편≫ 등이 있다.
옮긴이
이준섭은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한 후 프랑스로 건너갔다. 파리4대학에서 프랑스 낭만주의와 제라르 드 네르발 연구로 문학석사 및 박사학위(1980년)를 취득했다. 1981년부터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7년에 정년퇴임한 뒤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2002년에는 한국불어불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프랑스 문학사(I)≫(세손출판사, 1993), ≪제라르 드 네르발의 삶과 죽음의 강박관념≫(고려대출판부, 1994), ≪프랑스 문학사(II)≫(세손출판사, 2002), ≪고대신화와 프랑스문학≫(고려대출판부, 2004) ≪프랑스 문학과 신비주의 세계≫(고려대출판부, 2005) 등이 있고, 역서로는 ≪불의 딸들≫(아르테, 2007), ≪실비/ 산책과 추억≫(지만지, 2008) 등이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1. 아도니람
2. 발키스
3. 신전
4. 밀로 궁
5. 놋바다
6. 유령의 출현
7. 지하 세계
8. 실로에 빨래터
9. 세 명의 장색
10. 회견
11. 왕의 만찬
12. 막베낙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발키스는 더할 수 없을 만큼 차분했다. 아도니람을 언뜻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정력적이고 위압적이며 오만한 이 사내는 창백해지고 공손해지며 힘이 빠져서 입술에 죽음의 그림자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녀는 의기양양하고 감동과 행복에 젖어 몸을 떨면서, 이 세상이 그녀의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 같았다. 처녀 여왕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오호라! 나 역시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었구나.”
2.
“내 선조들의 성스러운 망령들이여! 오, 두발가인, 나의 아버지! 당신은 나를 속이지 않았군요! 발키스, 빛의 정령, 나의 누이, 나의 신부, 드디어 내가 당신을 찾게 되었군요! 우리가 그 피를 이어받은 불의 정령들의 날개 달린 이 사자(使者)를 통솔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지상에서 오직 당신과 나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