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배움이란 무엇인가?
≪아언각비≫의 머리말에서 정약용은 배움이란 바른말을 통해 잘못된 것을 깨닫고 이를 부끄러워하며 고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평생을 배움의 길에 매진한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다. 그는 서문에서 이 책의 저술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세상의 풍속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말의 실제 뜻이 사라져 잘못된 오류를 답습하고 있는데도 습관에 젖어 그 잘못을 살피지 못한다. 우연히 잘못된 말 하나를 깨닫고 마침내 수많은 의심이 생겨 살펴보니 바른말과 잘못된 말이 실제의 뜻과 반대로 쓰이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아언각비≫ 3권을 짓는다.”
항상 쓰는 말 가운데 잘못을 깨우치다
아언각비(雅言覺非)는 ‘항상 쓰는 말 가운데 잘못을 깨우치다’라는 뜻이다. 제목과 같이 다산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와 문자들 가운데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총 450여 개의 어휘를 자연, 인사, 풍속, 제도, 관직, 동식물, 의식주, 생활 도구, 기물 등 크게 17개 항목으로 분류하고, 중국의 문헌 및 다양한 언어 자료를 고증해 어원을 밝혔다. 총 3권으로, 1권에는 62개, 2권에는 69개, 3권에는 67개로 모두 198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개혁 실패와 남방 오지에서의 생활
18세기 이후 동서양의 각종 서적을 통해 새로운 지식이 널리 퍼졌고, 이러한 신지식을 바탕으로 민중의 삶과 현실 문제를 중시하는 실학이 발전하면서 물명(物名)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아언각비≫도 실학의 발달과 함께 나타난 물명류 저작의 하나다. 우리말의 어원을 한자어에서 찾으려는 노력은 다산뿐 아니라 이수광, 황윤석 등 다른 실학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그 규모나 정치함을 볼 때 ≪아언각비≫가 단연 돋보인다. 한번 자리 잡은 이상 돌이키기 어려운 언어의 특성상, 다산이 의도했던 언어 바로잡기는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아언각비≫는 우리말의 어원 연구는 물론, 조선 후기의 문화와 생활을 파악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00자평
다산 정약용이 사람들이 자주 쓰지만 잘못 쓰고 있는 말과 글을 골라 중국과 우리나라의 문헌 연구를 통해 바른 어원을 밝힌 어원 연구서다. 일상생활에서 잘못 쓰고 있는 200여 항목을 조사, 정리했다. 지명, 나무 이름, 벼슬 이름, 음식 이름 등 다양한 방면의 단어들을 고찰하고 있어 작은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조선 후기 당시 자주 쓰던 말과 그 말의 어원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시 어떻게 잘못 전승되어 왔는지도 알 수 있어 한문학과 국어, 문화사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된다. 옮긴이는 정약용이 참고했던 각종 중국 자료들을 모두 확인하여 각종 오류와 오역을 바로잡았다.
지은이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1762년 6월 16일, 광주(廣州) 초부면(草阜面) 마현리(馬峴里)에서 태어났다. 4세에 글을 배우기 시작해 7세에 오언시를 지었으며 22세에 진사가 되어 태학에 들어간 후 회시에 입격해 처음으로 정조를 알현했다. 28세(1789)에 문과(文科)에 합격해 초계문신(抄啓文臣)이 되고 이후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홍문관 수찬, 동부승지, 병조 참의 등을 지내며 정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1801년 신유사화가 일어나면서 형 정약종은 참수되고 정약전과 정약용은 유배되었다. 이후 18년간 기나긴 유배 생활을 하면서 ≪단궁잠오(檀弓箴誤)≫부터 ≪경세유표(經世遺表)≫까지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1818년 해배된 이후에도 ≪목민심서(牧民心書)≫, ≪국조전례고(國朝典禮考)≫ 등 저술을 쉬지 않았으며 1819년에는 ≪흠흠신서(欽欽新書)≫와 ≪아언각비(雅言覺非)≫를 저술했다. 1822년 회갑을 맞아 지나온 인생과 학문적 업적을 정리해 본인의 묘지명인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을 지었으며 1836년 75세를 일기로 고향 마현리에서 사망했다. 순종 4년(1910)에 규장각 제학(奎章閣 提學)에 추증하고, ‘문도(文度)’라는 시호를 내렸다.
옮긴이
박상수(朴相水)는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사편찬위원회, 온지서당, 중국 어언문화대학교 등에서 한문과 고문서, 초서와 중국어를 공부했고, 단국대학교 한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전문위원, 단국대학교 강사, 한국한문학회 출판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전통문화연구회, 고전번역연구소,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한문 번역과 탈초·강의를 하고 있다.
