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3막으로 된 이 작품은 인형을 만드는 아틀리에에서 하루 반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다. 다양한 유형의 인간을 정교하게 닮은 수제 인형을 만드는 아버지 다니엘은 인형 제작 분야의 유명한 장인(마에스트로)이다. 미국 인형 예술가 협회 회원으로 추대되고, 마이애미 시에 있는 박물관에 초청되어 살아 있는 예술가로서는 대단한 명예인 인형 작품 회고전 계획을 언론에 밝히게 되는 기자회견을 앞둔 하루 전날, 펠로피아라는 이름을 가진 어느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온다. 그 여인은 오래전에 사라진 이 집의 막내딸 에스텔이지만, 아버지는 그동안 세월도 흘러 여인으로 성장했고 성형까지 한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폐쇄적인 자기 세계에 갇혀 사는 집착이 강하고 이기적인 예술가 타입의 아버지. 남편이 저지른 짓을 알면서도 오로지 돈과 명예와 자신의 평안을 위해 모든 사실을 덮는 데에만 열중하는 어머니. 집안의 하녀처럼 일하며 부모의 애정을 갈구하는 큰딸,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할 부모에게 배신당하고 버려진 작은딸. 이 작품은 가정이라는 한 공간에 있지만 폐쇄적인 각자의 방에 갇혀, 사랑의 부재, 소통 부재의 핵심에 있는, 인형의 집에 사는 불행한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그동안 터부시되어 쉬쉬해 왔던 가정 내 성 폭력, 특히 아동 성폭력 문제를 고발할 뿐 아니라,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그저 덮고 침묵하려고만 할 때 더 큰 문제와 상처를 만들게 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 작품은 2007년 캐나다 퀘벡에 있는 테아트르 도주르디 극장에서 마리 테레즈 폴탱의 연출로 초연된 이후 캐나다,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 공연되고 있고, 한국에서도 2011년 2월 23일부터 3월 13일까지 산울림 소극장에서 극단 프랑코포니가 공연한다.
200자평
가장 신뢰하고 의지해야 할 부모에게 배신당하고 버려졌을 때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동안 금기시해 온 가정 내 성폭력, 이제는 덮고 쉬쉬할 것이 아니라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해야 할 때다. 퀘백의 인기 작가 미셸 마르크 부샤르의 문제작 ≪유리알 눈≫이 국내 최초로 연극과 동시에 소개된다.
지은이
미셸 마르크 부샤르는 캐나다의 불어권 지역인 퀘벡 출신의 극작가, 시나리오 작가다. 1958년 퀘벡 주 북쪽 도시 생ᐨ퀘르 드 마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 서클에서 활동하며 자신이 쓴 희곡을 무대화하기 시작했다. 오타와 대학 연극과를 졸업(1980)한 이후인 80년대 초부터는 온타리오에 있는 불어권 극단을 중심으로 극작가 겸 배우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대표작으로 <물 나르는 사람들(Les porteurs d’eau)>, <환경론자 크리시프 탕게의 반본성(La contre-nature de Chrysippe Tanguay, écologiste)>, <펠로피아의 인형(La poupée de Pélopia)>, <고아 뮤즈들(Les Muses Orphelines)>, <레 펠뤼에트 또는 낭만적인 드라마의 반복(Les feluettes ou La répétition d’un drame romantique)> 등이 있다.
특히 <레 펠뤼에트 또는 낭만적인 드라마의 반복>은 첫 공연 이후 몬트리올 신문사 문학상, 우타우에 문학 서클 특별상(1988)과 도라 무어 상 (1991), 샬머 상(1991)을 받았으며, 연출가 세르주 드농쿠르가 새 버전으로 올린 2003년 공연에서도 퀘벡 연극 아카데미에서 주는 관객 마스크 상과 최고 마스크 상, 몬트리올 최고 제작상, 세 배우의 연기상을 휩쓸었다. 이 작품은 다시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고 존 그레이선 감독이 <릴리즈(Lilies)>라는 영어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어 흥행에도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영화제에서 많은 수상을 했으며 아동극인 <거위 이야기(L’Histoire de l’oie)>도 15년 이상 세계 다섯 대륙을 돌면서 수많은 상을 받았다.
희곡과 시나리오 작업 외에도, 작가는 오타와 트릴리움 극장 예술감독(1989∼1991)을 지낸 바 있으며, 오타와 대학과 몬트리올 대학에서 연극을 강의하기도 했다(1992). 또한 여러 박물관 및 전시회의 예술 감독을 맡아 연출하기도 했다.
50대 초반인 그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이며 현재 퀘벡 극작가협회 부회장이다. 2005년에는 캐나다 정부에서 주는 중요한 훈장(Officier de l’Ordre du Canada)을 받았다.
