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조야에서 보고 들은 것을 모두 기록했다
≪조야첨재≫는 당나라의 문인 장작(張鷟)이 지은 역사쇄문류 필기문헌이다. 총 6권에 371조의 고사가 수록되어 있다.
≪조야첨재≫에 수록된 고사의 시대 범위는 대부분 수나라 말부터 당나라 현종 개원 연간 초기까지이며, 남북조 시대의 고사가 일부 들어 있다. 그중에서 측천무후 집정시기(690∼705)의 고사가 150조 가까이 되어 전체 고사의 약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고사의 내용은 ‘조야에서 보고 들은 것을 모두 기록했다’는 서명처럼 상당히 광범위한데, 이를 크게 조정의 고사와 재야의 고사로 개괄해 볼 수 있다.
먼저 조정의 고사는 정치에 대한 풍간(諷諫)이 주를 이룬다. 특히 측천무후 집정 시기를 중심으로 당시 정치의 암흑상과 부패상, 간신배와 아첨배의 음험한 모략과 전횡, 혹리들의 잔인하고 가혹한 형벌, 전체 관료 집단의 나약함과 무능함, 관리 선발의 난맥상, 잔혹한 권력 투쟁 등에 대해 풍자하고 비판했다. 반면에 근검을 실천하고 선정을 베푼 청렴한 관리들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작은 인물을 품평하길 좋아하고 시정을 규탄하길 즐겨 당시 사인들에게 경박하다고 미움을 받았는데, 그의 평소 생각과 성격이 이러한 고사들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현실 정치에 대한 그의 이러한 비판 정신은 매우 귀중한 시대적 의미를 지닌다.
다음으로 재야의 고사는 굉장히 다양하다. 여러 계층의 인물의 특이한 언행과 일화, 부인들의 투기, 환술·인요(人妖)·귀신·요괴·정령·재생(再生)·무덤·명기(銘記) 등에 관한 괴이한 고사, 불교와 도교에 관한 고사, 방사와 무당에 관한 고사, 참어(讖語)·징조·점복·해몽에 관한 고사, 민간 풍속과 전설, 민간 가요, 여러 지방의 특이한 풍물, 천문과 의약 등 실로 광범위하다. 이 같은 특징은 당시 사회 전반의 다양한 특성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조야첨재≫의 문헌적 가치
이 책의 문헌적 가치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후대 사서 편찬에 사료를 제공하거나 정사에 기술되어 있지 않은 사료적 가치가 높은 자료들이 들어 있다. 고종·측천무후·중종·예종·현종 때의 고사가 270여 조에 달해 전체 고사의 절반이 훨씬 넘는데, 이는 당시 사람이 당시의 일을 기록한 것이므로 그만큼 고사의 사실성과 신빙성이 높다. 그래서 오대에 ≪구당서≫를 편찬하고 송대에 ≪신당서≫를 편찬할 때, ≪조야첨재≫의 고사 중에서 각각 30여 조와 50여 조를 사료로 활용했다. 고종 때의 고구려 정벌, 측천무후 때 거란·돌궐과의 전쟁, 재상 배염(裴炎)의 피살, 중종과 예종 때 발생한 궁중 정변 등 다양한 사건들을 엿볼 수 있다.
둘째, ≪조야첨재≫는 그 자체로 당대 역사쇄문류 필기문헌의 대표작으로서 후대 소설과 희곡 창작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청대 포송령(蒲松齡)의 ≪요재지이(聊齋志異)≫, 명대 풍몽룡(馮夢龍)의 ≪유세명언(喩世明言)≫, 풍몽룡의 ≪경세통언(警世通言)≫ 등에 원형 고사로 인용된 이야기들을 살펴볼 수 있다.
