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오자(吳子)≫ 혹은 ≪오자병법≫은 지금으로부터 약 2300여 년 전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오기(吳起)라는 사람이 저술한 병서다. 비록 ≪손자병법≫에 비하면 정교함이 떨어지고 문체(文體)도 거칠지만, 안목(眼目)이 높으며 인간 통찰(洞察)의 측면에서는 손자보다 오히려 뛰어나 일찍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가령 ≪사기(史記)≫ 열전(列傳)에서 “세상에서 군사를 이야기할 때는 모두가 손자 13편과 오기 병법을 꼽는다”고 한 것이나 ≪한비자(韓非子)≫ <오두(五蠹)> 편(篇)에서 “손무와 오기의 병서를 집집마다 가지고 있다”고 한 대목은 오자가 이미 오래전부터 손자와 대등하게 평가받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외에도 병가(兵家)를 논할 때 ‘손·오’를 병칭한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오늘날은 ≪손자병법≫이 세계적으로 병서의 경전처럼 성가(聲價)가 높아진 반면 오자는 그 그늘에 가려 이름조차 생소해질 만큼 빛을 잃어버렸다. 이 책은 이러한 왜곡된 인식을 해소하고 오자의 진면목을 이해하는 데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오자와 손자의 병서를 비교해 보면 양자가 모두 전쟁에서의 승리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은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어떻게 이길 것인가 하는 방법론에서는 양자의 관점이 사뭇 다르다. 가장 대조를 이루는 부분은 손자가 주로 전투 현장에서의 효과적인 용병술을 강조한 데 반해 오자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 태세에 역점을 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양자는 상호 보완적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오자가 손자와 대등한 평가를 받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오랜 기간 숱한 고증과 연구를 거쳐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울료자(尉繚子)≫에 관한 학자들의 견해는 엇갈리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학계에서는 ≪울료자≫가 중국 고대 전국시대 중기인 기원전 4세기경 위(魏)의 울료(尉繚)가 쓴 병서라는 데 보편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러면 울료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여기에 관해서도 ≪사기≫의 짧은 기록 외에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울료자≫를 보면 법령이나 군령의 지엄함과 제도의 완비, 신상필벌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이 자주 등장하는 등 법가(法家)적인 색채가 적지 않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법가에 경도되었다고 하기보다 유가(儒家)와 도가(道家) 심지어 묵가(墨家)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상을 포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200자평
“전사자(戰死者)의 집에는 해마다 사람을 보내 그 부모를 위로하고 상급을 내림으로써 국가가 항상 잊지 않고 있다는 뜻을 표하라” 중국 전국시대에 쓰인 ≪오자≫와 ≪울료자≫는 이처럼 모두 ‘인화(人和)’를 핵심으로 하는 병서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의 연마보다 전쟁에 임하는 인간에 대한 탐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지은이
오기
전국시대 초기를 풍미했던 탁월한 군사전략가다. 본래 위(衛)나라 사람으로 일찍이 학문을 익혔으며 특히 병학(兵學)에 심취했다. 젊은 시절 입신양명의 꿈을 안고 노(魯)나라에 들어가 전전하던 중 재상인 공의휴(公儀休)의 눈에 띄어 변방 군영의 막료로 발탁되었다. 당시 강성한 인접국 제(齊)나라와 맞설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뛰어난 용병술로 연전연승을 거둠에 따라 명성이 높아졌으며, 얼마 후 제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공격해 오자 일약 대장군의 자리에 올라 제의 군대를 격파함으로써 영웅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이를 시샘한 중신들이 온갖 비방과 모략으로 그를 제거하려 했기 때문에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위(魏)나라로 피신했다.
위나라의 현군(賢君)인 문후(文侯)는 한눈에 오기가 비범한 인물임을 간파하고 그를 진(秦)나라와 접경한 요충지 서하(西河) 지역의 태수로 중용했다. 재임 중 오기는 부하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솔선수범을 통해 인화(人和)를 이루는 한편, 철저한 훈련과 신상필벌로 천하무적의 강군을 육성해 어떤 나라도 감히 넘볼 수 없는 국방의 토대를 세웠다. 그러나 문후가 죽고 아들인 무후(武侯)가 왕위에 오르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반대 세력의 모함과 음모가 날로 거세짐에 따라 마침내 20여 년을 헌신했던 위나라에서 탈출했다.
