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아테네 부호 타이먼은 조건 없이 베푸는 미덕을 몸소 실천해 아테네 전 시민으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는다. 하지만 매일같이 성찬을 베푸는 사이 그의 창고는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집사의 충고에도 넉넉히 베푸는 일을 멈추지 않던 타이먼은 결국 파산한다. 그래도 타이먼은 절망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자신에게 신세 진 일을 모른 척하지 않을 거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믿었던 친구들이 어려움에 처한 타이먼을 외면한 것이다. 타이먼은 아테네에 저주를 퍼부으며 숲에서 은둔한다.
같은 시기에 쓰인 비극 <리어 왕>이나 문제극 <자에는 자로>와 같이 사회적 불평등과 법의 편파성을 비판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장르상 비극과 문제극 사이를 오가는 이 작품은 몰락한 주인공 타이먼의 인간혐오증을 극대화해 표현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타인에게 아낌없이 베풀던 박애주의자(philanthropist)에서 세상을 등진 채 마치 광야의 예언자처럼 인류의 타락과 부패를 절규하듯 선언하는 인간혐오자(misanthrope)로 급격히 변모하는 타이먼을 통해 셰익스피어는 배금주의에 의해 공동체적 유대가 내부적으로 파괴되는 사회적 풍경을 비판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이는 비단 상업자본주의가 모든 사회적 관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17세기 초 영국 사회의 풍경일 뿐만 아니라 시대와 역사를 초월한 모든 인간 사회의 병폐임을 생각하면 이 작품의 놀라운 동시대성에 감탄하게 된다.
200자평
1603~1605년 사이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아테네의 타이먼>은 거부 타이먼의 몰락과 그의 은덕을 배신하는 아테네 정치가, 상인, 예술인 등의 이기적 행태를 보여 주며 배금주의와 사리사욕에 사로잡힌 한 공동체의 진상을 고발한다.
지은이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는 르네상스 영국 연극을 대표하는 극작가로서 사극, 희극, 비극, 희비극 등 연극의 모든 장르를 섭렵한 창작 범위와 당대 사회의 각계각층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관객층에 대한 호소력으로 크리스토퍼 말로, 벤 존슨, 존 웹스터 등 동시대의 탁월한 극작가 모두를 뛰어넘는 성취를 이루었다. 특히 유럽 본토에 비해 다소 늦게 시작된 영국 문예 부흥 운동과 종교개혁의 교차적 흐름 속에서 그가 그려 낸 비극적 인물들은 인간 해방이라는 르네상스 인문주의 사상의 가장 심오한 극적 구현으로 간주된다.
옮긴이
강태경은 고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연극학과에서 셰익스피어와 르네상스 연극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연극학회 학술이사, 한국셰익스피어학회 공연이사, 한국영어영문학회 및 현대영미드라마학회 편집이사를 지냈으며, <Enter Above: 셰익스피어 사극에 있어서 시민들의 자리>로 셰익스피어학회 우수논문상(2000년)을, <누가 나비부인을 두려워하랴: 브로드웨이의 ‘엠. 나비’ 수용 연구>로 재남우수논문상(2003년)을 수상한 바 있다. 1998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두 차례에 걸쳐 강의우수교수로 선정되었다. 저서로는 ≪브로드웨이의 유령: 한 연극학자의 뉴욕 방랑기≫, ≪연출적 상상력으로 읽는 <밤으로의 긴 여로>≫, ≪<오이디푸스 왕> 풀어 읽기≫, ≪현대 영어권 극작가 15인≫(공저), ≪셰익스피어/현대영미극의 지평≫(공저), 역서로는 ≪햄릿≫, ≪안티고네≫, ≪리처드 2세≫,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리처드 3세≫ 등이 있다. 드라마투르그 작업으로는 예술의 전당의 <꼽추 리처드>, 국립극단의 <오이디푸스>, 명동예술극장의 <유리동물원> 등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알시바이어데스: ‘여기 비참한 영혼이 남기고 간 비참한 육신이 잠들어 있다. 내 이름을 알려고 하지 마라. 비열한 인간들아, 무서운 역병이 너희를 덮칠 것이다!’ 또 하나 있군. ‘여기 나 타이먼이 잠들다. 내 살아서는 살아 있는 모든 인간을 증오했고 죽어서도 영원한 저주만을 남기노라. 그러니 내 무덤 앞에 그대의 발걸음을 멈추지 말라.’ 타이먼 님,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떤 심정으로 살았는지 잘 알겠습니다. 당신은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혐오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을 경멸하고 또 우리가 흘리는 인색한 눈물을 비웃는군요. 그래서 당신의 무한한 상상력으로 바다를 불러 당신 무덤 위를 날마다 풍성한 눈물로 적시게 하셨군요. 파도가 당신의 죄를 모두 씻어 주길. 여러분, 고귀했던 타이먼 공은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그분에 대한 추도는 이후에 치르도록 합시다. 먼저 입성하여 이 칼 대신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나무 가지를 높이 들겠소. 전쟁이 평화를 낳고 평화가 전쟁을 길들여 서로를 다스리도록 하겠소. 자, 북을 쳐라!
≪아테네의 타이먼≫ 170∼1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