셋째, 생동감 넘치는 구어를 활용해 언어 운용 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특징을 보이며, 당나라 때 새롭게 등장한 어휘 자료가 많이 들어 있어서, 중고시기 한어(漢語)를 연구하는 데 참고 가치가 높다. 이 책에 보이는 새로운 어휘는 대부분 인물에 대한 품평어인데, 단전사(端箭師 : 애꾸눈)와 합초한(呷醋漢 : 먼 곳을 바라보는 남자)[<장원일>(4-5)], 고수필(高手筆 : 글을 너무 늦게 짓는 사람)과 안공자(按孔子 : 글씨를 자주 지우는 사람)[<진희민>(6-4)], 걸조대(乞措大 : 관직을 구걸하는 서생)[<성도의 거지>(보-58)], 청전학사(靑錢學士 : 시험을 볼 때마다 붙는 사람)와 백랍명경(白蠟明經 : 시험에 자주 떨어지는 사람)[<백랍명경>(보-72)], 오금(烏金 : 돼지의 별칭)[<오금>(보-73)] 등이 그 예다.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조야첨재≫에 대한 번역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은 초역이자 완역으로서도 의미를 지닌다.
200자평
∙ 이 책은 ≪보안당비급(寶顔堂秘笈)≫본 ≪조야첨재≫를 저본으로 하고, ≪태평광기(太平廣記)≫와 ≪사고전서(四庫全書)≫본·≪총서집성초편(叢書集成初編)≫본·≪설부(說郛)≫(함분루본)본·≪역대소사(歷代小史)≫본 ≪조야첨재≫를 가지고 교감했으며, 베이징중화수쥐(北京中華書局) 점교본(點校本)(1979)을 참고했습니다. 아울러 교감이 필요한 원문에 한해 해당 부분에 교감문을 붙였습니다.
∙ <보집(補輯)>에는 ≪조야첨재≫의 일문(佚文) 115조를 수록했으며, <부록>에는 ≪구당서≫·≪신당서≫와 막휴부(莫休符)의 ≪계림풍토기(桂林風土記)≫에 실려 있는 <장작전(張鷟傳)>과, 역대 사지(史志)와 목록학 저작에서 ≪조야첨재≫에 대한 저록(著錄)을 첨부해 참고하도록 했습니다.
∙ 이 책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었습니다.
∙ 이 책은 2권으로 나누어 출간합니다. 1권에는 ≪조야첨재≫ 권1~권4를 수록했고, 2권에는 ≪조야첨재≫ 권5~권6, 보집 등을 수록했습니다.
지은이
≪조야첨재(朝野僉載)≫의 찬자 장작(張鷟, 650?∼722?)은 당나라의 문인으로, 자는 문성(文成)이고 호는 부휴자(浮休子)이며 심주(深州) 육택[陸澤 : 지금의 허베이성 선현(深縣) 북쪽] 사람이다. 고종(高宗)·측천무후(則天武后)·중종(中宗)·예종(睿宗)과 현종(玄宗) 초기에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출중했다. 고종 조로(調露) 연간(679∼680)에 진사에 급제했는데, 당시 저명한 문인이자 주고관(主考官)이었던 고공원외랑(考功員外郞) 건미도(騫味道)로부터 “천하무쌍(天下無雙)”이라는 칭찬을 받고, 기왕부(岐王府)의 참군(參軍)에 제수되었다. 또한 황제가 주관한 여덟 번의 제거(制擧)와 이부에서 치른 네 번의 관리 선발 시험에서 모두 1등을 차지해, 장안현위(長安縣尉)에 제수되었다가 홍려승(鴻臚丞)으로 승진했다. 그래서 당시 저명한 문인이었던 수부원외랑(水部員外郞) 원반천(員半千)이 그를 “청전학사(靑錢學士)”라고 칭찬했는데, 이는 나중에 재학(才學)이 뛰어나 시험을 볼 때마다 합격하는 사람을 뜻하는 성어가 되었다. 측천무후 증성년(證聖年 : 695)에 감찰어사(監察御史)로 기용되었다. 그는 성격이 편협하고 조급했으며 선비로서 품행을 지키지 못해, 당시 재상이었던 요숭(姚崇)에게 미움을 받았다. 결국 장안(長安) 연간(701∼704) 초에 처주사창(處州司倉)과 유주사호(柳州司戶)로 폄적되었다가 나중에 덕주(德州) 평창현령(平昌縣令)으로 전임되었다. 현종 개원(開元) 2년(714)에 시정(時政)을 비방하는 말을 많이 했다고 탄핵당해 영남(嶺南)으로 폄적되었으며, 몇 년 후에 다시 조정으로 돌아와 사문원외랑(司門員外郞)을 지내다가 73세에 죽었다.