초(楚)나라로 들어간 오기는 도왕(悼王)의 환대를 받으며 상국(相國)에 임명되었다. 그가 서둘러 착수한 작업은 국법을 정비해 흐트러진 국가 기강을 바로잡고 특히 귀족의 전횡을 막는 대개혁(大改革)이었다. 시행 과정에서 귀족들은 거세게 반발했지만 도왕이 오기를 워낙 신뢰하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얼마 후 뜻밖에도 도왕이 갑자기 서거했는데, 후사를 이을 태자는 마침 출정을 나간 터라 도성에는 일시적으로 권력의 공백이 생기고 말았다. 그동안 원한을 품고 있던 귀족들이 이 틈을 타 급습함으로써 오기는 결국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울료
문헌에는 울료의 행적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다. 많은 학자들의 연구를 거쳐 현재 학계에서는 전국시대 중기 위(魏)나라 사람이며, 대량(大梁)으로 천도한 이후 군주인 혜왕(惠王)에게 부국강병책을 진언해 임용된 인물일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 연표(年表)에 따르면 위나라가 대량으로 천도한 것이 BC 340년이므로 울료가 활약한 시기는 그 이후 일정 기간일 것으로 보인다.
옮긴이
1976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전방 부대 소대장으로 부임했다. 1978년 육군사관학교의 교수 요원으로 선발되어 서울대학교 중문과에 3학년으로 학사 편입, 1980년 졸업과 함께 중국어 강사로 모교에 복귀했다. 1984년에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이동양 시론 연구>로 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0년에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8년 대만 국립 사범대학, 2004년 중국 인민대학에서 각각 1년간 연수 과정을 거쳤으며, 육군사관학교 외국어학과 학과장을 역임했고, 현재까지 중국어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술로는 ≪실용중국어≫, ≪군사중국어≫, ≪중국의 군사≫, ≪오자병법≫ 등의 저서가 있고, ≪중국의 고대 군사전략≫, ≪한국전쟁 시 중공군 전술 분석≫, ≪중국의 시각에서 본 이라크 전쟁≫ 등의 역서 및 <완적의 영회시에 나타난 의식세계 소고>, <초성당 전쟁 시에 나타난 주전적 경향의 형성 요인 고찰>, <변새시인 잠삼의 가계에 대한 고찰>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차례
오자
서장(序章): 오기와 문후의 만남
도국(圖國): 부국강병의 길
요적(料敵): 상대를 정확히 파악하라
치병(治兵): 강한 군대를 육성하는 방법
논장(論將): 지휘관의 자질
응변(應變):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라
여사(勵士): 사기는 전투력의 원천
울료자
천관(天官): 전쟁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병담(兵談): 강한 군대를 육성하라
제담(制談): 제도를 잘 정비하라
전위(戰威): 국력의 원천은 국민
공권(攻權): 지휘관의 덕목
수권(守權): 적의 사기를 높여 주지 마라
십이릉(十二陵): 군주가 명심해야 할 열두 가지
무의(武議): 전쟁 수칙
장리(將理): 법 집행을 공명정대하게 하라
원관(原官): 각자의 직분에 충실하게 하라
치본(治本): 정치의 근본
전권(戰權): 항상 기선을 제압하라
중형령(重刑令): 처벌은 무겁게
오제령(伍制令): 매사에 공동 책임을 지게 하라
분새령(分塞令): 책임 지역을 분명하게 부여하라
속오령(束伍令): 부대는 한 몸처럼 움직이게 하라
경졸령(經卒令): 조직적인 부대 관리
늑졸령(勒卒令): 철저한 교육 훈련
장령(將令): 지휘관의 권위
종군령(踵軍令): 병력의 배치와 운용
병교 상(兵敎 上): 교육 훈련 요령
병교 하(兵敎 下): 용병의 원칙
병령 상(兵令 上): 지휘는 일사불란해야 한다
병령 하(兵令 下): 군령은 추상같아야 한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이른바 잘 다듬어진 군대란 평상시에는 상호 간 예절이 깍듯하고, 일단 움직였다 하면 위풍이 당당해 공격에 당할 상대가 없고, 후퇴하더라도 쫓아올 수 없습니다. 전진과 후퇴에 절도가 있고, 좌우 이동이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면, 설령 부대가 단절되더라도 진열(陣列)을 유지하고, 분산되어 있더라도 대오를 갖춥니다. 또한 상하가 동고동락하고, 생사를 함께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군대는 한 덩어리가 되어 흩어지는 일이 없으며, 전투가 벌어지면 지칠 줄을 모르므로 어디에다 투입해도 천하에 당할 자가 없습니다. 이를 일컬어 ‘부자지간(父子之間)과 같은 군대’라고 합니다.
-29~30쪽
승리하는 군대는 마치 물과 같습니다. 물이란 본디 약하기 짝이 없지만 계속 부딪치면 언덕도 무너뜨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 까닭은 물의 성질이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한곳에 끊임없이 부딪치기 때문입니다.
-1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