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동진(東晉)의 곽박(郭璞, 276∼324)은 <주산해경서(注山海經敘)>에서 “성왕은 조화의 이치를 탐구해 변화를 궁극하고, 사물을 형상화해 괴이함에 대응한다(聖王原化以極變, 象物以應怪)”라고 언급해, 일찍이 ‘원화’라는 말을 사용했다. 즉, 성왕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괴이한 변화 현상에 근거해 그 근원을 탐구하고 나아가 그 변화의 규율을 파악해 낸다는 뜻이다. 이는 선진(先秦) 시대 이후로 줄곧 이어져 온 성왕의 “관상설교(觀象設敎 : 자연의 현상을 관찰해 교화를 베푼다)”의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그 후로 당나라에 이르러 이러한 변화의 이치를 탐구하는 일은 성왕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 문인 학사들도 관심을 갖는 대상이 되었는데, 소설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덕종(德宗) 건중(建中) 연간(780∼783)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대부(戴孚)의 ≪광이기(廣異記)≫에 고황(顧況, 727?∼815?)이 서문을 쓰면서 “나는 하늘과 사람의 사이에서 변화의 징조를 살펴보고자 한다(予欲觀天人之際, 變化之兆)”라고 했으며, 또한 건중 2년(781)에 심기제(沈旣濟, 750?∼800?)는 <임씨전(任氏傳)>을 지으면서 그 말미에서 “[정생(鄭生)이] 만약 학문이 깊은 선비였다면 반드시 변화의 이치를 살피고 신과 인간의 사이를 관찰했을 것이다(向使淵識之士, 必能揉變化之理, 察神人之際)”라고 했다. 이들은 하늘과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변화 현상을 이해하고 그 이치를 탐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로써 덕종 시대를 전후로 변화의 이치를 탐구하고자 하는 풍조가 사회에 널리 퍼졌음을 엿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사회적 관심은 과거 시험 문제 출제로까지 이어졌다. 덕종 정원(貞元) 19년(803)에 예부(禮部)에서 실시한 진사(進士) 책문시(策問試) 다섯 문제 중 제4문에서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오행의 빼어남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 변화는 한 기운의 흩어짐을 따르는데, [노나라의] 우애는 짐승이 되었고 [촉나라의] 두우는 새가 되었고 [한나라의] 조왕은 푸른 개가 되었고 하나라의 곤은 누런 곰이 되었고 [은나라 때] 부암의 재상은 별이 되었고 [진(秦)나라 때] 흙다리의 노인은 돌이 되었으니, 변화가 이처럼 복잡한 것은 그 까닭이 무엇인가?(人之生也, 稟五行之秀. 其化也, 順一氣之散, 而牛哀爲獸, 杜宇爲鳥, 趙王爲蒼犬, 夏鮌爲黃熊, 傅巖之相爲星, 圯橋之老爲石, 變化糾紛, 其何故也?)”라고 했다. 이 문제를 출제한 사람은 당시 문단의 영수이자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서 지공거(知貢擧)를 맡았던 권덕여(權德輿, 759∼818)였다. 국가의 엘리트 관료를 선발하는 과거 시험의 마지막 관문인 진사 책문시에서 이러한 문제가 출제되었다는 것은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변화의 이치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았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아래서 황보씨는 변화의 이치를 탐구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모아 찬술하고 서명을 ≪원화기≫라고 했던 것이다.
200자평
위진 남북조 시대의 지괴(志怪) 소설과 당나라 때 유행한 전기(傳奇) 소설을 함께 엮은 문언 소설집이다. “원화(原化)”란 세상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괴이한 변화 현상에 근거해 그 근원을 탐구하고 나아가 그 변화의 규율을 파악해 낸다는 뜻이다. 신비롭고도 놀라운 여러 이야기를 통해 변화의 이치를 생각하게 한다. 원전은 망실되었으나 김장환 교수가 일문을 모으고 교감해 세계 최초로 정본을 확립했다.
지은이
≪원화기(原化記)≫의 찬자 황보씨(皇甫氏)는 만당(晩唐) 초기의 문인으로, 별호 또는 자호는 동정자(洞庭子)다. 본서의 고사 내용 중 가장 늦은 시기는 문종(文宗) 개성(開成) 2년(837)이므로, 황보씨는 837년 이후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그 밖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옮긴이
김장환(金長煥)은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세설신어연구(世說新語硏究)>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위진남북조지인소설연구(魏晉南北朝志人小說硏究)>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원대학교 중문과 교수, 미국 하버드 대학교 옌칭 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 객원교수(2004∼2005), 같은 대학교 페어뱅크 센터(Fairbank Center for Chinese Studies) 객원교수(2011∼2012)를 지냈다. 전공 분야는 중국 문언 소설과 필기 문헌이다.