그는 화려한 변려문(騈儷文)에 뛰어나 그의 문장이 당시에 크게 유행했으며, 신라와 일본의 사신들이 값을 아끼지 않고 그의 문장을 사 갈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전해지는 저작으로는 ≪조야첨재≫ 외에 당나라의 판례를 모아 놓은 ≪용근봉수판(龍筋鳳髓判)≫과 전기소설(傳奇小說)로 유명한 ≪유선굴(遊仙窟)≫ 등이 있다. 그의 전(傳)은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의 <장천전(張薦傳)>에 실려 있다.
옮긴이
김장환(金長煥)은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세설신어연구(世說新語硏究)>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위진남북조지인소설연구(魏晉南北朝志人小說硏究)>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원대학교 중문과 교수, 미국 하버드 대학교 옌칭 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 객원교수(2004∼2005), 같은 대학교 페어뱅크 센터(Fairbank Center for Chinese Studies) 객원교수(2011∼2012)를 지냈다. 전공 분야는 중국 문언 소설과 필기 문헌이다.
그동안 쓴 책으로 ≪중국 문학의 흐름≫, ≪중국 문학의 향기≫, ≪중국 문학의 향연≫, ≪중국 문언 단편 소설선≫, ≪유의경(劉義慶)과 세설신어(世說新語)≫, ≪위진세어 집석 연구(魏晉世語輯釋硏究)≫, ≪동아시아 이야기 보고의 탄생−태평광기≫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중국 연극사≫, ≪중국 유서 개설(中國類書槪說)≫, ≪중국 역대 필기(中國歷代筆記)≫, ≪세상의 참신한 이야기−세설신어≫(전 3권), ≪세설신어보(世說新語補)≫(전 4권), ≪세설신어 성휘운분(世說新語姓彙韻分)≫(전 3권), ≪태평광기(太平廣記)≫(전 21권),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전 8권), ≪봉신연의(封神演義)≫(전 9권), ≪당척언(唐摭言)≫(전 2권), ≪열선전(列仙傳)≫, ≪서경잡기(西京雜記)≫, ≪고사전(高士傳)≫, ≪어림(語林)≫, ≪곽자(郭子)≫, ≪속설(俗說)≫, ≪담수(談藪)≫, ≪소설(小說)≫, ≪계안록(啓顔錄)≫, ≪신선전(神仙傳)≫, ≪옥호빙(玉壺氷)≫, ≪열이전(列異傳)≫, ≪제해기(齊諧記)·속제해기(續齊諧記)≫, ≪선험기(宣驗記)≫, ≪술이기(述異記)≫, ≪소림(笑林)·투기(妬記)≫, ≪고금주(古今注)≫, ≪중화고금주(中華古今注)≫, ≪원혼지(寃魂志)≫, ≪이원(異苑)≫, ≪원화기(原化記)≫, ≪위진세어(魏晉世語)≫ 등이 있으며, 중국 문언 소설과 필기 문헌에 관한 여러 편의 연구 논문이 있다.