번역서와 탈초 자료로, ≪고시문집(古詩文集)≫, ≪다천유고(茶泉遺稿)≫, ≪붓 끝에 담긴 향기(香氣)≫, ≪동작금석문집(銅雀金石文集)≫, ≪사상세고(沙上世稿)≫, ≪미국 와이즈만 미술관 한국 문화재 도록≫, ≪초간독(草簡牘)≫, ≪간찰(簡札), 선비의 일상≫, ≪동국명현유묵(東國名賢遺墨)≫, ≪사문수간(師門手簡)≫, ≪항전척독(杭傳尺牘)≫, ≪습재집(習齋集)≫, ≪주자, 스승 이통과 학문을 논하다≫, ≪서포일기(西浦日記)≫, ≪오가보첩(吾家寶帖)≫, ≪퇴계 편지 백 편≫, ≪율곡 친필 격몽요결(擊蒙要訣)≫, ≪구소수간(歐蘇手簡)≫ 등이 있다.
차례
아언각비 1(雅言覺非 一)
소인(小引)
서문
1. 장안(長安)·낙양(洛陽)
2. 경구(京口)
3. 태수(太守)·사군(使君)
4. 쉬(倅)
5. 방백(方伯)
6. 감무(監務)
7. 독우(督郵)
8. 원외랑(員外郞)
9. 금오(金吾)
10. 제학(提學)
11. 사마(司馬)
12. 국자(國子)
13. 장원(狀元)
14. 발개(發解)
15. 빈공(賓貢)
16. 수역(水驛)
17. 행단(杏壇)
18. 동백[山茶]
19. 백나무[柏]
20. 회나무[檜]
21. 삼나무[杉]
22. 박달나무[檀]
23. 계수나무[桂]
24. 갈대[蘆竹]
25. 싸리나무[杻]·가시나무[荊]
26. 가래나무[檟]
27. 여공(藜筇)
28. 두중(杜仲)
29. 해당(海棠)
30. 단풍나무[楓]
31. 느릅나무[楡]
32 사삼(沙蔘)·깽깽이풀[黃連]
33. 후박(厚朴)·모란(牡丹)
34. 박하(薄荷)·패랭이꽃[瞿麥]
35. 기장[稷]
36. 참깨[胡麻]·들깨[靑蘇]
37. 수수[薥黍]
38. 메밀[蕎麥]
39. 모시[枲]
40. 자초(紫草)
41. 차(茶)
42. 율무[薏苡]
43. 면(麪)
44. 장(醬)
45. 두부(豆腐)
46. 젓국[醯]
47. 제(齏)
48. 새앙[薑]·사양[讓]
49. 솔[䪥]·솔[松]
50. 쓴[辛]·쓴[苦]
51. 김(金)·금(金)
52. 한(澣)·완(浣)
53. 환(宦)·환(䆠)
54. 석력(淅瀝)
55. 솔(刷)·차(箚)
56. 아(阿)
57. 일급(一級)
58. 천금(千金)
59. 1관(一貫)
60. 한 발(一庹)
61. 1파(一把)
62. 3촌(三寸)
아언각비 2(雅言覺非 二)
63. 납채(納采)
64. 초례[醮]
65. 형수[嫂]
66. 고모[姑]
67. 빙군(聘君)
68. 처남[娚]
69. 어보(漁父)
70. 화옹(化翁)
71. 친척[戚]
72. 향(鄕)
73. 고을·골[洞]
74. 골짜기[峽]
75. 암(巖)
76. 항(巷)
77. 호(湖)
78. 강(江)·하(河)
79. 한수(漢水)
80. 벼랑[遷]
81. 봉(峯)·빈(濱)
82. 원(原)·옥(屋)
83. 바퀴[輪]·꽃봉오리[葩]
84. 술잔(盞)·삿대[篙]
85. 선(鐥)
86. 장군[缶]
87. 슬(瑟)
88. 기러기발[琴徽]
89. 퉁소[洞簫]
90. 경쇠[磬]
91. 각(角)
92. 고깔[弁]
93. 삿갓[笠]
94. 상관(喪冠)
95. 철릭[帖裏]
96. 아얌[額掩]
97. 휘양[護項]
98. 토시[套袖]
99. 감투[㔶頭]
100. 면포(棉布)
101. 누비[衲衣]
102. 봉액(逢掖)
103. 탑련(搭連)
104. 대패[推鉋]
105. 솥[鼎]
106. 규(圭)·홀(笏)
107. 고삐[轡]
108. 상여 줄[引]
109. 재갈[銜]
110. 짐[任]
111. 유사(遺事)
112. 패자(牌子)
113. 구(句)
114. 고풍(古風)
115. 풍월(風月)
116. 여(儷)·율(律)
117. 시전(詩傳)·서전(書傳)
118. 사기(史記)·통감(通鑑)
119. 반절(反切)
120. 도목(都目)
121. 향소(鄕所)
122. 귀향(歸鄕)
123. 기인(其人)
124. 양반(兩班)
125. 생원(生員)
126. 추고(推考)
127. 욕(辱)
128. 태(笞)·장(杖)
129. 기추(箕帚)
131. 허리띠[帶子]
131. 공연(公然)
아언각비 3(雅言覺非 三)
132. 태묘(太廟)
133. 시동(尸童)
134. 태복(太僕)
135. 선마(洗馬)
136. 좨주(祭酒)
137. 글단(契丹)·묵특(冒頓)
138. 범저(范雎)
139. 조조(鼂錯)
140. 용골대(龍骨大)
141. 부처[佛]·보처(補處)
142. 중[僧]
143. 발[趾]·기둥[棟]
144. 시(媤)·사(査)
145. 녹(簏)·축(軸)