그동안 쓴 책으로 ≪중국 문학의 흐름≫, ≪중국 문학의 향기≫, ≪중국 문학의 숨결≫, ≪중국 문언 단편 소설선≫, ≪유의경(劉義慶)과 세설신어(世說新語)≫, ≪위진세어 집석 연구(魏晉世語輯釋硏究)≫, ≪동아시아 이야기 보고의 탄생−태평광기≫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중국 연극사≫, ≪중국 유서 개설(中國類書槪說)≫, ≪중국 역대 필기(中國歷代筆記)≫, ≪세상의 참신한 이야기−세설신어≫(전 3권), ≪세설신어보(世說新語補)≫(전 4권), ≪세설신어 성휘운분(世說新語姓彙韻分)≫(전 3권), ≪태평광기(太平廣記)≫(전 21권),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전 8권), ≪봉신연의(封神演義)≫(전 9권), ≪당척언(唐摭言)≫(전 2권), ≪열선전(列仙傳)≫, ≪서경잡기(西京雜記)≫, ≪고사전(高士傳)≫, ≪어림(語林)≫, ≪곽자(郭子)≫, ≪속설(俗說)≫, ≪담수(談藪)≫, ≪소설(小說)≫, ≪계안록(啓顔錄)≫, ≪신선전(神仙傳)≫, ≪옥호빙(玉壺氷)≫, ≪열이전(列異傳)≫, ≪제해기(齊諧記)·속제해기(續齊諧記)≫, ≪선험기(宣驗記)≫, ≪술이기(述異記)≫, ≪소림(笑林)·투기(妬記)≫, ≪고금주(古今注)≫, ≪중화고금주(中華古今注)≫, ≪원혼지(寃魂志)≫, ≪이원(異苑)≫ 등이 있으며, 중국 문언 소설과 필기 문헌에 관한 여러 편의 연구 논문이 있다.
차례
1. 풍준
2. 약초꾼
3. 이 위공
4. 배씨 아들
5. 백엽선인
6. 탁발대랑
7. 최희진
8. 이 산인
9. 설 존사
10. 유무명
11. 하지장
12. 소영사
13. 하풍
14. 왕경
15. 정책
16. 장 산인
17. 육생
18. 반 노인
19. 호로생
20. 오감
21. 화엄 화상
22. 상위의 승려
23. 최 현위의 아들
24. 왕수
25. 새끼줄 기예인
26. 수레 안의 여자
27. 최신사
28. 의협
29. 이 노인
30. 어부
31. 주한
32. 서시 사람
33. 장중은
34. 장생
35. 초주 사람
36. 비파 그림
37. 방집
38. 위방
39. 유씨 아들의 처
40. 화정의 언전
41. 뱃사공
42. 떡 파는 호인
43. 위생
44. 낙양의 선비
45. 위씨
46. 얼룩 돌
47. 장 노인
48. 관리 선발 응시생
49. 이씨의 하인
50. 조정 관리의 자제
51. 남양의 선비
52. 장준
53. 심양의 사냥꾼
54. 유병
55. 광록시의 백정
56. 대문
57. 한희
58. 강동 과객의 말
59. 장화
60. 숭산의 객
61. 위 중승의 누나
62. 상위의 빈민
63. 거미의 원한
64. 잠녀
65. 도성의 유생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당나라 건중(建中) 연간(780∼783) 말에 서생 하풍(何諷)은 누런 종이의 고서 한 권을 사서 읽은 적이 있었다. 책 속에서 동그랗게 말린 머리카락이 나왔는데, 직경이 4촌쯤 되었으며 고리처럼 끊어진 곳이 없었다. 하풍이 그것을 끊었더니 잘라진 곳 양쪽 끝에서 1되 남짓한 물방울이 나왔는데, 그것을 태웠더니 머리카락 냄새가 났다. 하풍이 그러한 사실을 도인에게 말했더니 도인이 말했다.
“아! 당신은 본디 속골(俗骨)이어서 이것을 만났어도 우화등선할 수 없으니 운명이오. 선경(仙經)에 따르면, ‘좀이 [책 속에 있는] 신선이란 글자를 세 번 파먹으면 그것으로 변화하는데 이를 맥망(脈望)이라 한다’고 했소. 밤에 둥근 그것을 가지고 하늘의 별을 비춰 보면 별이 곧장 강림하고 환단(還丹)을 얻을 수 있는데, 그 물로 환단을 개어서 복용하면 즉시 환골탈태(換骨脫胎)해 하늘로 오를 수 있소.”
그래서 하풍이 고서를 검사해 보았더니 여러 곳에 좀먹은 구멍이 있었는데, 뜻을 찾으며 읽었더니 모두 신선이란 글자였다. 하풍은 비로소 탄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