차례
권5
5-1(253) 왕경
5-2(254) 이걸
5-3(255) 배자운
5-4(256) 위창
5-5(257) 장초금
5-6(258) 동행성
5-7(259) 장작
5-8(260) 장송수
5-9(261) 원가
5-10(262) 모준의 아들
5-11(263) 누사덕
5-12(264) 이적
5-13(265) 이일지
5-14(266) 주전의
5-15(267) 나흑흑
5-16(268) 왕기
5-17(269) 혜범
5-18(270) 사숭현
5-19(271) 영남의 부정한 제사
5-20(272) 하현경
5-21(273) 영주의 부인
5-22(274) 설회의
5-23(275) 호승 보엄
5-24(276) 호초승
5-25(277) 고양이와 앵무새를 길들이다
5-26(278) 낙빈왕
5-27(279) 풍칠이
5-28(280) 고유지
5-29(281) 풍도의 무덤
5-30(282) 번흠분
5-31(283) 과보산
5-32(284) 달리는 바위
5-33(285) 석교
5-34(286) 날아간 비탈
5-35(287) 추낙타
5-36(288) 낙하 사람
5-37(289) 수 문제의 사자총
5-38(290) 장눌지
5-39(291) 송찰
5-40(292) 뱀 언덕
5-41(293) 원수 갚는 뱀
5-42(294) 녹색 뱀
5-43(295) 독사
5-44(296) 종서래사
5-45(297) 수제가
5-46(298) 마령산
5-47(299) 필건태
5-48(300) 보관사
5-49(301) 낙안전
5-50(302) 화용현 농장의 코끼리
5-51(303) 정음
5-52(304) 설직
5-53(305) 조이온
5-54(306) 장급
5-55(307) 길욱
5-56(308) 종초객
5-57(309) 최융
5-58(310) 최식
5-59(311) 장열
5-60(312) 정백헌
5-61(313) 왕경융
권6
6-1(314) 한조종
6-2(315) 신정
6-3(316) 공여선사
6-4(317) 진희민
6-5(318) 이응도
6-6(319) 요군경
6-7(320) 소영사
6-8(321) 고최외
6-9(322) 적인걸
6-10(323) 이안기
6-11(324) 윤신동
6-12(325) 안남의 코끼리
6-13(326) 말하는 성성이
6-14(327) 왕의방
6-15(328) 투녀묘
6-16(329) 두붕거
6-17(330) 시소의 동생
6-18(331) 이해고
6-19(332) 송영문
6-20(333) 팽박통
6-21(334) 이굉
6-22(335) 신승사
6-23(336) 팽달과 고찬
6-24(337) 유신
6-25(338) 노조린
6-26(339) 난릉왕
6-27(340) 유교
6-28(341) 장숭
6-29(342) 십이진거
6-30(343) 구리 술통
6-31(344) 은문량
6-32(345) 양무렴
6-33(346) 왕거
6-34(347) 설신혹
6-35(348) 주자공
6-36(349) 장역지
6-37(350) 이승가
6-38(351) 태주 사람
6-39(352) 양재언
6-40(353) 수안현의 남자
6-41(354) 유숭
6-42(355) 장작
6-43(356) 서경업
6-44(357) 두경전
6-45(358) 흑치상지
6-46(359) 고종
6-47(360) 장역지
6-48(361) 최현위
6-49(362) 송선위
6-50(363) 이처감
6-51(364) 국선충
6-52(365) 원건요
6-53(366) 보지
6-54(367) 위징
6-55(368) 누사덕
6-56(369) 왕현
6-57(370) 이순풍
6-58(371) 왕무애
보집(補輯)
보-1 노반
보-2 잠군모
보-3 원사중
보-4 소정
보-5 지선사
보-6 양 무제
보-7 장손무기
보-8 왕진
보-9 강융
보-10 이소덕
보-11 궁사업
보-12 주흥
보-13 어사훤
보-14 색원례
보-15 장초금
보-16 최일지
보-17 학처준
보-18 반언
보-19 장승요