그는 2009년 6월, 프랑스문화예술학회가 주관했던 공동 국제학술대회에 초청되어 내한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2009년 ‘극단 프랑코포니’가 그의 희곡<고아 뮤즈들>을 우석 레퍼토리극장에서 초연했고, 2010년 게릴라극장에서 새로운 버전으로 재공연했다. 2011년 2월 23일부터 3월 13일까지 <유리알 눈>이 산울림소극장에서 역시 ‘극단 프랑코포니’에 의해 초연되었다.
옮긴이
임혜경은 숙명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프랑스 몽펠리에 제3대학, 폴 발레리 문과대학에서 로트레아몽 작품 연구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숙명여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및 문과대 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2009년에 창단한 ‘극단 프랑코포니’ 대표이며, 프랑스문화예술학회 회장,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공이모) 대표, <공연과 이론> 편집주간, 희곡낭독공연회 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공이모와 연극평론가협회 회원으로 연극평론 활동도 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공역자인 카티 라팽(한국외대 불어과 교수)과 함께 우리나라 문학을 프랑스어권에 소개하는 번역 작업을 시작해 대한민국문학상 번역신인상, 한국문학번역상을 카티 라팽과 공동 수상한 바 있다. 윤흥길의 장편소설 ≪에미≫를 프랑스 필리프 피키에 출판사에서, 윤흥길의 중단편 선집인 ≪장마≫를 프랑스 오트르 탕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카티 라팽과 공동으로 한국 희곡을 불역해 최인훈의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윤대성의 <신화 1900>, 이현화의 <불가불가>를 파리, 밀리외 뒤 주르 출판사에서 1990년대 초반에 출간했다. ≪한국 현대 희곡선집≫(박조열의 <오장군의 발톱>, 오태석의 <자전거>, 이강백의 <봄날>, <호모 세파라투스>, 김의경의 <길 떠나는 가족>, 이만희의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김광림의 <사랑을 찾아서> 수록)은 1990년대 후반에 파리 라르마탕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이윤택의 ≪문제적 인간, 연산≫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32개국 ‘희곡 강독회’ 참가작이며, 프랑스 브장송, 레 솔리테르 젱탕페스티프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이윤택 희곡집≫(<오구>, <불의 가면>, <바보 각시> 수록)은 파리, 크리크 라신 출판사에서, ≪한국 현대 희곡선≫(차범석 <산불>, 최인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이근삼 <30일간의 야유회> 수록)은 파리 이마고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한국연극의 어제와 오늘≫(편역)이라는 한국 연극 전문 연구서를 파리 라망디에 출판사에서 2007년에 출간한 바 있다. 2010년에는 이현화의 희곡집 ≪누구세요?≫(<누구세요?>, <카덴자>, <산씻김>, <0.917>, <불가불가> 수록)가 파리의 이마고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그 외에도 국립극장의 튀니지 공연 대본인 김명곤의 희곡 <우루 왕>을 불역한 바 있으며, 유민영의 연극 논문 <해방 50년 한국 희곡>을 불역해 서울, 유네스코 잡지 ≪르뷔 드 코레(Revue de Corée)≫에 게재한 바 있다.
2004년 이후부터는 희곡 낭독 공연에 참가한 동시대 불어권 희곡을 우리말로 번역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장뤼크 라가르스의 ≪난 집에 있었지 그리고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상대방의 자리≫(연극과 인간, 2007), 캐나다 퀘벡 작가 미셸 마르크 부샤르의 ≪고아 뮤즈들≫(지식을만드는지식, 2009)과 ≪유리알 눈≫(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프랑스 극작가 장 미셸 리브의 ≪동물 없는 연극≫(지식을만드는지식, 2011)을 출간했고, 스웨덴 작가인 라르스 노렌의 <악마들>, 아프리카 콩고 작가 소니 라부 탄지의 <파리 떼 거리> 등을 번역했다. 그 외에 카티 라팽의 시집 ≪그건 바람이 아니지≫(봅데강)를 번역한 바 있으며, 다수의 논문 및 공연 리뷰를 썼다.
차례
<유리알 눈>의 2011년 서울 공연을 축하하며
나오는 사람들
1부
2부
3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난 내 눈이 변하고, 홍채가 딱딱해지는 걸 봤어. 내 눈빛이 꺼져 가는 걸 봤어. 그건 인형의 눈, 유리알 눈이었어. 난 내 얼굴에 남아 있는 가족의 흔적을 메스로 도려내 내 얼굴에서 당신들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했어. 하물며 당신들이 결혼 30주년을 행복하게 축하하려고 준비 중이고, 브리지트 언니는 성숙한 여자가 되었을 거라고 상상하기도 했어. 여기를 다신 오지 않으려고 온갖 일들을 상상해 보려고 애썼지. 하지만 엄마, 난 바로 이곳에서 내 상상력을 잃어버렸어. (엄마 귀에다 속삭이면서) 아니, 엄만 모든 걸 깨끗하게 치우지 못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