146. 조(糶)·적(糴)
147. 섬(苫)
148. 송순(松笋)
149. 송진(松津)
150. 서통(犀通)
151. 소의 위장[牛胃]
152. 밀자(蜜炙)
153. 아도(阿堵)
154. 권척(拳踢)
155. 견(趼)
156. 변기(拚棄)
157. 재숙(齊宿)
158. 합문(闔門)
159. 효자(孝子)
160. 애자(哀子)
161. 작설(綽楔)
162. 정사(精舍)
163. 헌(軒)·청(廳)
164. 사랑(斜廊)
165. 아(衙)
166. 유(牖)
167. 계(禊)
168. 상사(上巳)
169. 파일(破日)
170. 노을[霞]
171. 탄기(彈棊)
172. 잔탁(盞托)
173. 탕병(湯餅)
174. 약과(藥果)
175. 분견(粉繭)
176. 인단(印團)
177. 수단(水團)
178. 산자(糤子)
179. 조고(棗糕)
180. 각서(角黍)
181. 전과(煎果)
182. 호구(餬口)
183. 면어(鮸魚)
184. 해즉(海鯽)
185. 노(鱸)
186. 긴맛[蟶]
187. 그리마[蜒]
188. 포합(蒲鴿)
189. 수표(水豹)
190. 맥(貊)·예(濊)
191. 화랑(花郞)
192. 수척(水尺)
193. 노비[臧獲]
194. 걸사(乞士)
195. 삼한(三澣)
196. 사(賖)
197. 세(貰)
198. 배교(杯珓)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장안(長安)·낙양(洛陽)
장안과 낙양은 중국에 있는 두 서울의 이름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를 가져다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통칭해 시문이나 편지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쓰고 있다.
대개 옛날 고구려가 처음 평양에 도읍하고 두 성을 두어, 동북쪽에 있는 것을 ‘동황성’, 남서쪽에 있는 것을 ‘장안성’이라고 했다. ‘장안’이라는 거짓된 이름을 쓴 것은 아마 이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낙양이라는 명칭은 더군다나 아무런 근거가 없다. 서울에 도착하는 것을 ‘여락’이라고 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것은 ‘귀락’이라고 하며, ‘낙양의 벗(洛下親朋)’이나 ‘낙양의 학자(洛中學者)’의 경우처럼 모두 습관에 젖어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있다. 일본 사람의 시집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도 이러한 금기를 범하고 있다.
65. 형수[嫂]
형수는 형의 아내다. 우리나라 풍속에 아우의 처는 제수다. 숙(叔)은 남편의 동생이다. 우리 풍속에 남편의 형도 숙씨라고 한다. ‘아주버니’라고 부른다. 매(妹)는 여동생이다. 우리나라 풍속에 손윗누이의 남편을 매부라고 하니 모두 잘못이다.
○ 동생의 아내를 ‘제(娣)’라고 하고 형의 아내를 ‘사(姒)’라고 하는데, 이 또한 동서들끼리 서로 부르는 칭호로, ‘형수’와 ‘아주버니’는 마땅한 말이 아니다.
81. 봉(峯)·빈(濱)
우리나라 풍속에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산을 ‘봉우리[峰]’라고만 하고, 방언에는 ‘부리’라고 한다. 물을 ‘물가[濱]’라고만 하니 방언에는 ‘물가’라고 한다. 어떻게 글을 쓰겠는가? 악(嶽)은 ‘산마루’, 태산이나 화산의 경우다. 강(崗)은 ‘산등성이’, 전(巓)은 ‘산꼭대기’, 수(岫)는 ‘산굴’, 잠(岑)은 산이 작으면서 높은 것이다.
글자마다 각기 다른 뜻을 가지고 있어, 오직 날카로운 봉우리를 가진 산만을 ‘봉’이라고 하는데, 지금 이를 모두 ‘봉우리[峰]’라고 하니 되겠는가? 모든 뜻을 ‘부리’라고 한다. 주(洲)는 물 안에 살 수 있는 땅이다. 저(渚)는 작은 주고 지(沚)는 작은 저다. 허(滸)는 물가[水岸]고 미(湄)는 물과 풀이 만나는 곳이다. 글자마다 각기 뜻이 다른데 지금 모두 ‘물가’라는 뜻이라고만 하니 되겠는가? 모두 ‘물가’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