보-20 비고
보-21 장조택
보-22 유계지
보-23 종현성
보-24 맹신상
보-25 비기
보-26 한영규
보-27 이굉
보-28 장손흔
보-29 장역지 형제
보-30 권회은
보-31 송지손
보-32 팽선각
보-33 영천현령
보-34 마추
보-35 고예의 부인
보-36 왕담
보-37 서작
보-38 이덕림
보-39 학처준
보-40 서적
보-41 풍목인
보-42 삼릉초
보-43 남주
보-44 여우 신
보-45 장간
보-46 비단뱀 쓸개
보-47 위영
보-48 동화조
보-49 진랍국의 낭조
보-50 백설
보-51 나주의 붉은 자라
보-52 장사공
보-53 누리 떼
보-54 유구국
보-55 곽무정
보-56 천후
보-57 배면
보-58 성도의 거지
보-59 후미허
보-60 노씨 부인
보-61 옥영
보-62 왕효걸
보-63 내준신
보-64 돌궐
보-65 주인궤
보-66 위월장
보-67 왕거
보-68 예약수
보-69 배율
보-70 마주
보-71 서언백
보-72 백랍명경
보-73 오금
보-74 작미표
보-75 육여경
보-76 은안
보-77 호랑이 점
보-78 소미도
보-79 방상시의 조카
보-80 맹홍미
보-81 사대부의 숲과 못
보-82 장씨
보-83 후사지
보-84 유형
보-85 사면될 징조
보-86 비 올 징조
보-87 삼백
보-88 재상의 직분
보-89 당검
보-90 왕구례
보-91 배비서
보-92 장이섭
보-93 장역지
보-94 상관소용
보-95 장창령
보-96 울지경덕
보-97 위원충
보-98 삼구·오후
보-99 태세
보-100 유인궤
보-101 최혼
보-102 배최
보-103 제갈앙
보-104 등왕
보-105 적인걸
보-106 장구아
보-107 서리 내리는 날
보-108 장회숙·임정명
보-109 곽무정
보-110 의성공주
보-111 화앙
보-112 내관
보-113 삼족우
보-114 동귀부
보-115 조태
부록
장작전(張鷟傳)
역대저록(歷代著錄)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원가(元嘉)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준수했다. 그는 왼손으로는 원을 그리면서 오른손으로는 네모를 그리고, 입으로는 경사(經史)를 외우면서 눈으로는 양 떼의 수를 세고 아울러 40자(字)의 시를 지었는데, 이 일들을 일시에 하면서 발로는 오언절구(五言絶句)를 썼다. 여섯 가지 일을 동시에 했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이름 대신 “신선동자(神仙童子)”라고 불렀다.
– 572쪽, <5-9(261) 원가>
산악(散樂) 고최외(高崔巍)는 바보짓을 하며 웃기기를 좋아했다. 대제(大帝 : 고종)가 급사(給使)에게 그의 머리를 눌러 물속을 향하게 했는데, 한참 후에 머리를 꺼내며 웃었다. 대제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고최외가 말했다.
“[물속에서] 굴원(屈原)을 만났는데, 그가 이르길 ‘나는 무도한 초(楚) 회왕(懷王)을 만나 멱라강(汨羅江)에 빠졌지만, 너는 성명(聖明)하신 군주를 만났는데 어찌하여 이곳에 왔느냐?’라고 했습니다.”
대제가 크게 웃으며 그에게 비단 100단을 하사했다.
– 698쪽, <6-8(321) 고최외>
원건요(源乾曜)가 재상이 되었을 때 정무를 보는 책상을 옮겼다. 당시 요원숭(姚元崇 : 요숭)은 휴가 중이었는데 휴가가 끝나서 돌아왔다가 책상이 옮겨진 것을 보고 이를 원망했다. 원건요는 두려워하며 사죄했다. 현종(玄宗 : 이융기)은 그 일을 듣고 원건요를 파직했다. 본래 재상은 책상 옮기는 것을 꺼렸는데, 책상을 옮기는 것은 바로 직무의 변동을 의미했다. 원건요가 파직된 후 요원숭도 파직당했으니, 이는 그 징험인 것이다.
– 786쪽, <6-52(365) 원건요>